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스타터’ 추신수, 아직 제대로 달리지도 않았다
  • 이창섭 야구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9 12:00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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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감 컸던 KBO리그 한 달 만에 적응 마쳐…“부상만 조심하면 리그 폭격할 것” 전망

올 시즌 최대의 관심사 중 하나는 추신수(40)의 KBO리그 진출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16년 동안 뛴 추신수가 SSG 랜더스에 입단하면서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추신수는 불과 지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의 핵심 선수였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20홈런-15도루 이상 기록한 호타준족은 16명밖에 없다. 추신수(24홈런, 15도루)는 그중 한 명이다. 메이저리그 현역 주전 선수가 KBO리그에 온 것과 다름없었다.

ⓒ연합뉴스

늦은 출발, 길었던 예열 기간…서서히 정상궤도 진입

추신수의 계약은 2월말에 이루어졌다.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을 거치면서 팀 합류가 더 늦어졌다. 지난해 부상 때문에 27경기를 결장한 추신수는 시범경기 후반부터 나와 실전 감각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시즌에 맞춰 정상적인 몸 상태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추신수도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말을 했었다.

추신수는 4월4일 롯데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장했다. 볼넷으로 출루한 뒤 도루도 성공했다. 그러나 타석에서 타격감이 돌아오지 않았다. 4월8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KBO리그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지만, 첫 12경기 타율은 0.186에 불과했다. 추신수를 향한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4월20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홈런 두 방을 쏘아올리며 멀티 홈런 경기를 선보였다. 투수들이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지자 추신수도 기다리지 않고 빠른 카운트에서 승부한 것이 주효했다. 그때 홈런 두 개도 모두 초구를 친 것이었다. 또한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시절 좋았던 영상과 비교해 잘못된 점들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추신수는 멀티 홈런을 친 날을 기점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12경기 44타수 13안타(0.295)를 때려냈다. 시즌 타율도 1할대에서 어느새 2할대 중반에 진입했다. 홈런 6개는 리그 5위, 도루 7개는 리그 3위에 해당했다. 이대로라면 이번 시즌 가장 먼저 두 자릿수 홈런과 도루를 채울 것이 유력하다. 추신수를 향한 시선은 또 한번 달라지기 시작했다.

추신수는 서서히 정상궤도에 진입하고 있다. 각종 세부 지표도 긍정적이다. 세이버 매트릭스 지표 중 하나인 BABIP(Batting Averages on Balls In Play)는 타자가 만들어낸 인플레이 타구에 대한 타율을 의미한다. BABIP가 통산 기록보다 지나치게 높으면 타율에 거품이 낀 것으로 간주한다. 행운이 따른 안타가 많았다고 해석한다. 추신수는 이번 시즌 BABIP가 0.242로 리그에서 6번째로 낮다. 메이저리그에서 추신수의 통산 BABIP는 0.336이었다. 좌타자 수비 시프트가 증가한 KBO리그 특성을 감안해도 현재 BABIP는 크게 낮은 수치다. 이는 추신수의 타율이 지금보다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의 최대 강점은 역시 선구안이다. 좋은 공과 나쁜 공, 칠 수 있는 공과 칠 수 없는 공을 누구보다 잘 구별한다. KBO리그에서도 이 선구안은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타석당 볼넷 비율 13.9%는 메이저리그 통산 기록(12.1%)보다 높다. 반면 삼진율은 KBO리그에서 떨어진 상태다. 추신수는 2017년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삼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뛰었던 2020시즌에는 26%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KBO리그에서는 삼진율이 19.4%로 낮아졌다. 투수들의 구위가 메이저리그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삼진으로 물러나는 타석도 줄어들었다. 삼진이 줄어들면 인플레이 타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추신수는 인플레이 타구에 대한 타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4월2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 8회초 1사 상황에서 SSG 추신수가 솔로 홈런이자 이날 경기 자신의 두 번째 홈런을 친 후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1번·우익수’ 자기 자리 찾은 추신수…활약은 이제부터

메이저리그에서 추신수는 주로 1번 타자로 출장했다. 신시내티에서 뛰었던 2013년에는 300출루도 달성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FA 시장에서 1억3000만 달러(약 1461억원) 초대형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추신수를 영입한 SSG는 그를 몇 번 타자로 기용할지 고민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번 타자였지만, 한국에선 장타력을 갖추고 있어 중심 타선에 들어서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개막전 3번 타자로 나온 추신수는 지금까지 2번 타자로 가장 많이 나왔다. 그러나 추신수에게 어울리는 타순은 역시 1번이었다. 표본은 적지만, 1번 타자로 나왔을 때 14타수 5안타로 타율이 0.357이었다(타순별 타율 2번 0.214, 3번 0.235). 그러자 SSG는 최근 추신수를 1번 타자로 내세우고 있다.

추신수는 타석에만 들어서는 지명타자보다 수비도 함께 하는 것을 선호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수비를 해야 경기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시즌 초반 지명타자로 나왔던 추신수는 차츰 우익수 출장을 늘려가는 중이다. 수비를 병행하는 추신수가 더 나은 건 성적이 증명한다. 타율은 지명타자로 나왔을 때 0.190(42타수 8안타), 우익수로 나왔을 때 0.295(44타수 13안타)다. ‘지명타자 추신수’와 ‘우익수 추신수’는 출루율과 장타율을 포함한 OPS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드러냈다(지명타자 0.667, 우익수 1.002).

메이저리그 시절 추신수는 슬로 스타터였다. 시즌을 치를수록 본래 실력을 발휘하는 유형이었다. 그렇다 보니 전반기보다 후반기 타율이 좋았으며(전반기 0.270, 후반기 0.282) 통산 월별 타율이 가장 높은 구간도 9·10월이었다(3·4월 0.272, 5월 0.270, 6월 0.268, 7월 0.262, 8월 0.274, 9·10월 0.300). KBO리그에서도 이러한 스타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6개월간의 대장정인 야구 시즌은 어떻게 출발하는지보다 어떻게 끝을 맺는지가 더 중요하다. 메이저리그에서 더 힘든 일정을 소화했던 추신수는 이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KBSN 장성호 해설위원은 “결국엔 타이밍 문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타격 타이밍을 일찍 가져갔지만, KBO리그는 유인구를 많이 던지는 곳이다. 이 부분에 대한 조정이 이루어지면 더 위협적인 타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추신수는 초반 부침이 있었지만, 점점 타격감을 되찾고 있다. KBO리그 신인 추신수에서 메이저리그 베테랑 추신수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는 추신수가 KBO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상만 조심하면 리그를 폭격할 것으로 전망했다. 부담감이 컸던 추신수에게 개막 첫 달은 KBO리그에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달릴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남은 시즌 추신수를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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