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옷’ 입고 온 인플레, 약일까 독일까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3 07:30
  • 호수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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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재생 에너지 수요로 인플레이션 촉발…2차 전지 등 첨단기술 보유한 한국에 되레 기회

최근 중국과 미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가 커지고 있다. 6월9일 발표된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9%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9월 9.1%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며, 시장이 예상한 전망치 8.5%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미국의 경우 4월 물가 상승률이 4.2%를 기록했으며, 유럽 역시 소비자 물가가 2% 상승했다. 우리나라도 5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6%를 기록하면서 9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연초부터 나타나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초기에는 유동성 과잉이 주요 원인으로 간주됐지만, 점차 수요 증가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그리고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이 핵심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목재와 구리 등 원자재와 더불어 자동차용 반도체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이 나타나고 있으며, 인건비 상승 흐름도 분명해지고 있다. 백신 접종 확대 등을 통해 주요국의 경제활동이 정상화되고, 수요의 폭발적 증가가 겹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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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주목받는 금값이 오르는 가운데 5월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에 금 현물이 진열돼 있다.ⓒ연합뉴스

물가 상승은 구조적 문제, 단기 해소 어려워

그러나 최근의 물가 상승과 공급 부족은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현상으로, 단기간 내에 완화되거나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는 저탄소 녹색경제로의 전환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협에 맞서기 위해 화석연료에 의존한 기존 체제에서 탈피해 새로운 산업구조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막대한 규모의 신규 투자와 이에 따른 수요 증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탄소, 좀 더 구체적으로는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은 일차적으로 전력 생산방식의 변화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태양광 및 풍력과 같은 재생 에너지 비중은 세계적으로 급속히 높아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자원에 대한 막대한 신규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풍력발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바람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풍력발전기의 날개에 해당하는 터빈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여기에 들어가는 발전기 역시 대형화되고 있다. 높은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 발전기에는 강력한 영구자석이 포함되는데 여기에는 막대한 양의 희토류가 투입된다. 들판과 바다를 메우고 뻗어가는 풍력발전기들을 전력망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송전선로 건설이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구리가 필요한 만큼 구리 수요 확대로 연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형 및 입지적 제약으로 인해 잘 체감되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풍력발전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30년까지 신규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풍력발전 용량은 현재의 7배 이상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해상풍력은 최근 미국의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대규모 투자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재생 에너지의 확대는 기술 발전에 따른 비용 절감에서 기인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단위전력 생산비용은 태양광 83%, 해상풍력 62%, 육상풍력은 58% 감소했으며, 이에 따라 2019년 신규 설치된 태양광 용량은 2010년에 비해 15배, 풍력의 경우도 3.4배 규모로 확대됐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전기자동차의 보급 확대 역시 자원에 대한 폭발적 수요 확대를 가져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청정 에너지 부문 투자는 2030년까지 4조 달러 이상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광물자원 수요는 7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가격은 2010년 이후 83% 감소했다. 이는 원료 가격의 하락이 아닌 설계 및 생산공정 개선에 따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원료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40~50%에서 70%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원자재 수요는 급속히 확대되고 있지만 공급 확대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재생 에너지와 배터리로 상징되는 녹색산업에 필요한 광물자원은 화석 에너지에 비해 훨씬 소수의 국가와 지역에 집중돼 있으며, 특히 중국의 지배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신규 광산 개발 및 생산이 요구되고 있지만 용이한 상황은 아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하는 영어 줄임말)로 대표되는 새로운 투자 및 경영 흐름이 대두되면서 환경 보전과 원주민 등 지역사회에 대한 배려가 강조돼 대규모 환경 파괴와 지역사회의 변화를 초래하는 광산 개발은 과거에 비해 어려워졌으며,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

오랜만에 나타나고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금리 인상을 통한 대응이 논의되고 있지만 사실 2021년의 인플레이션은 그렇게 바라던 세계경제의 본격적인 회복과 투자 증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2010년 이후 세계경제는 지속적인 수요 부족과 투자 감소로 인해 장기 불황과 유사한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디플레이션 압력에 노출돼 왔다. 금리 인하를 통한 수요 확대와 같은 전통적인 금융정책은 실효성을 상실했으며, 재정 확대 역시 높은 부채비율로 인해 지속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넷제로를 위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필요성 대두와 코로나19의 충격은 주요국 정부로 하여금 과거의 관행과 금기에서 벗어나 과감한 결정을 내리도록 해주었다. EU(유럽연합)의 경우 그린 뉴딜을 위해 10년 동안 최소 1조 유로(약 1350조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와 병행해 녹색 프로젝트의 가속화를 위해 정부 보증을 제공하는 등 과거와 달리 적극적인 지원과 직접적인 간여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도 대선 과정에서 발표된 청정 에너지 혁명을 위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1조7000억 달러(1896조원)를, 지속 가능한 에너지와 청정 에너지를 위해 2조 달러(4464조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계획하에 구체적인 사업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2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오랫동안 지속됐던 침체와 수요 감소를 극복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이 녹색의 옷을 입고 찾아오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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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 FRB 의장이 2020년 12월1일 워싱턴DC 연방 의사당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모습ⓒAP 연합

통화 당국, 물가 안정보다 더 큰 가치 봐야

인플레이션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적절한 인플레이션은 수요와 투자를 촉진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국제적 수요 증가는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2차 전지를 비롯한 첨단 제조업에 대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오랫동안 논의됐지만 구체화되지 못했던 산업구조의 녹색 전환을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힘겹게 찾아온 이런 변화 추세를 이어가기 위해 정부와 금융 당국은 물가 안정이라는 가치만을 내세우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여건을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투자자 입장에서 본다면 원자재와 더불어 전통적인 산업 부문이 어떻게 전환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과거와 다른 인플레이션 양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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