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이준석의 ‘슬기로운 대표 생활’
  • 김도형 아주경제 기자·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9 10:00
  • 호수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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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안철수와의 기 싸움 시작…파격 행보에 당내 갈등 조짐도 

한국 정치사에 또 하나의 변곡점으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30대 ‘0선’ 국민의힘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뭇 사람들의 시선은 청와대도, 대선주자 윤석열·이재명도 아닌 이준석에게로 쏠렸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동안 ‘꼰대정당’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던 보수 야당을 일거에 바꿔버렸다. 눈에 띄는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성공’을 이야기하기는 너무 이르다. 대선은 채 9개월도 남지 않았다. 제1야당 대표의 성공 여부는 정권교체라는 결과에 달려 있다. 그런데 차기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에 덮여있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은 당 밖에 있다. 이준석 대표는 산적한 여러 과제를 무사히 처리하며 ‘슬기로운 대표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

ⓒ시사저널 박은숙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6월15일 국회에서 열린 당 대변인 공개 오디션 관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밀당 시작한 1등 대선주자와 제1야당

“우리 당 중심의 야권 대통합이 가시화되고 있다. 우리 당 밖에 있는 훌륭한 주자들, 또 우리 당 안에 아직 결심하지 못한 대선주자가 있다면, 결심을 통해서 정말 풍성한 대선주자군과 함께 문재인 정부에 맞설 빅텐트를 치는 것에 제 소명이 있다.”

이 대표가 6월14일 취임 후 첫 의원총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당 밖의 대권주자들을 대하는 이 대표의 원칙은 간명하다. 이른바 ‘정시 버스론’이다. 당 밖 주자들의 합류 여부와 관계없이 대선행 국민의힘 버스를 출발시킨다는 것이다. 다만 당 밖 주자들이 늦게라도 탑승할 수 있도록 버스는 정류장에 몇 번은 설 예정이다.  

이는 앞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추진했던 방식으로 사실상 범야권 대선 플랫폼이 국민의힘이 돼야 한다는 뜻을 천명한 셈이다. 이 대표는 6월15일 페이스북에 “야권 단일후보는 기호 2번을 달고 뛸 수밖에 없다”고 재차 못 박았다. 당 밖 주자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이자 강력한 자신감이다. 다만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야권 분위기는 사실상 각종 여론조사 1위 윤 전 총장의 ‘독주’에 가까웠다. 야권 단일화의 주도권 자체가 윤 전 총장에게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준석 효과’로 분위기가 다소 바뀌었다. 지지세의 변화가 국민의힘에도 무게를 더해준 모습이다. 이 대표 선출 뒤 젊은 세대의 당원 가입이 줄을 잇고 있고, 호남에서 국민의힘 지지율도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대표의 자신감도 이러한 현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여전히 ‘키’는 윤 전 총장이 쥐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국민의힘 경선이 압도적 지지를 받는 윤 전 총장을 제외한 채 진행되면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보다는 윤 전 총장과의 ‘결선’에 관심이 모이게 되는 셈이다. 대한민국 미래 비전을 논의해야 할 경선의 장이 ‘윤 전 총장과의 단일화’ 논의로 뒤덮이게 되는 건 이 대표로서 피하고 싶은 그림일 것이다. 이러한 판세 속에 양측은 신경전에 돌입한 모양새다. 

이 대표는 연일 윤 전 총장의 입당을 압박하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그는 6월15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우리 당원은 굉장히 훈련된 유권자다. 막판에 ‘뿅’하고 나타난다고 해서 당원이 지지해줄 것도 아니다”며 “결국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국민이 오해할 소지가 있어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입당 마지노선을 8월말로 특정했다.

