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이 곧 국가다 [쓴소리 곧은소리]
  • 신세돈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4 07:30
  • 호수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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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4년간 9번 추경…재난 예산, 정치적 목적 사용한 게 원인
국가 재정 고갈에 따른 파탄 사례도 많아 우려

1643년부터 1715년까지 72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한 태양왕 루이 14세를 표현하면서 볼테르는 ‘짐이 곧 국가라 했다’고 한다. 그 말의 진위가 어떻든 간에 한때 프랑스를 세계 최강의 국가에 올려놓았다가 또 다른 한때에 끝없는 사치와 전쟁, 정책 실패로 말미암아 숙적 스페인은 물론 합스부르크가(家), 영국 및 네덜란드에도 밀리는 치욕을 연출한 장본인이 루이 14세였으니 스스로를 국가라 불렀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문제는 루이 14세의 모든 영광이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베르사유 궁전 건설부터 아우스부르크 동맹 전쟁,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에 이르기까지 루이 14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어느 것 하나 백성의 고혈을 빨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더 이상 국민으로부터 빨아낼 것이 없자 안으로는 호미와 쟁기를 들고일어난 납세자들의 반란을 막을 길이 없었으며, 밖으로는 적대국들의 연대 압박에 대항할 힘을 잃게 된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연구기관장 및 투자은행 전문가 간담회에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 검토를 공식화했다.ⓒ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연구기관장 및 투자은행 전문가 간담회에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 검토를 공식화했다.ⓒ연합뉴스

한국의 국가 재정 위기 알려주는 3가지 지표

재정 고갈에 의한 나라 파탄은 비단 루이 14세의 프랑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100여 년 전 카를로스 1세와 펠리페 2세도 과도한 전쟁비용으로 스페인의 국력을 크게 추락시켰다. 중국 전한의 성제와 평제, 그리고 후한의 영제와 헌제 또한 재정 부족을 메우기 위한 과도한 과세 때문에 나라 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 ‘국가 재정이 곧 국가’란 말은 그렇게 역사적으로 성립된다.

최근 우리나라 국가 재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는 국가 지출이 너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16년 총지출은 385조원이었는데, 2021년에는 573조원이 됐다. 5년 만에 188조원, 49% 늘어났다. 한 해에 대략 10% 정도씩 늘어난 셈이니 명목 경제성장률의 두 배 정도 속도로 지출이 팽창한 것이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늘어난 지출은 줄이기가 매우 어렵다.

둘째로는 국가조세 부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국세수입은 243조원이었는데, 2021년에는 3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4% 정도 세금 부담이 늘어난 셈이다. 경기가 가뜩이나 어려운데 늘어나는 세금 부담으로 납세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한번 늘어난 세금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출 증가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셋째로는 그럼에도 지출 폭증 속도가 세수 폭증 속도를 앞서면서 재정적자, 즉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2018년까지만 해도 20조원 수준이던 것이 2019년에는 54조원, 그리고 2020년에는 112조원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국가채무가 경계 수준을 넘어섰다. 2016년만 하더라도 가장 협의로 본 국가채무(D1)는 GDP의 34%에 불과했는데 2020년 42.6%로 늘어났고, 2021년에는 50%에 가까이 근접할 것이 분명하다.    

국가 재정의 근간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원인은 잦은 추경에 있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아홉 번이나 추경을 편성했다. 거의 일 년에 두 번 추경을 편성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추경 역사는 후진국이었던 1980년 이전과 다를 것이 없다. 1948년부터 1980년까지 32년 동안 60번, 일 년에 1.9회, 거의 두 번 있은 것과 비슷하다. 2020년에는 네 번, 2021년에도 지금까지 두 번 예산을 다시 짰다. 매년 추경을 편성하는 것도 망측스러운데 한 해에 네 번, 두 해에 여덟 번, 아홉 번 추경을 편성한다는 것은 비상적인 추경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터무니없이 잦은 추경을 편성하는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예산 편성 당국의 무능력과 무소신이다. 불과 일 년 앞의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지출은 물론 세입까지 안일하게 편성했다가 서둘러 고쳐야만 하는 무능력 말이다. 아무리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그해 3월의 1회 추경이나 4월의 2회 추경 두 번 정도면 충분했었다. IMF 위기 때였던 1997년과 1998년에도 추경은 각각 두 번에 그쳤었다. 그러나 2020년에는 한국판 뉴딜을 중심으로 하는 7월의 3회 추경과 긴급민생종합대책이라며 12월에 있었던 4회 추경이 더해져 한 해 네 번이라는 역사적인 추경 발동이 있었던 것이다.

잦은 추경의 두 번째 배경은 재난 예산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를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020년의 총선과 2021년 4월의 지방보선, 그리고 2022년의 대선 등 선거와 맞물리면서 집권당으로서는 적어도 암묵적으로라도 예산을 유리하게 편성하려고 할 개연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집권당이 내세운 추경의 명분은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코로나 파급효과 극소화(1회 추경)라고 했다가 전 국민 위로(2회 추경)로 바뀐 다음 경기보강 및 한국판 뉴딜(3회 추경)이 된 뒤 다시 긴급민생종합대책(4회 추경) 및 피해 지원(2021년 1회 추경)으로 변했다. 매번 추경의 타깃이 옮겨졌다. 추경의 목표가 계속 바뀌었다는 말은 목표가 없었다는 말이고 또한 코로나와는 별 상관없이 추진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무분별한 추경, 두고두고 한국 경제에 부담

미국은 GDP의 20%에 해당되는 약 4조 달러를 코로나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부문에 집중 투입했다. 독일도 GDP의 약 10%를 코로나 피해 기업에 지원했다. 우리는 GDP의 약 3%도 안 되는 재정 지원을 하면서 그것도 코로나 피해에 집중 지원하기보다는 일반적인 복지지출에 가까운 돌봄 지원 혹은 일자리 지원으로 분산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잘못된 결과는 두 가지 방면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막대한 재정 지출에도 민간소비가 살아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대로 2020년 민간소비 증가율은 –5.0%에 불과했다. 1953년 이후 약 70년 동안 IMF 위기(-9.4%) 이후 가장 나쁜 수치다. 또 다른 피해는 이번 코로나19로 약 70조원의 부가가치 손실을 입은 자영업자들이 회생할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당장은 폐업하지 않겠지만 생기를 잃은 자영업자들이 지속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두고두고 한국 경제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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