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친문의 문자폭탄, ‘민주당의 오욕’ 증언하는 역사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7 14:00
  • 호수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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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지켜왔다는 민주당이 이제 다른 의견을 용납 않는
‘민주주의 부재 정당’으로 바뀌었다는 수치스러운 고백 담겨 있어

5월2일 끝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대표 선출만큼이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대표적인 ‘강성 친문’으로 분류되는 초선의 김용민 의원이 수석 최고위원이 된 일이다. 그는 4·7 보궐선거 참패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단 없는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을 외쳐온 정치인이다. 특히 경선 기간 동안 논란이 되었던 문자폭탄에 대해 “당연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적극적인 의사표시는 권장되어야 된다”고 옹호하며 “정치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오히려 문자폭탄 피해자들을 훈계했던 인물이다.

논란의 문자폭탄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정치인이 1등 최고위원이 된 사건은 강성 당원과 지지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의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친문 적자가 아닌 송영길 대표가 득표율 불과 0.59%포인트 차이로 ‘찐 친문’인 홍영표 후보를 간신히 이기고 당선되었지만, 최고위원에는 김용민 말고도 강병원·백혜련·김영배·전혜숙 같은 범친문이 둘러싸고 있는 지도부가 만들어졌다. 

민주당의 5·2 전당대회는 문자폭탄을 앞세운 강성 친문 세력이 민주당을 이끌어가는 부동의 중심 세력임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문자폭탄은 다시 한번 위력을 발휘했다. ‘문빠’로 불리는 강성 지지자들의 눈 밖에 나면 표를 얻을 수 없음을 아는 후보자들은 그들의 눈치를 본다. 검찰 개혁·언론 개혁은 물론이고 부동산 정책 수정 여부에까지 문자폭탄의 영향이 즉각 나타난다.

4·7 선거 이후 부동산 규제 완화를 추진하던 당내 분위기가 유보 쪽으로 급선회한 것도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부동산세 인하에 반대하는 강성 지지자들의 영향이 컸다. 강성 지지자들의 미움을 사서 문자폭탄의 좌표가 되고 나면 공천을 받는 것도 힘들어짐은 이미 금태섭 전 의원의 사례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그러한 학습효과로 민주당 정치인들은 강성 지지자들 눈 밖에 나는 언행을 조심하는, 가위눌린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사진취재단
5월2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강성 친문’의 지지를 받고 있는 김용민 최고위원 후보(왼쪽 사진)와 홍영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강성 친문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가위눌림’ 

선거 패배 직후 ‘조국 사태’와 ‘내로남불’을 거론하며 반성한다고 했다가 문자폭탄에 놀라 ‘1일 반성’으로 끝난 청년 초선의원 5명의 해프닝도 문자폭탄의 위력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초선 5적’들의 전화번호가 공유되며 문자폭탄을 독려하는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문자폭탄 행동은 더 이상 누가 볼까 숨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독려하는 의로운 행동이 된 것이다.

결국 장경태 의원이 “조국 장관이 고초를 겪으실 때 그 짐을 저희가 떠안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몇 시간 전의 ‘조국 반성문’을 다시 사과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연출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이 참패한 결과를 놓고 역시 반성의 목소리를 냈던 조응천 의원이나 김해영 전 최고위원에게도 “당을 떠나라”는 문자폭탄과 욕설 댓글들이 쏟아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성찰과 쇄신의 목소리는 민주당 내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다.

문자폭탄이 이처럼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괴물로 커버린 데는 문재인 대통령의 ‘원죄’가 있다. 지난 2017년 대선 정국에서 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들은 민주당 내 다른 경선 주자들을 향해 온갖 욕설이 담긴 문자폭탄을 무차별적으로 투척했다. 우려와 논란은 확산되었지만 당시 문재인 후보는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며 지지자들의 편을 들었다. 오죽하면 당시 안희정 캠프에 있던 박영선 의원이 “상처받은 사람에게 소금 뿌리는 것”이라고 비판했을까.

당시엔 대선을 앞두고 지지자들을 무조건 껴안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이해하더라도, 대통령이 된 이상 한 번은 정리하고 갔어야 할 문제였다. 문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향해 “문자폭탄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행동이며 나를 돕는 일이 아니다”고 단 한 번만이라도 분명히 말했다면, 그렇게도 문 대통령을 좋아하는 지지자들의 행동은 한결 덜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자기 지지자들이 벌이는 문자폭탄 행동을 끝까지 수수방관하는 모습만 보여왔다. 마치 조국 사태 때 나라가 갈기갈기 찢겨진 대분열 상황을 장기간 방치했던 대통령의 모습이 그러했듯이, 문자폭탄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은 대통령의 모습은 일반 국민을 체념하게 만든다. 문자폭탄을 ‘양념’으로 미화했던 문 대통령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따른다면, 임기를 마치기 전에 결자해지 차원에서 문자폭탄이 잘못된 행동임을 분명히 말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 

 

문자폭탄 행동 수수방관한 대통령도 책임

전당대회 하루 전날 조응천 의원은 “차기 지도부는 열혈 권리당원들이 과잉 대표되는 부분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표명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새로 선출된 민주당 지도부가 문자폭탄 자제를 촉구하는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당대회 기간에 문자폭탄에 대해서는 완곡하게나마 우려를 드러냈던 송영길 대표도 “열성 당원의 그런 에너지도 긍정적인 개혁 에너지로 승화시키겠다”는 구름 잡는 말 이상의 것을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친문 적자도 아닌 당 대표가 강성 당원과 지지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자제를 요청했다가는 그 역시 문자폭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가장 자유롭게 입장을 명확히 표명할 수 있는 것은 문자폭탄 찬양으로 표를 얻었던 김용민 최고위원 정도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전당대회 다음 날부터 방송에 나가 문자폭탄에 대해 “당연히 권장되어야 될 일”이라는 예찬론을 설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송 대표는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확대해 민심을 받드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김 최고위원은 “당심과 민심이 다르다는 이분법적 논리가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근거 없음이 확인되었다”며 엇박자 얘기를 꺼냈다. 민심을 우선하겠다는 송 대표의 방향은 이제라도 다행이지만, 면전에서 정반대 얘기를 하는 강성 친문에 둘러싸인 그가 민주당의 변화를 이루어내기는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그까짓 문자폭탄 가지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문자폭탄은 단지 인신공격의 욕설을 담은 몇 줄의 글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지난 시절 민주주의를 지켜왔다는 민주당이 이제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민주주의가 부재한 정당이 되었다는 수치스러운 고백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오늘 문자폭탄은 ‘그까짓 문자’가 아닌, 민주당의 오욕을 증언하는 역사인 것이다. 송영길은 과연 사망했던 당내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민주당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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