윤 전 총장은 아직 국민의힘에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모양새다. 윤 전 총장은 “모든 선택은 열려 있다.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6월말~7월초 정치 참여 선언을 할 예정이지만, 섣부르게 국민의힘에 입당해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진보 지지층’을 놓치지 않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 전 총장 측 이동훈 대변인은 6월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내년 대선에서 보수와 중도, 이탈한 진보 세력까지 아울러 승리해야 집권 이후에 (174석 민주당을 상대로) 안정적 국정 운영을 도모할 수 있다”고 했다. 《조국 흑서》 저자인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와의 만남 등은 이런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윤 전 총장 입장에서도 이준석 현상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이를 의식한 듯 이동훈 대변인은 “윤석열 현상과 이준석 현상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대표가 입당 마지노선으로 못 박은 8월말과 관련해선 “7월 한 달 정도 시간이 있다. 8월말이면 시간은 충분히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는 ‘밀당’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그는 6월17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윤 전 총장은) 아마추어 티가 나고 아직은 준비가 안 된 모습”이라며 “입당을 하면 조직적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윤석열 전 검찰총장(오른쪽)이 6월9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안철수와의 통합 신경전도 격화

또 다른 대선주자이자 일부 중도층 지지세력을 점유하고 있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의 합당 또한 이 대표의 중요 과제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 직후 안 대표와 비공개로 회동하며 기대감을 높였으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이 대표와 안 대표의 신경전이 격화되고 있다. 국민의당 측에선 당명 변경, 정강정책 및 당헌당규 개정 등을 요구하고 나섰고, 국민의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이 대표와 안 대표의 구원(舊怨)이 합당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바른미래당 시절부터 지난 4·7 재보선 과정에서 벌어졌던 두 사람의 악연은 유명하다. 이는 이 대표에겐 부담일 수 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경쟁 후보들은 ‘안철수 대표와 사이가 나쁜 이준석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합당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대표와 안 대표는 6월16일 국회에서 ‘공식 상견례’를 가졌다. 인사 자리였던 만큼 겉으론 덕담이 오갔지만 보이지 않는 긴장감도 감돌았다. 이 대표는 “우리 국민들께서 합당 과정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지 않게, 그리고 또 ‘전쟁 같은 합당’이 되지 않도록, 저와 안 대표 간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합당 과정을 신속하게 마무리해서 국민들 앞에 같이 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명 변경 등 논란으로 합당 과정이 기 싸움으로 흐르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도 읽혔다. 

안 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당명 변경 등 요구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라며 “실무에서 대화가 진행되면 서로 논의될 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저희도 지분을 요구하지 않고, 국민의힘도 기득권을 요구하지 않는 공정한 합의가 돼야 한다”며 “그래야 합당을 위한 합당이 아닌 지지층을 넓히는,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는 통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결국엔 양측이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으로 풀이됐다.  

ⓒ시사저널 박은숙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6월16일 국회에서 회동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당내 산적한 과제…증명은 지금부터

당 밖의 과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취임 직후 파격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준석 대표의 방향성이 당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변화의 시도엔 언제나 거부와 견제가 존재한다. 벌써부터 지도부에선 약간의 이견이 포착된다. 이 대표의 대표적인 혁신 방안인 ‘공천 자격시험’ 도입에 대해 당 중진이자 이번 지도부의 최고령인 김재원 최고위원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6월17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민주주의가 확립된 문명국가에서 선출직에 시험을 치게 하는 예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공천권 자체가 국민의 몫인데 여기에 시험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김 최고위원만의 시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파격적인 당선이었던 만큼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이는 이 대표를 향한 당내 일부의 시선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당의 중진인 한 전직 의원은 “이 대표가 참 똑똑하고 신선하기도 하지만, ‘통합’이 중요하다. 무조건 다 바꾸려고 하면 통합을 할 수 없다”며 “기존의 당 질서를 존중하며 여러 혁신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승민·원희룡·하태경 등 당내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제고도 과제다. 이는 이 대표가 제1의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소속 주자들은 2~3%대의 지지율로 매우 저조하다. 이 대표도 당내 후보들을 조명하며 힘쓰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6월1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장이 바뀔 때마다 각광받는 선수는 바뀐다. 지금 이 전장이 유지된다면 윤 전 총장이 유력하지만, 디테일한 경제 등이 화두가 되면 윤 전 총장은 그에 대한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당황할 수 있다. 그러면 다른 분이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누군가를 당기려는 모습은 누군가를 밀어내려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면서 “당 대표는 공정한 경선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을 견제하며 다른 주자들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 대표는 2대2 토론 배틀 등 다양한 기획을 통해 경선을 ‘붐업’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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