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북한에 넘어갔다…김정은의 결단이 필요해”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8 10: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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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  “내년 2월 베이징에 모여도 ‘앙꼬 없는 찐빵’ 될 것”

빠르게 흐르던 한반도 평화 시계가 멈췄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 간 협상이 결렬되면서다. 책임은 뒤에 놓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제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공은 북한에 있다”고 강조했다. 하노이 회담에서의 북한 입장의 수정이 필수적이며, 그 첫 단계는 ‘핵 동결’이어야만 한다고 했다. 특히 “북한이 ‘종착역은 어디다’라는 것에 대해 로드맵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며 “역사적으로 스몰딜(small deal)은 모두 실패했다. 북한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미·중 패권 갈등 속 우리의 대응 또한 중요한 과제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해 “한·미 군사동맹은 중국 대응이 아닌 대북 목적으로 한정하고, 전략 분야의 기술 협력, 특히 반도체, IT 기술, AI 등과 관련해선 미국과 협력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현재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외교·안보 자문 역할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이슈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상당 부분 한·미 동맹의 외연을 확대한 점, 이른바 한·미 포괄적 전략 동맹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성명이 채워졌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물론 앞으로 후속 조치를 통해 실천하는 작업이 남아 있긴 하다. 솔직히 굉장히 놀랐다. (문재인 정부가) 왜 갑자기 미국 쪽으로 다가간 것일까. 상당히 의아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뜯어보니 결국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에 대한 내용을 공동성명에 넣기 위해 미국이 작성한 초안을 사실상 거의 수용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선언의 공통분모는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이다. 청와대가 두 합의에 집착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초기 브랜드라고 하는 종전선언, 그걸 임기 내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내 북한과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 수 있을까.

“원래는 도쿄 올림픽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올라타 종전선언 카드를 띄울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이 일찌감치 불참을 통보했다. 그렇다면 정부 입장에서 남은 카드는 하반기에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거나 우리 대선 직전인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거다. 제가 보기엔 쉽지 않다. 미국에선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얘기도 나오는 판에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올 것 같진 않다. 그곳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온다면 남·북·중이 모이는 것인데, 설령 대형 이벤트가 만들어지더라도 결국엔 앙꼬 없는 찐빵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좀처럼 진전이 없는데.

“핵 문제를 풀려면 우선 하노이 회담에서 피력된 북한의 입장이 수정돼야 한다. 당시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풍계리 핵실험장을 비롯해 영변 핵시설 폐기를 들고 나서며 2016~17년 채택된 핵심 제재 5개를 해제해 달라고 했지만,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거절했다. 사실상 제재 완전 해제에 버금가는 요구였다. 그걸 받아내기 위해선 북한이 훨씬 많이 내놓아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등가성 교환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건 북이 스스로 ‘종착역은 어디다’라고 로드맵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근데 이걸 못하겠다는 것 아닌가. 역사적으로 1994년 제네바 합의, 2006년 2·14 합의 등 지금까지 로드맵 합의 없는 부분적, 스몰딜을 얼마나 많이 해 왔나. 모두 실패했다. 북한의 결단이 필요하다.”

단계적 접근도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당연히 일정한 단계를 밟아야 할 텐데, 우선은 첫 단계가 핵 동결이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렇게 된다면 핵 동결에 대해 북한에 뭘 줄 것인가에 대한 패키지를 잘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건드려선 안 되고, 백신이나 식량, 비료 등 인도적 지원 등을 할 수 있겠다. 미국이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해줄 수 있다면 우리와 미국이 함께 패키지를 제시해 핵 동결을 시키는 식으로 단추를 끼워볼 수 있겠다. 다만 북한이 받을지가 미지수다.”

일각에선 가역적인 제재 완화와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두고 미국과 북한이 동등한 조건에서 협상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북한이 계속해 수없이 많은 합의를 어겨온 것 아닌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제재를 다시 복원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협상이 안 된 이유는 북한이 핵을 계속해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 등을 보면 미국이 꽤 적극적인데, 과연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에 올라 있을까.

“성명을 보면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의 완전한 이행과 북한 인권 등이 포함돼 있다. 미국이 의도적으로 대북 정책을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은 북한을 매우 잘 파악하고 있다. 북한 태도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동시에 서두르지 않겠단 얘기다.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거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김 위원장이 ‘대화와 대결 다 준비돼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무슨 의미일까.

“대화를 이야기한 건 과거 지도자(김 위원장)의 입장을 변경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명분을 쌓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선 긍정적이다. 그러나 핵심적으로는 아직도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결단을 못 내렸기에 양쪽 가능성에 다 대비하겠단 의미다. 미국의 자신들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이나 대중(對中) 전략을 보면 북한도 기대와 함께 우려도 하고 있을 거다.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또 하반기 한·미 연합훈련 재개 가능성에 쐐기를 박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본다. 대화를 하고 싶거든 연합훈련을 재개하지 말라는 거다.”

결국 북한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를 보면 북한은 나오라고 하면 더 안 나온다. 딱 공을 북한 쪽에 던져놓고 기다려야 한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뜻은 아니다. 막후 채널을 가동하고 특사를 보내며 ‘여지가 있다’는 신호를 계속 줘서 도발을 억제하는 등의 관리는 필요하다.”

