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우승’이란 또 하나의 신화에 도전하는 ‘김학범號’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9 11:00
  • 호수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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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조 편성 행운에 역대 최강 전력 평가도
이강인·정우영 등 올림픽 대표팀 “목표는 우승”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2019년 폴란드 U-20월드컵 준우승과 더불어 한국 남자축구가 달성한 3대 업적 중 하나다. 9년 전 홍명보 감독이 구자철·기성용·김영권 등 차세대 주자들과 함께 따낸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었다. 이를 넘어선 더 큰 도전이 7월 일본 도쿄에서 펼쳐진다. 베테랑 김학범 감독은 최고의 영건들에 역대급 와일드카드를 구축해 금메달이라는 신기원 달성에 나선다.

지난 5월31일 제주 서귀포로 28명의 1차 소집 멤버를 부른 김 감독은 6월12일과 15일 가나와의 두 차례 평가전을 통해 23명의 옥석을 가렸다. 올림픽은 월드컵·아시안컵 등과 달리 18명만이 본선으로 향한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와일드카드(연령 초과 선수) 3명을 제외하면 최종 명단에 뽑히는 선수는 15명이다. 이 인원은 모두 이번 2차 소집 명단 내에서 정해진다. 6월30일로 예정된 최종 명단 발표 때 8명의 선수가 추가로 탈락한다는 뜻이다.

이미 2차 소집 명단을 추리는 과정에서도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2001년생 이강인(발렌시아)과 1999년생 정우영(프라이부르크)이 살아남은 가운데, A대표팀 경력이 더 긴 이승우(포르티모넨스), 백승호(전북)가 탈락했다. 지난 2년간 김학범호에서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친 차세대 골잡이 조규성과 오세훈(이상 김천)이 나란히 제외된 것도 예상 밖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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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6월1일 제주 훈련장에서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급 내부 경쟁 속 최강 와일드카드 준비

치열한 내부 경쟁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김 감독이 최강의 와일드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예고였다. 이승우는 순간적으로는 번뜩이는 플레이가 가능했지만, 지난 1년간 소속팀에서 공식전 640분 출전에 그치며 떨어진 경기 감각까지 숨길 순 없었다. 백승호는 최근 전북에서 경기력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김 감독의 평가 기준을 충족시키진 못했다.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A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오간 선수들의 활약이 더 돋보였다. 울산에서 함께 뛰며 최고의 호흡을 이어온 이동준과 이동경(이상 울산)은 가나와의 평가전 2차전에서 환상적인 연계로 결승골을 뽑았다. 올림픽 대표팀과 A대표팀에서 발탁 즉시 득점포를 가동하며 손흥민을 잇는 해결사 본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송민규(포항)는 공격진의 다크호스다.  

조규성과 오세훈의 동반 탈락은 황의조(보르도)의 와일드카드 발탁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난 4월 본선 조 추첨이 끝난 뒤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황의조를 거명하며 와일드카드로 간절히 원한다는 뜻을 보였다. 성남 감독 시절 함께한 김 감독과 황의조는 2018년 많은 사람의 의구심을 뚫고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합작했다. 이후 황의조는 프랑스의 지롱댕 보르도에 진출해 유럽파로 성공가도를 달리며 벤투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에서도 주전 스트라이커에 등극했다. 김 감독의 이런 의사표명에 황의조는 “꼭 참가하고 싶다”며 의지를 밝혔다.

황의조 외에 2명의 와일드카드도 최고의 선수로 구성할 계획이다. 여기에 유력한 선수는 ‘괴물 수비수’ 김민재(베이징)다. 김민재 역시 3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압도적인 수비력으로 금메달 획득의 공신이 됐다. 센터백 포지션은 현재 김학범호의 취약 포지션이다. 정태욱(대구)을 제외하면 확실한 믿음을 주는 선수가 없는 만큼 김민재의 능력을 간절히 원하는 김 감독이다. 

최근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의 관심을 받아 화제가 된 김민재도 올림픽을 유럽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길 원한다. 소속팀 베이징 궈안의 차출 협조가 절실한데 대한축구협회는 최근 공식적인 문서를 통해 설득에 돌입했다. 재정난에 빠져 있어 올여름 김민재를 조금이라도 더 비싼 이적료를 받고 유럽으로 보내길 원하는 베이징의 상황도 와일드카드를 성사시킬 수 있는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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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5일 제주에서 열린 올림픽 축구대표팀 평가전 한국과 가나의 경기에서 이강인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강인 “내 거취 문제는 올림픽 이후”…우승에 강한 의지

마지막 한 장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재 후보군으로는 월드 클래스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조현우(울산), 권창훈(수원), 손준호(산둥), 박지수(수원FC), 강상우(포항) 등이 거론된다. 마지막 와일드카드의 향방은 2차 소집 훈련 결과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포지션별 밸런스에 따라 보강이 필요한 곳을 최종 점검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황의조가 와일드카드로 선발돼도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1명뿐이라는 점 때문에 손흥민의 발탁 가능성도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김 감독은 지난 4월 기자회견 당시 황의조와 함께 손흥민도 와일드카드로 언급했다. 소속팀 토트넘의 반대가 거셀 것은 불 보듯 뻔하지만, 손흥민 개인의 의지가 크다면 올림픽 참가 가능성은 살아난다.

김학범호는 지난 4월21일 발표된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조 추첨에서 온두라스·뉴질랜드·루마니아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16개국이 출전하는 본선 무대에서 한국이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추첨 결과라는 평가였다. 올림픽에도 정예 멤버를 보내는 브라질·아르헨티나와 유럽의 강자 스페인·독일·프랑스에 복병인 멕시코·코트디부아르 등을 모두 피했다. 개최국 일본이 “우리가 저 편성을 받았어야 했다”고 부러워할 정도의 행운이 쏟아진 편성이었다. 

뉴질랜드는 대회 최약체 중 한 팀이고, 루마니아는 유럽 예선에서 프랑스를 제쳤지만 현재 선수 소집 단계에서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온두라스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당시 8강에서 신태용호에 좌절을 안겼지만 같은 시드 팀 중 가장 해볼 만하다. 김학범 감독은 “우리보다 약팀은 하나도 없다. 지나친 낙관론은 안 된다”고 경계했지만, 사령탑으로서 당연히 보여야 하는 냉철함에 가까웠다.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는 것이 금맥을 뚫기 위한 1차 목표다. 그럴 경우 한국이 속한 B조 다음으로 수월한 조 편성으로 평가받는 A조 2위와 8강전을 치른다. A조에는 개최국 일본을 포함해 남아공·멕시코·프랑스가 속해 있다. 우승 후보인 브라질·아르헨티나·스페인을 일단 피하는 것이다. 게다가 B조 1위를 차지해 8강을 치르면 조별리그 최종전이 열리는 요코하마에 잔류해 이동을 위한 피로도 최소화할 수 있다.

선수들도 이런 상황을 활용해 금메달이라는 새 역사에 도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2년 전 U-20월드컵을 앞두고도 홀로 “목표는 우승”이라고 외치며 결승전까지 이끌었던 이강인은 이번에도 “금메달을 따고 싶은 게 당연한 목표다. 원팀이 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발렌시아와의 재계약을 거부하며 올여름 이적이 유력하지만 이강인은 자신의 거취 문제는 올림픽 이후라고 못 박을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동준·정태욱·송범근 등 핵심 선수들도 또 한 번의 메달 획득을 넘어 금메달에 도달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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