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 일시정지 버튼 풀렸다
  • 조용신 뮤지컬 작가․연출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7 12: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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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공연 매출액 전년 대비 10배 폭등
《맨 오브 라만차》 《위키드》 《시카고》 등 흥행 이끌어

부산 문현혁신도시 내 금융단지에는 부산 최대의 민간 공연장인 드림시어터가 있다. 최근 이곳을 방문했을 때 극장 로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티켓을 찾고 포토존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화장실에 길게 늘어선 줄, MD 상품 판매대 앞에도 사람이 몰렸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극장 입장 때 체온을 체크하고 휴대폰으로 좌석번호와 이름, 연락처를 기입한 후 좌석에 앉는 데까지도 꽤 시간이 걸렸다. 객석은 동반자 외 거리 두기로 70% 정도 오픈된 상태에서 남은 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공연을 마치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데만 꼬박 30분이 걸렸다. 현재 이곳에서 공연 중인 인기 뮤지컬 《위키드》의 관객들은 어디든 기다림의 연속이었지만 마스크 너머로 행복한 표정을 보였다.

ⓒ김하라 제공
ⓒ김하라 제공

코로나19 상황에도 부산 《위키드》 공연장 ‘인산인해’

코로나19로 오랜 침체를 겪었던 우리 뮤지컬 공연계가 서서히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 현재 인터파크 티켓 순위에서 부산 《위키드》는 5위를 기록 중이다. 부산 공연은 6월27일 종연 예정이었기 때문에 판매되는 티켓의 양이 적지만 앞서 서울 공연(2월16일~5월2일) 시즌에는 매진을 연달아 기록할 정도로 상반기 흥행에 가장 성공한 뮤지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2000년 국내 초연돼 올해로 21년 차인 뮤지컬 《시카고》의 흥행도 놀랍다. 공연계는 2020년 봄부터 객석 한 자리 띄워앉기로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겨울에는 팬데믹 확산으로 두 자리 띄워앉기 정책이 시행되면서 대다수 제작사가 공연을 포기하는 등 암흑기에 가까운 연말을 보냈다. 하지만 《시카고》는 미래를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그 시기에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고, 다시 동반자 외 한 자리 거리 두기로 완화된 분위기를 타고 4월2일 디큐브아트센터 개막 이후 예매율 1위를 고수하며 오히려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여세를 몰아 7월18일 서울 공연 종료 후 청주·춘천·울산·김해·안성·목포·구미·인천·창원·전주·수원·군포·천안·안동·부산·성남·여수·대구 등에서 순회공연이 예정돼 있다. 이 역시 코로나 이전에도 쉽게 추진되기 어려웠던 장기 공연 스케줄이다.

현재 인터파크 공연 순위를 보면 《위키드》와 《시카고》의 흥행 기록을 따라가려는 신작들이 대기 중이다. 얼마 전 티켓 오픈과 함께 예매율 1위에 등극한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2019년 브로드웨이 개막 3개월 만에 토니어워즈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수상했고, 이듬해 작곡가인 아나이스 미첼이 그래미어워즈 최고 뮤지컬 앨범상까지 수상한 화제작이다. 브로드웨이 초연 2년 만에 전 세계에서 최초로 진행되는 라이선스 공연이기도 하지만, 정작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작년 3월부터 현재까지도 폐쇄돼 있다. 이런 상황임을 감안하면 8월24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한국 라이선스 공연이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르게 현지화돼 공개하는 프로덕션이 된다. 내년 2월27일까지 장기 공연이 예정돼 있다.

뮤지컬 《비틀쥬스》 역시 2021년 공연계를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려놓을 화제작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객석 규모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하는 이 작품은 컬트영화의 거장 팀 버튼 감독의 동명 영화를 브로드웨이에서 각색해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다. 이 역시 한국에 라이선스 뮤지컬로 시차 없이 소개된다.(공연 일정 6월29일~8월7일)

이 밖에도 현재 공연 중인 《드라큘라》 역시 초호화 캐스팅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공연 연습 과정에서 주연배우 일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배우들과 스태프가 상시 마스크를 착용하는 연습실에서는 전혀 감염되지 않았다. 그 이전부터 공연장 내에서 2차 감염 사례도 없다는 것이 학습되면서 오히려 안전한 연습실과 공연장이라는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각인시켜줬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작년 봄 시즌의 인터파크 공연 매출액 대비 올해 매출액은 《맨 오브 라만차》 《위키드》 《시카고》 등 ‘빅3’가 앞에서 끌고 나간 결과 무려 10배 가까이 폭증했다. 매년 조금씩 성장하고 있던 공연 매출 추이가 작년에만 급격히 하락했기에 코로나19 이후 다시 일상을 회복하면 ‘일시정지’ 버튼이 풀리면서 극장가도 정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측해볼 수 있다.   

최근 백신 접종이 가속화하면서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의 완화를 예고했지만, 공연계는 이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초반에는 감염병 전파 우려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극장가 역시 위험 지역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관람시간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고 커튼콜에서 함성도 자제하는 관극 문화가 안착되면서 공연 관람객들의 감염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었고, 해외여행이나 대외 활동이 줄어든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사람이 몰려도 안전한 집객 시설인 공연장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공연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세 보이는 까닭

특히 공연관람을 평소 즐기는 마니아들은 공연 취소와 연기가 일상적이었던 지난 한 해의 티켓 예매 상황을 전쟁터와 같은 시기로 기억한다. 보고 싶었던 공연을 가뜩이나 줄어든 좌석 수 때문에 힘들게 예매했어도 개막 후 갑자기 취소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보니 무조건 초반 공연을 예매하고, 공연이 열리기만 하면 구매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는 이른바 ‘보복 소비’ 움직임도 생겨났다. 예매처마다 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경우가 많아져 마니아들은 오히려 예매를 많이 해둬 일종의 보험처럼 많은 티켓을 가지는 포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19가 낳은 일시적이고 특별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인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공연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상연을 하는 공연이 예전보다 활성화되면서 극장이 정상화돼도 관객들이 온라인 상연을을 완전하진 않지만 부분적인 대안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띄워앉기 좌석 정책이 역설적으로 관객들에게 쾌적한 관람 환경을 가져다준 측면이 있기 때문에 향후 극장마다 관객들의 과도한 밀집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고 있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곧 다가오지만 개인위생과 적당한 거리 두기는 코로나19 이후에도 극장을 포함한 우리 생활에서 필요한 일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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