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명이 떠났다…300kg 철판에 깔린 23살 청년의 꿈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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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이선호씨, 평택항에서 일하던 중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
여전히 계속되는 ‘죽음·위험의 외주화’…유가족, 보름 넘게 장례도 못 치러
4월22일 고(故) 이선호(23)씨가 나무 잔해 정리 도중 한쪽 날개가 무너지면서 사망한 현장의 개방형 컨테이너 ⓒ 대책위 제공
4월22일 고(故) 이선호(23)씨가 나무 잔해 정리 도중 한쪽 날개가 무너지면서 사망한 현장의 개방형 컨테이너 ⓒ 대책위 제공

부모에게 금쪽 같았던 아들, 누나들을 살뜰히 생겼던 동생, 누군가에겐 청춘을 함께 보낸 소중한 친구였던 23살의 이선호씨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일하던 이씨는 300㎏에 육박한 화물 컨테이너 날개 부분에 깔려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사고 원인을 두고 공방이 오가면서 가족은 보름 넘게 이씨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루지 못한 채 눈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 고(故) 김용균씨 등 숱한 노동자의 희생을 겪고도 한국 사회는 '죽음과 위험의 외주화'를 멈춰 세우지 못했다. 

 

사고 직후 '신고'보다 '보고'가 우선이었던 현장

선호씨는 군 제대 후 학비를 벌기 위해 2019년부터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평택항 수출입 화물 컨테이너의 세관 검수를 하는 원청업체 동방의 하청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사고가 발생한 4월22일 4시5분께 선호씨는 평택항 부두 화물 컨테이너 내부에 흩어진 나무조각 잔해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선호씨의 고유 업무는 동·식물 검역이었지만, 사고 당일엔 원청업체인 동방 직원의 지시로 전혀 다른 업무를 했다. 

원청의 지시로 나무합판 제거 작업을 한 지 5분 만에 300㎏에 달하는 개방형 컨테이너 한쪽 날개가 선호씨를 덮쳤다. 반대편에 있던 지게차 작업자가 날개 한쪽을 접기 위해 충격을 가한 순간 진동이 발생하면서 선호씨가 있던 반대쪽 날개가 접혀버린 것이다. 정상적인 구조라면 지게차 충격으로 반대쪽 날개가 접히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컨테이너는 90도가 아닌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선호씨는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측과 현장에 있던 관리자들은 사고 직후 119에 즉각적인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고보다 '사내 보고'가 우선이었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선호씨는 육중한 철판에 깔린 채 숨을 거둬야 했다. 

평택항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인 선호씨 부친 이재훈씨가 현장 인근을 둘러보기 전까지 가족들은 사고 소식조차 전해듣지 못했다. 부친 이씨는 "당일 업무가 늦게 끝나는 것 같아 자전거를 타고 현장으로 갔다가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는 컨테이너 날개를 발견했고, 그 안에서 자는 듯이 엎드려 있는 아들의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처참한 사고로 사망한 아들의 모습을 우연히 현장을 둘러보던 아버지가 발견할 때까지 회사는 아무런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입관 절차만 겨우 진행한 채 선호씨의 제대로 된 장례 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선호씨가 사망하게 된 정확한 경위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지만, 원청과 작업 지시 당사자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목격자의 진술과 반대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이 5월6일 SNS에 올린 고(故) 이선호씨 빈소. 김 지부장은 "14일째 차가운 냉동고에 있는 자식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빈소를 지키고 계신 아버지. 지난 4월22일 군 제대 후 아버지를 따라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던 선호 군이 컨테이너 기둥에 깔리는 산재 사망사고로 평택에 위치한 백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다"고 전했다. ⓒ 김득중 지부장 트위터 캡처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이 5월6일 SNS에 올린 고(故) 이선호씨 빈소. 김 지부장은 "14일째 차가운 냉동고에 있는 자식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빈소를 지키고 계신 아버지. 지난 4월22일 군 제대 후 아버지를 따라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던 선호 군이 컨테이너 기둥에 깔리는 산재 사망사고로 평택에 위치한 백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다"고 전했다. ⓒ 김득중 지부장 트위터 캡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된 '위험'

선호씨 가족과 '고(故)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이번 사고가 구조적인 문제에서 출발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기업의 비용절감과 안전 불감증에서 파생된 피해가 고스란히 하청업체 직원으로 전가된 '죽음의 외주화'가 재현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선호씨가 당일 본연의 업무와 무관한 일을 해야했던 것부터 이후 대응까지 모두 심각한 노동 현실이 투영된 사태라고 비판했다. 선호씨가 속한 하청업체는 지난 3월1일부터 검역별로 분리 투입하던 인력을 통폐합한 뒤 동·식물 검역 뿐 아니라 다른 작업까지 맡겨왔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비롯된 인력 통폐합인 셈이다. 업무 조정을 하려면 원청과 하청업체, 하청업체와 노동자 간 계약을 다시 해야하지만 이같은 절차는 생략됐다. 

사고 당일 선호씨는 원청 업체 작업자의 구두 지시를 받고 처음으로 컨테이너 내부 정리 작업을 했다.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사전 교육은 없었고, 안전모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선호씨가 컨테이너 내부로 들어가 작업을 하는 동안 외부에서 이를 감독하는 안전관리자도 부재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는 안전관리자와 수신호 담당자 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서는 이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반대쪽에서 지게차 작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컨테이너가 똑바로 세워져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현장 노동자들과 대책위는 만일 컨테이너가 90도 각도로 정상적으로 있었다면 반대쪽 날개가 접히지 않지만, 당시 약간 기울어져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지게차 작업이 진행됐다고 진술했다. 

사고 현장에 있던 선호씨의 동료 노동자는 원청으로부터 컨테이너 내부 잔해를 정리하라는 지시를 2번이나 받았다고 했지만, 원청 측과 지시자로 지목된 인물은 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노동계는 해마다 2000명 이상, 하루 평균 7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는 노동 현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선호군이 나이고, 내 가족이고 이웃일 수 있다"며 "죽음을 양산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렸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어렵사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됐지만, 내년부터 적용되는 탓에 선호씨 사고는 해당 법안 적용이 불가능하다. 이 법이 본격 시행되면 사업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 등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 

대책위와 유가족은 선호씨와 같은 안타까운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책위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선호군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났으나 사고 조사나 진상규명은 여전히 답보 상태"라며 "하청 관리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게 아닌 원청에 책임을 붇고 해양수산청, 관세청 등 유관기관에도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호군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더 이상 노동 현장에서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우리 사회 전체가 노동 안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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