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파오차이 번역에 당했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6 13: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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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김치 홍보 콘텐츠에 자막이 재 뿌려

방탄소년단이 최근 김치 홍보방송을 했는데, 그 영상에서 김치가 파오차이로 번역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방탄소년단의 자체 웹예능 프로그램인 《달려라 방탄》 142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방탄소년단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초빙해 김치 만들기에 도전했다. 

방탄소년단은 “《달려라 방탄》을 해외 팬 여러분들도 많이 보시기 때문에 한번 따라 해보셔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팬을 의식하면서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종원 대표는 “이거 장담하지만 해외에 있는 재료로도 만들 수 있으니까”라고까지 말했다. 외국인들이 현지에서 따라 할 수 있는 조리법을 소개했다는 뜻이다. 

이 방송은 찬사를 받았는데, 바로 중국 일각의 김치 문화침탈 때문이다. 김치가 파오차이의 일종 또는 변형이라며 마치 중국문화의 일부인 것처럼 중국 일부 누리꾼들이 주장해 왔다. 문제는 그들이 중국 내에선 일부라고 해도 그 숫자가 엄청나다는 점이다. 중국의 인구 자체가 워낙 많기 때문에 그중에 1%라도 1000만 명이 넘는다. 그래서 수많은 중국 누리꾼이 홍보전을 전개하면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고, 해외인들 또한 그런 여론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방탄소년단이 자체 웹예능 프로그램인 《달려라 방탄》 142회에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김치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네이버 브이라이브 화면 캡처
방탄소년단이 자체 웹예능 프로그램인 《달려라 방탄》 142회에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김치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네이버 브이라이브 화면 캡처

방송 자체에는 찬사 쏟아졌지만… 

올 초 김치 영상으로 논란을 일으킨 중국 유튜버 리즈치의 경우 유튜브 구독자 1400만 명, 웨이보 팔로워 2800만 명, 페이스북 팔로워 408만 명을 보유했는데, 이 팔로워들 중에 서구인도 많이 포함됐다. 당시 리즈치는 김치와 김치찌개를 만드는 영상에 ‘Chinese Food’라는 키워드를 달았다. 잘 모르는 서양 사람들, 또는 중화권 사람들도 이런 게시물을 보면서 김치를 중국문화라고 오인할 수 있다. 그러면 김치가 한국문화라고 주장하는 한국인에게 악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스타인 방탄소년단이 김치 홍보에 나서면 수많은 중국 누리꾼을 능가하는 파급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방송에 찬사가 쏟아진 것이다. 방송에서 RM은 “김치에 우리 소울, 영혼이 있지 않나”며 김치에 한국인의 혼이 담겨 있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당시 방송에서 백종원은 김치의 특징으로 발효를 언급하고, 액젓과 새우젓을 쓴다는 점도 설명했다. 발효를 통해 일본의 기무치와 다른 한국 김치만의 특징이 적시됐다. 액젓과 새우젓을 통해서는 김치가 파오차이와 다른 음식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세계적으로 동물성 젓갈이 들어가는 채소 절임 음식은 한국의 김치가 유일하다고 한다. 중국 파오차이에도 당연히 젓갈이 안 들어가기 때문에, 젓갈을 통해 김치의 독자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이 이렇게 의미 있는 김치 방송을 했는데 자막이 재를 뿌렸다. 해외 시청자들이 많이 볼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번역작업이 이뤄졌는데, 중국어 자막에서 김치가 ‘파오차이(泡菜)’로 번역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어 자막으로 영상을 본 사람들은 방탄소년단이 파오차이 방송을 하는 걸로 오인할 수 있다. 기껏 김치 홍보방송을 했는데 자막이 파오차이 방송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한국의 김치를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인지하고 봐도 자막에 파오차이라고 나오기 때문에 ‘아 역시 한국 김치는 파오차이의 한 갈래구나’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는 방탄소년단 영상을 통해 한국인들도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표기한다고 알려지면, 중국 누리꾼들의 억지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이 영상은 네이버 ‘브이앱’을 통해 송출됐다. 네이버 측은 “해당 영상의 번역은 중국어 전문 번역가들의 참여로 진행됐으며 농림축산식품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김치 중국어 표기에 대한 입장을 참고해 번역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표기 지침’ 훈령을 제정했는데, 제4조에 ‘중국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음식명의 관용적인 표기를 그대로 인정한다’며 그 예로 ‘김치-파오차이’를 적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의 항의가 이어지자 문체부는 작년 12월에 “향후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와 전문가의 협의를 거쳐 훈령을 정비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아직 개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이한 문체부와 네이버 

문체부의 훈령은 너무 안이하다. 원칙적으로 상대국의 언어를 존중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김치-파오차이’는 단순한 표현법 차원이 아니라 중국이 지금 우리나라를 향해 문화침탈을 해오고 있는 중대한 이슈다. 우리는 김치를 우리 문화로 지키고 세계에 알려야 할 입장이 됐다. 그런데도 우리 문체부가 상대국의 관용적인 표기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에 머물러 있는 데는 문제가 있다. 지난해 12월에 ‘정비해 나가겠다’고 했는데, 올 상반기에 김치 논란이 크게 터졌다. 어떻게 아직까지 그대로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올 초 리즈치 영상을 두고 논란이 일 당시 중국 정법위원회 위원장인 안젠이 “김치는 중국 5000년의 찬란한 문화 가운데 구우일모(아홉 마리 소에서 뽑은 털 한 가닥같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이러한 문화유산과 수많은 ‘최초’를 만들어낸 중국의 혁신 정신을 지켜가야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져 공분이 들끓기도 했다. 이런 논란 속에 김치 문제는 우리 누리꾼들 사이에서 첨예한 이슈로 떠올랐는데, 대한민국 문체부만 태평한 세월 속에 있었던 것일까. 

네이버 측 해명에 등장하는 번역 전문가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치 이슈에 대해 설사 정부가 빠른 대처를 못 해도 자신들이 먼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새로운 번역 원칙을 제시했어야 한다. 적어도 전문가라면 말이다. 

네이버도 문제다. 한국 최대 포털사이트로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고, 해외에서 한국을 접하는 창 역할도 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김치 이슈처럼 엄중한 사안에 대해선 스스로 기준을 세웠어야 한다. 얼마 전 파오차이 주먹밥 논란을 겪은 후 GS25와 세븐일레븐 모두 전수조사를 통해 파오차이 표기가 들어간 제품들의 판매를 중단했다. 유통업계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 최대 포털과 번역 전문가, 문체부가 문제 인식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놀랍다. 

결국 이러한 안일함 때문에 방탄소년단의 선행에 재가 뿌려졌다. 이 사건이 파오차이 관련 논란으로 비화하면서 중화권에서 방탄소년단의 입장이 더 곤혹스러워졌다. 안타까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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