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터트린 동일인 논란, ‘태풍의 눈’ 되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2 10:00
  • 호수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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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의장 제외로 ‘동일인 지정’ 실효성 도마에…공정위 “제도 유지하되 문제점 보완”

최근 변곡점을 맞은 재계에서 ‘동일인 지정’이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다. 동일인, 즉 총수를 지정하는 문제는 재벌 3·4세 시대의 경쟁력과 재계 순위 변동 등 다양한 현안을 관통하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동일인 지정 주체인 공정거래위원회와 재벌기업의 기 싸움 양상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공정위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에 대한 동일인 지정 제도를 유지하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개선안 마련에 나섰다. 공정위가 6월1일 발주한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제도 개선 방안’ 연구용역 입찰은 마감일인 6월14일까지 참여한 기관이 한 곳밖에 없어 유찰됐다. 입찰 기초금액은 4000만원이었다. 공정위는 재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 오는 11월까지 동일인 제도 개선안을 연구할 계획이다. 개선안을 바탕으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 등을 추진해 내년 대기업 집단 지정 때부터 개선된 제도를 도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맨 왼쪽)이 2020년 3월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를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맨 왼쪽)이 2020년 3월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를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쿠팡 논란 이후 35년 묵은 제도 재점검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둘러싼 외국인 동일인 지정 문제가 제도 개선 착수의 배경이지만, 동일인 제도 자체가 폐지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재계에서 ‘이참에 기업들을 옥죄는 동일인 제도를 아예 없애달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집단은 매년 공정위에 계열사·주주·친족 현황을 담은 지정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각 대기업 집단의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한 공시 의무가 생기고 지정자료에 관해 모든 책임을 진다. 여타 대기업 집단 동일인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동일인 제도가 미비한 점은 있을지언정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재계의 요구를 일축한 것이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모든 대기업 집단 규제의 시작이 동일인 지정”이라며 “제도 개선의 성격을 (동일인 제도 폐지 등) 재벌 규제 틀의 대전환으로 해석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구용역 입찰과 관련한 공정위의 과업 지시서에도 ‘현시점에서 동일인 제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 분석’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제도 개선 논의가 ‘동일인 제도 유지’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해야 함을 명시한 것이라고 공정위 측은 전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입찰을 따낼 연구기관에 동일인 제도가 요구되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책 환경을 외국과 비교·분석하도록 의뢰할 예정이다. 

빗발치는 동일인 지정 중단 요구에 대해선 해당 제도가 대기업 집단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만들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공정거래법뿐 아니라 동일인을 원용하는 다른 법까지 확인하고 △동일인의 정의, 요건, 변경·확인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을 확립하고 △현행 동일인 관련자 범위의 적정성과 타당성을 따져보고 △변화한 정책 환경과 사례를 분석해 외국인 동일인 지정이 필요할지를 판단할 방침이다. 

앞서 공정위가 5월1일 쿠팡 동일인에 김범석 의장이 아닌 쿠팡 법인을 지정하자 갑론을박이 뒤따랐다. 쿠팡은 대기업 집단에 처음 포함됐으나, 실질적 소유주인 김 의장의 경우 미국 국적이란 이유로 동일인 지정을 피했다. 쿠팡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면 우선 김 의장이 지분 10.2%(차등의결권 적용 시 76.7%)로 미국 회사 쿠팡Inc를 지배하고 있다. 쿠팡Inc는 한국 법인 쿠팡(주)을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로 두고 나머지 계열회사인 ㈜떠나요, 씨피엘비(주), 쿠팡대구에프씨제일차(주), 쿠팡대전풀필먼트제일차(주),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유), 쿠팡풀필먼트서비스(유), 쿠팡페이(주)를 지배한다. 

