격화되는 미·중 기술전쟁, 고민 깊어가는 韓 [최준영의 경제 바로 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9 10:00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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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100일 바이든 정부, 동맹 힘 빌려 중국 맞대응 가속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다. 바이든 행정부의 행보는 테드 크루즈 공화당 의원이 이야기한 “지루하지만 급진적”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진행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전례 없는 대규모 재정 지출, 그리고 고소득자와 기업에 대한 증세 등 논란이 될 만한 일련의 정책들을 과감하지만 무리 없이 추진하는 모습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 정책들과 무조건 반대로 갈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9월11일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를 공식화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을 유지했다. 한편으로 이란과는 유럽 동맹국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협상을 진행하면서 타협 국면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대외 정책의 핵심은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최소화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여력을 중국에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는 예상과 달리 중국에 대해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보복관세 역시 계속 유지되고 있다. 4월9일 의회에서 이루어진 연두교서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에 초당적인 기립박수가 이어진 것은 현재 워싱턴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4월8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밥 메넨데스 위원장(민주당)과 제임스 리시 공화당 간사가 발의한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한 ‘전략적 경쟁법(Strategic Competition Act of 2021)’은 이러한 분위기의 결정체다.

3월18일(현지시간)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미·중 고위급 외교회담이 열렸다.ⓒAP 연합
3월18일(현지시간)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미·중 고위급 외교회담이 열렸다.ⓒAP 연합

“중국의 기술 발전은 글로벌 민주주의 위협”

전략적 경쟁법은 중국 정부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 ‘인도-태평양에 대한 지역 헤게모니를 토대로 선도적인 세계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이를 바탕으로 최종적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보편적인 인권의 정당성을 거부하고, 국제사회의 이익 대신 중국 공산당과 권위주의 정권의 이익을 추구하며, 이 과정에서 다른 국가의 민주적 제도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금융제도를 위협함으로써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중국을 간주하고 있다. 해외의 민간기업에 중국의 일방적 정책을 수용하도록 강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허위정보 유포 등을 통해 자신들이 추진하는 행위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략적 경쟁법은 이러한 위협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중국의 활동과 영향에 대한 감시 및 평가활동을 수행하도록 행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전략적 경쟁법은 과학기술에서 미국이 우위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미·중 경쟁에서 핵심적 요소임을 분명히 하고 특히 차세대 통신·인공지능·양자컴퓨터·반도체 제조 및 생명공학 등에서 미국이 기술혁신을 주도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핵심기술 보호를 위해 동맹국과 더불어 다자간 수출 통제조치를 도입하고, 디지털 산업과 의약을 포함한 주요 산업 부문의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핵심 거점을 보호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다양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통신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국무부로 하여금 동맹국들과 디지털 연결 및 사이버 보안 파트너십(Digital Connectivity And Cybersecurity Partnership)을 결성해 개방적이고 안전한 인터넷을 위해 경쟁 친화적이며 보안성이 우수한 정보통신기술 정책 및 규정 등을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의 급속한 기술 발전, 특히 5G 분야에서의 능력 향상을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전략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중국의 통신 부문 영향력 확대가 단순한 경제적 영역을 넘어 사회 통제 강화, 민주주의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롭고 신뢰할 수 있는 인터넷과 정보통신망 구축에 더해 중국 공산당의 인터넷 검열 및 감시를 우회할 수 있는 P2P 연결 및 개인정보 보호 도구 개발을 위한 기술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중국의 검열을 붕괴시킬 수 있도록 투자를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핵심기술 영역으로 간주되는 인공지능 및 머신러닝, 반도체 제조, 생명공학, 양자컴퓨팅, 안면인식 기술 및 검열 소프트웨어를 통한 감시기술, 광섬유 케이블 등에 대해서는 기술 통제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무부가 운영하는 기술 파트너십 사무소(Technology Partnership Office)를 설치해 첨단기술 영역에서는 동맹국들과 함께 관련 기술 유출을 통제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제표준 제정 등의 전략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 대공산권 수출통제 체제였던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COCOM)의 부활인 셈이다.

 

30년 유지된 국제질서가 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중국의 산업 스파이 활동 및 선전활동에 맞서기 위한 지역별 활동을 요구하고 있다. 화웨이로 대표되는 중국의 통신망 분야 진출을 핵심적인 위협요소로 간주하고 있으며, 자원 및 에너지에 대한 중국의 투자 역시 전략적 불안요소로 적시하고 있고, 중국이 제3세계 국가에 대해 확대하고 있는 대출 및 금융지원을 억제할 수 있는 상응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 자유, 디지털 안전 및 독립적인 언론의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략적 경쟁법은 상원의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빠르게 법률로 제정될 전망이다. 최소한 중국에 대해서는 민주·공화 양당 모두 확실하게 견제하고 억제해야 한다는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전략적 경쟁법은 중국의 영향력 감소를 위해 지난 30년간 형성돼 온 글로벌 공급망 변화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통신 및 반도체 등 분야에서는 중국을 배제한 별도의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백악관에서 개최됐던 주요 반도체 기업 회의는 단순히 미국 내 투자 확대가 아닌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TSMC로 대표되는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중국 견제와 미국의 우위 지속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됨에 따라 대만에 대한 군사·안보 지원 강화는 당연한 귀결이며, 이는 서태평양 지역에서 군사적 대립 격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안보 제공을 토대로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로서는 이와 같은 대립 구조가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는 기존 논리와 주장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기 힘들 수 있다. 그렇다고 일방을 선택하는 것 역시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는 없다는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상황을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곤란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30년간 유지된 국제질서가 변화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핵심이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기존 질서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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