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하노이 회담 리패키지’로 대화 물꼬 터야”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8 10: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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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베이징 올림픽서 中 역할 가능성도”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외교안보적으로 가장 아쉬운 대목은 역시 어그러진 북·미 회담이다. ‘마침내’라는 기대는 ‘역시나’라는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대화와 대결’ 모두를 말했다. 이제 문재인 정부에게는 기회가 없는 것일까.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하노이 회담 3주년이자 중국 베이징올림픽이 있는 내년 2월에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 원장은 확실한 한·미 공조를 시작으로 우리가 북·미 사이에서 꾸준하고 치열한 중재자 역할을 한다면 이 시나리오는 불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의미는 무엇이라 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09년 G8 확대정상회의에 16개국 정상들과 함께 초청받았다. 그때와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일본의 반대로 시간은 걸리겠지만 우리는 참관국으로 계속 갈 것이라고 본다. 이제 ‘준 G7’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 위상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경제적·군사적으로 우린 이제 확실한 세계 10위권이다. 내부에선 평가가 박하지만 ‘K-방역’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엔 ‘기후위기 깡패’로 불렸지만, 지금은 개과천선한 부분도 인정받고 있다. 우린 분명 전진하고 있다. 과거 OECD 30개국에 포함된 나라에서, G20에 속한 나라로, 이제는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로 말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한국의 역할과 위상이 달라진 게 있나.

“트럼프와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기조는 완전히 다르다. 바이든 정부는 정당성 확보를 굉장히 중시한다. 그래야만 동맹국을 모으고 국제 거버넌스를 회복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자유무역 등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런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실리적인 면에서도 우린 중요한 파트너다. 미·중 대결 구도 속 마침 반도체 문제 등 글로벌 밸류체인이 재편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가진 실력이 상당하다.”

긍정적인 면만 있지는 않을 텐데.

“그렇다.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그에 대한 책임과 요구받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끌어들여서 자유진영에서 한국이 역할을 하게 한다는 의미도 분명히 존재한다.”

북한 문제를 얘기해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냈다. 4월 말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 완료를 발표한 이후 북한의 첫 공식 반응인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간 보기’로 해석할 수도 ‘땅 다지기’라고 볼 수도 있다. 북한 입장에선 일단 미국의 대화 용의를 확인했다. 대북 적대 정책을 확실히 포기했다는 걸 먼저 약속하라는 게 북한의 속내다. 북한은 먼저 미국 측의 제안을 덥석 물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다르게 보면, 북한은 항상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먼저 정리한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이 바로 대화 테이블로 나온다고 보는 해석도 지나치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다시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일단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적잖은 성과가 있었다. 북한 문제에 대한 공조의 틀을 잘 다졌다. 기본적으로 잘 다져진 플랫폼을 만들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의심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한반도 문제를 삼각형에 비유한다면, 지금은 북·미와 남북이라는 두 변이 막혀 있다. 이럴 때일수록 한·미 공조가 매우 중요한데, 그 공고함을 양국이 모두 확인했다. 한·미동맹과 대북관계 모두에서 양국이 상당한 신뢰를 쌓았다고 본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 대화와 협력, 관여를 지지한다’고 밝힌 부분이다. 저는 이 대목을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한국에 위임(delegate)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미국 입장에서 지금 북한과 중국에 먼저 양보를 하긴 어렵다. 새로 출범한 정부이고 강한 정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내부적으로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데 ‘제재 완화’ 등의 카드를 바로 낼 수는 없다. 그러니 북한도 고민이 커지는 거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제재 문제를 건드릴 수는 없다. 그러나 제재를 우회하거나 제재의 예외적 협력 등은 남북이 할 수 있다. 탄소중립 문제나 재생에너지 부분의 협력도 가능하다. 백신 협력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가능하다.”

현재의 교착 상태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게 시간이 충분하진 않다. 막 출범한 바이든 정부와 타임라인이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입장에선 대북 문제가 ‘중요한데 긴급하진 않은 이슈’다. 북한 문제를 현재 수준에서 관리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미국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또 북한 문제는 미국 입장에선 골치 아픈 문제다. 해결하긴 어려운데 잘못 건드리면 손해가 난다. 그러니 내년 우리 대선 결과를 보면서 그동안 ‘전략적 인내’ 포지션으로 갈 수도 있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한국이 치고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치고 나갈 방법은 무엇이라 보나.

“일단 남북 협상은 비공개로 해야 한다. 실무 협상의 디테일을 공개할 필요가 없다. 생중계 하다 망한 사례가 많다. 비공개로 서로의 조건을 놓고 어느 정도 조율을 한 다음 공개로 갔다가 정상 간의 추인을 받는 게 제일 좋은 시나리오다. 내년 2월 말이 하노이 정상회담 3주년이다. 그때 ‘하노이 회담 협상안의 리패키지(Re-Package·보완)’를 시도할 수 있다고 본다. 하노이 협상안을 그대로 가져오긴 부담스럽지만, 핵개발 동결이나 북·미 간 수교 협상 시작 등을 적절히 섞는 리패키지라면 북·미가 대화에 나설 수 있다. 여기까지 가는데 우리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가 계속 협상의 조건을 조율하고 중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리패키지가 가능할까.

“하노이 회담은 이란과 미국의 핵 합의와 닮아있다.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 동결이라는 중간 단계에서 합의를 시도했다는 의미다. 북한의 영변 핵 시설 폐기와 핵 동결을 차례로 내놓고, 미국의 제재 일부 완화와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 등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까지 가는 중간 단계를 키우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선 핵을 먼저 포기하면 미국이 군사적으로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카다피 트라우마’가 있어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분석도 있는데.

“맞다. 북·미가 서로 다른 안보 딜레마에 빠져있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데 서로 먼저 총을 내려놓으라는 대치 구도다. 이게 균형적인 힘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전혀 아니다. 미국은 속아도 죽지 않는다. 체면을 구기고 약간의 국익 손실이 있다. 반면 북은 속으면 죽는다. 서로의 절박성이 다르다. 이 얘긴 거꾸로 하면 미국이 양보하지 않으면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북은 계속 믿을 수 있게 해달라며 단계적 협상을 말하는 거다. 북한 입장에선 군사훈련 종료와 종전선언,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하게 된다.”

‘살라미 협상’으로 북한이 핵을 개발할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비핵화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여기엔 잘못된 전제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선 핵을 가진 것보다 핵을 포기하는 게 더 좋아야 협상에 임할 유인이 생기게 된다. 경제뿐만 아니라 체제 안정과 생존을 위해서도 그렇다.”

중국의 역할도 중요할 텐데.

“맞다. 올해 열리는 도쿄올림픽을 활용하면 좋았겠지만 코로나19 상황도 그렇고 지금 한·일 관계도 그렇고 여러모로 상황이 맞지 않았다. 내년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이 때 중국이 의외로 북한 문제 해결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중국 입장에서도 북핵 문제 해결에 역할을 함으로써 중국이 위협적인 세력이 아님을 전 세계에 천명할 수 있는 기회다. 가령 한국에서 북한을 거쳐 베이징까지 육상으로 올림픽 응원 열차가 간다면 상당히 주목받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중국의 평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거라 중국도 좋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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