공정위는 그동안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적이 없고, 현행 제도로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 어려워 김 의장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집단 지정 자료에 허위·누락이 있으면 동일인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데, 외국인에게는 형사 제재를 내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동일인을 김 의장으로 지정하든 쿠팡㈜로 지정하든 계열사 범위는 동일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김 의장은 동일인 지정을 피하면서 큰 시름을 덜었다. 쿠팡 측은 “공정위의 의견을 존중한다. 앞으로도 공정거래법을 철저히 준수해 나가겠다”면서 안도감을 에둘러 표현했다. 필연적으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대기업 집단과 동일인 지정 한 달여 후인 6월15일 하이트진로의 동일인인 박문덕 회장이 공정위에 허위 자료를 제출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정위에 따르면, 박 회장은 2017년과 2018년에 하이트진로그룹의 현황 자료를 제출하면서 친족이 지분 100%를 보유한 5개사(연암, 송정, 대우화학, 대우패키지, 대우컴바인)를 누락했다. 그 결과 자료에서 빠진 회사들은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규제망 밖에서 내부거래를 할 수 있었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시사저널 사진자료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시사저널 사진자료

“규제 강화해야” vs “없애야” 갑론을박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김 의장은 8개 계열사를 거느린 금산복합기업집단 총수다. 모회사가 미국 기업이든 총수가 미국인이든 간에 쿠팡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성장했고,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연인(김 의장)도 버젓이 있다”며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제도 취지와 배치됨은 물론 ‘검은머리 외국인’ 총수에 대한 특혜이자, 공정위 스스로가 사익 편취를 감시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향후 사익 편취 규제와 형사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김 의장처럼 외국 국적을 취득하는 재벌 총수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재계와 학계 일각에선 이번 논란을 계기로 공정위의 대기업 집단 규제를 완화하고, 더 나아가 동일인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쿠팡의 대기업 집단 지정 직전인 4월27일 동일인 제도를 비롯한 대기업 집단 규제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전경련 측은 “대기업 집단은 과도한 규제와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기업 집단 중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은 최대 14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10조원 이상)은 최대 188개의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면서 “과도한 규제가 신산업 발굴을 위한 벤처기업, 유망 중소기업의 인수·합병(M&A) 등을 저해하고 있다.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동일인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입법이라고 본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로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동일인 제도 폐지 요구는 과하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 미니 인터뷰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지난 5월 대기업 집단 지정 이후 동일인 관련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해 왔다. 공개 석상에서 “김범석 쿠팡 의장의 경우 국내에 친족은 있었으나, 친족이 지배하는 회사는 전무해 일감 몰아주기나 사익 편취 등의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 “아마존코리아나 페이스북코리아 자산이 5조원을 넘었다고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를 동일인으로 지정해 형사 제재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을까” “올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새로운 동일인으로 지정했듯 제도 개선 과정에서 필요하고 기준·요건에 맞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바꿔나갈 수 있는 문제”라는 등 구체적이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원장에 이은 공정위 내 2인자가 이렇게 직접 소방수 역할을 자처한 사례는 흔치 않다. 동일인 제도 변화가 ‘대기업 집단 규제 2.0’ 시대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 사안이라는 방증이다. 김 부위원장은 공정위에서 카르텔총괄과장, 경쟁정책과장, 기업거래정책국장, 경쟁정책국장, 상임위원, 사무처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한 최고의 베테랑이자 정책통으로 꼽힌다. 그에게 동일인 제도의 미래에 대한 더욱 솔직한 의견을 들어봤다. 

동일인 제도 개선 연구 결과는 언제 나오나. 

“대기업 집단 지정 후 바로 연구용역 발주를 결정해 이달 초 공고했다. 5개월여의 연구기간을 거쳐 결과가 확정되려면 지금으로부터 6~7개월 정도 지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쿠팡 논란으로 촉발된 연구다. 제도 개선의 초점이 관련 문제에 맞춰질 예정인가.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과 보완책 외에도 살펴볼 게 많다. 동일인의 개념부터 모호하다. 동일인을 정하는 절차, 친족의 범위 등등 동일인 제도 전반을 다룬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과 제도 개선 움직임을 계기로 동일인 제도 폐지를 비롯한 공정위 대기업 집단 규제의 대전환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진행할 연구도 이런 니즈(needs)를 반영해야 한다는 말인데. 

“과한 논의 내지 요구다. 공정위의 정책 방향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동일인 제도 유지에 방점을 찍은)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보면 공정위가 의뢰하려는 내용이 무엇인지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 등 대기업 집단 규제가 여전히 꼭 필요하고 시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전제하는 건가.

“그렇다.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대기업 집단 규제는 동일인 지정에서 시작된다. 공정위는 동일인과 관련한 자료 제출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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