G7 정상회의 참석에 대해 긍정적 평가가 많다. 어떤 숨은 의미가 있다고 보나.

“우리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건 매우 좋은 일이다. 특히 이번에 공식 초청국이 우리와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네 나라였다. 자세히 보면 남아공과 호주는 미·중 틈바구니에서 미국과 잘 지내며 대처를 잘하고 있는 나라다. 반면 인도와 한국은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는 케이스다. 따라서 경제 규모나, 인구 규모 등이 세계 10대급인 두 나라를 초청해서 끌어당기기 위한 그런 전략적 포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담도 많이 느끼게 됐다. 이번 G7에서도 역시 성명에서 북한 문제가 언급이 됐다. 심지어 이튿날 나토(NATO) 회의에서도 언급이 됐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북핵 문제의 심각성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는 이제 글로벌 차원에서 신경 쓰는 문제라는 뜻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남북 화해, 교류, 협력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국제적 공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확인된 거라고 본다.”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역대 어떤 보수 정부보다도 미국 쪽으로 다가갔다’고 평가했다. 미·중 갈등 속 미국을 택한 측면도 있다고 보나.

“극적인 전환이 이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의 반발 등에 대해 외교부 장관 입을 통해 많은 물타기 작업이 이뤄졌다. 역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한·미 관계의 소위 외양적 진전을 받아들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수사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공동성명엔 좋은 내용들이 분명 담겨 있으니 차기 정부에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줬다는 측면은 있다고 본다.”

미·중 패권 경쟁 속 우리의 전략도 외교적으로 매우 중대하다. 우리가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우선 한·미군사동맹은 대북 목적으로 한정해야 한다. 중국을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한·미 동맹을 북한과 중국에 동시 대응하는 메커니즘으로 바꾸는 것에 반대한다. 그렇게 하면 중국도 가만있지 않을 거다. 다만 글로벌 체스판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가운데 중국의 ‘일대일로’가 있고, 다른 쪽에선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4국 연합체), 나토 등이 협공을 편다. 또한 최근엔 미국과 유럽연합(EU)간 TTC(무역기술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는데, 반도체 등 4차 산업 기술 협력을 하겠단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린 중국과 정상적인 교역을 계속 하면서도 전략 분야의 기술 협력, 특히 반도체, IT 기술, AI 등과 관련해선 미국과 협력해야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이 부분에선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갖고 있다.”

한국의 쿼드 가입 논란도 쉽지 않은 문제다.

“쿼드는 진작 가입했어야 했는데 이미 기회의 창이 닫혔다고 본다. 미국이 백신 협력이나 기후변화 등을 다루는 포럼 같은 것들을 개최하며 ‘들어와라’ 했지만, 우리 정부는 못 들은 척, 이해 못 한 척 피했다. 그러니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조정관이 ‘당분간 확대는 없다’고 닫은 것 아닌가. 대신 쿼드 국가 간 실무 워킹그룹 3개가 있다. 백신·기후변화 협력을 비롯해 하나가 신기술 협력인데 특히 신기술 분과에 한국이 들어가는 게 우리가 어디 편에 서는지 중요한 가늠자 중 하나라고 본다. 제가 보기엔 우선은 이 세 워킹그룹에 들어가 견해도 내고 협력할 거 하면서 대처해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반발은 없을까.

“없을 것이다. 말한 대로 판이 변하고 있다. 과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처럼 무차별적 보복을 하기 힘든 구조로 가고 있다. 이제는 미국 편에 섰다는 이유로 중국이 보복할 땐 다른 나라들이 함께 집단적으로 중국에 보복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 미국이 그 판을 짜며 주도하고 있는 거다. 유럽도 바이든 대통령 들어서 나름 중국의 나쁜 행태도 잡아가며 소위 기존 국제질서를 유지해나갈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사동맹, 기존의 통상관계, 신기술 분야 등을 나눠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정답은 역시 미·일과 잘 지내야 한다. 그래야 중·러에도 무시당하지 않는다. 줄타기 외교는 양쪽 모두로부터 무시당하고 배척당할 위험이 굉장히 높다. 이는 호불호가 아닌 국익과 관련된 것이다.”

한·일 관계도 좀처럼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우리 정부가 초기에 대처를 잘못한 측면이 있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시킴으로써 2015년 위안부 합의의 대들보를 허물었다. 도쿄올림픽 때 북한을 부르기 위해서인지 연초엔 또 입장이 달라지는 듯했다가 또 냉각이다. 올림픽 홈페이지의 독도 표기 문제까지 터졌다. 한·일 관계가 바닥인 줄 알았더니 그 밑에 지하실까지 있다는 걸 확인한 거다. 해답은 역시 투트랙이다. 역사문제와 안보협력 문제를 연결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역사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새롭게 얘기를 나눌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그러나 안보에 대해선 북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필요하다. 한·미·일 안보협력 시각에서 봐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 때도 ‘미국한테만 잘하면 미국이 우릴 인정하겠지’라며 이를 오판했다. 그러나 미국 역시 한·미·일 관계를 매우 중시하기에 조금 과장해 얘기하면 일본 문제 때문에 북한 문제가 안 풀린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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