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일의 메이저리거’ 양현종, 다시 52일을 기다린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6 11: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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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강등 직후 “제가 더 잘해야죠”
이왕에 미국 땅 밟았으니 ‘1승’은 해야 한다는 의지 강해

‘일생의 꿈’이었다. 야구의 본고장,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는 것이.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하지만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양현종(33·텍사스 레인저스) 얘기다.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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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40인 로스터 제외에 “실망하는 눈치”

양현종은 6월17일 메이저리그 26인 로스터에서 제외됐다. 부상자 명단에 있던 이언 케네디에게 자리를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그로 강등되기 전까지 16일 동안 단 한 차례밖에 등판하지 않았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양현종 측 에이전트도 “몸 상태가 선발로 던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구단 측과 마이너리그에 가서 로테이션에 맞춰 등판하며 투구 수를 늘려가자는 공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양현종은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지 하루 만에 방출 대기 조처까지 받았다. 텍사스가 LA 다저스 우완 투수 데니스 산타나를 데려오고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그 좌완 투수 켈빈 바우티스타를 내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는데, 산타나를 위한 로스터가 필요했다.

40인 로스터 제외는 양현종으로서도 뜻밖의 일이었다. 마이너리그에 있다고 해도 40인 로스터에 포함됐느냐, 안 됐느냐에 따라 신분 차이는 크다. 40인 로스터 안에 있다면 메이저리그에 금방 콜업될 수 있지만, 밖에 있다면 마이너리그 신분으로 하염없이 콜업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양현종의 에이전트는 “마이너리그행이 결정됐을 때는 무덤덤했는데,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됐을 때는 양현종이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고 전했다.

양현종은 국내 복귀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일단 마이너리그 잔류를 택했다. 이 또한 48시간 내의 빠른 결단이었다. 그만큼 빅리그 재도전 의사가 확고했다는 뜻이다. 지난 2월 미국 진출 때도 그는 40인 로스터 안에 없었다.

양현종은 지난 4월27일 메이저리그에 콜업됐다. 스플릿 계약(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신분에 따라 연봉에 차등을 두는 계약) 탓에 빅리그 데뷔가 늦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텍사스 선발진이 붕괴하면서 그에게 기회가 왔다. 메이저리그 데뷔 경기(4월27일 LA 에인절스전)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해 4⅓이닝 동안 2실점의 인상적인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팀이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던 터라 부담감이 없었으나 코칭 스태프에 존재감을 알리기엔 충분했다.

5월부터 양현종은 구멍 난 텍사스 선발진을 메웠다. 불펜에서의 인상적 활약 덕이었다. 첫 선발 등판이던 미네소타 트윈스전(5월6일) 때 3⅓이닝 4피안타 1실점의 깔끔한 투구 내용을 보였다. 탈삼진은 무려 8개나 잡아냈다. 5월20일 뉴욕 양키스전에 두 번째 선발 등판해서는 5⅓이닝 3피안타 2실점의 성적을 올렸다. 때마침 우완 선발 카일 깁슨이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선발 굳히기 기회가 왔지만 이후 두 차례 등판에서 양현종은 4이닝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3실점 이상을 했다. 결국 5월31일 시애틀전 선발 등판을 마지막으로 불펜으로 돌아갔다. 6월12일 LA 다저스전에 불펜으로 나와 1⅓이닝 동안 홈런 두 개를 맞고 강판(4피안타 2실점)된 것이 마이너리그로 강등되기 전 마지막 등판이 됐다.

51일 동안 메이저리그에 머물면서 올린 성적은 3패, 평균자책점 5.59. 네 차례 선발 등판 때 성적(3패, 평균자책점 6.60)이 네 차례 불펜 등판 때 성적(평균자책점 4.50)보다 좋지 못했다. “선발 등판 때 조금 부담을 느낀 것 같다”는 게 측근의 말이다.

 

기약 없는 마이너리그 이어지면 7월말 깜짝 국내 복귀도

양현종의 국내 복귀도 점쳐졌으나 그는 도전을 이어가기로 했다. 지난 2월에도 그는 아무런 신분 보장 없이 태평양을 건넜다. 메이저리그 무대까지 밟은 이상 포기란 있을 수 없다. 그에겐 아직 ‘메이저리그 1승’이 없다. 재승격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다. 텍사스 선발진이 그만큼 불안정하다.

양현종은 마이너리그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투구 수를 늘려갈 예정이다. 메이저리그 첫 승격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터라 긴 이닝을 소화할 체력 등이 안 됐다. 그 때문에 체력적인 면을 보완하면서 승격 기회를 엿보겠다는 전략이다.

7월31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 이전에 깁슨 등 텍사스 1~3선발이 이적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터라 팀 내 선발 공백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선발이 부족하다면 승격 1순위는 양현종이 될 것이 분명하다. 양현종이 마이너리그 트리플 A팀인 라운드록 익스프레스에 합류한 직후 곧바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이유다. 마이너리그에서 안정적인 경기 내용을 보여주느냐가 재승격의 관건이다.

기약 없는 마이너리그 잔류가 이어지면 7월말 국내로 깜짝 복귀할 수도 있다. 양현종은 텍사스 구단이 동의해야만 이적할 수 있으나, 연봉 등이 많지 않아 이적을 굳이 반대하지는 않을 듯 보인다. 박병호(키움 히어로즈), 윤석민(전 KIA 타이거즈) 때와는 달리 양현종은 스플릿 계약이기 때문에 양현종이 포기하거나 텍사스가 보전해줘야 할 연봉이 많지 않다. 게다가 양현종은 텍사스와 1년 계약만 했다. 텍사스가 굳이 양현종을 붙잡을 이유가 없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 양현종의 신분은 FA였기 때문에 굳이 원소속팀인 KIA 타이거즈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야구계 한 관계자는 “양현종이 7월말 복귀하느냐, 10월말 복귀하느냐에 따라 총액 면에서 20억~30억원의 차이가 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때마침 7월말은 2020 도쿄올림픽 대표팀 차출로 KBO리그가 휴식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협상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양현종은 가을야구 진출을 노리는 팀들에 충분히 매력 있는 FA다. 물론 뼛속까지 ‘타이거즈맨’인 양현종은 KIA와 협상을 우선시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양현종에게 메이저리그는 꿈의 완성을 위한 무대다. 미국 야구 문화를 배우려는 의지도 확고하다. 양현종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국에서 그를 계속 지켜봤던 그의 에이전트 말에 답이 있다. “마이너리그에 내려갈 때 양현종이 그랬다. ‘제가 더 잘해야죠’ ‘제가 이겨내야죠’라고. 자신이 택한 결정은 자신이 끝까지 책임지는 성격이다.” 지금은 꿈을 향해 가는 양현종을 응원해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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