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최재형 등판에 좌고우면 하는 스타일 아니다”
  • 김태은 머니투데이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5 14: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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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등 켜진 윤석열 전 총장 측 대선 플랜… 당 밖에서 중도층 외연 확장에 주력할 듯

정치 아마추어의 한계일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 선언’을 하기도 전에 대권 행보에 경고등이 켜진 모습이다.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놓고 보인 ‘갈팡질팡’ 행보, 선거 캠프 첫 스태프로 임명한 대변인의 열흘 만의 전격 사퇴 등 악재가 이어졌다. 여기에 ‘X파일’ 폭탄까지 떨어지자 야권에선 ‘윤석열 대안론’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대선주자 지지율 상승 추세가 꺾여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과의 관계 설정에서 벌어질 주도권 싸움이나 본격적인 검증 과정에서 필요한 대응 능력 측면 등에 지지자들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정치권 안팎에선 “윤 전 총장이 ‘정치 선언’ 이후 행보에서 확실한 스탠스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면 중대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윤 전 총장이 6월29일에 국민들 앞에 직접 나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고 밝힌 점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지금 야당에 입당하면 ‘원오브뎀’ 돼버려”

윤 전 총장의 정치 행보에 참여하고 있는 복수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국민의힘을 정권 교체의 핵심 플랫폼으로 삼아야 한다는 기조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선거캠프 조직을 따로 꾸리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국민의힘과 합쳤을 때를 상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의힘에 들어가면 전적으로 당 조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재직해서인지 기존 정치인과는 다르게 별도의 개인 조직을 만드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상당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국민의힘에 입당하되 시기는 다소 늦추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윤 전 총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윤 전 총장과 접촉한 국민의힘 의원들 중 일부도 조기 입당에 반대 견해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사정에 밝은 한 전략가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들어오면 ‘원오브뎀’이 돼버린다”며 “바깥에 머무르면서 이 대표와 밀고 당기는 팽팽한 신경전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모두와 치고받는 모습이 경선이나 본선에 더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4·7 재·보선부터 비중과 영향력이 커진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확실한 명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조기 입당을 망설이게 되는 이유다. 불과 석 달 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었던 윤 전 총장의 정치 행보에 대해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이 “지금 국민의힘 입당을 거론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예의가 아니다”며 “국민 말씀을 먼저 듣겠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치인 윤석열’으로서 국정 운영 역량과 미래 비전에 대해 독자적으로 국민들에게 인정받아 소기의 성과를 안고 국민의힘에 들어가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 사퇴 이후 정치 행보를 준비하는 초반엔 ‘적폐 수사’의 원죄론을 의식해 옛 친박(親박근혜) 세력을 포용하고 TK(대구·경북) 정서를 고려한 행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거나 5·18을 계기로 현 집권세력에 대해 이념적 대립각을 강하게 세운 것, 보수 성향의 조선·동아 출신 언론인을 대변인으로 선임한 것 등이 그런 사례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조기 입당론을 둘러싼 내부 혼선도 이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의 당선으로 적폐 수사 원죄론 부담은 떨쳐낼 수 있게 됐다. 이 대표가 “탄핵은 정당하다”며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합류에 걸림돌을 제거해 주면서 윤 전 총장도 정치적 공간을 좀 더 넓게 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으나 문재인 정부의 부패와 당당히 맞섰던 검사는 위축되지 않을 것이며, 더 큰 덩어리에 합류해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국민의힘 문을 활짝 열어젖힘으로써 역설적으로 윤 전 총장이 좀 더 여유 있게 국민의힘에 입당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윤 전 총장은 당분간 국민의힘 입당과 상관없이 국민들을 현장에서 만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그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정치 선언’ 역시 청년세대와 미래산업 등을 키워드로 삼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X파일’ 논란과 최재형 감사원장의 대선 출마 등이 지지율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윤 전 총장 측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X파일이라 불리는 공작정치에 하등 거리낄 게 없고 허위 사실이 불거질 경우 반박할 준비도 다 돼 있다”며 “최 원장이 정말 정치권에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 지지율이 낮아질까 봐 좌고우면하는 건 윤 전 총장의 스타일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X파일에 대한 반박 준비 다 돼 있어”

연일 입당을 압박하고 있는 이준석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윤 전 총장 측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의 변화와 쇄신을 이끈다면 윤 전 총장이 이에 더해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아 정권교체를 위해 서로 ‘윈-윈’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을 몰아붙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묘하게 윤 전 총장의 정치 행보를 배려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대표는 윤 전 총장의 입당 시기를 당초 전당대회 직후인 6월로 내밀었다가 최근 8월까지도 기다려줄 수 있다고 한발 물러났다. 사실상 윤 전 총장의 정치 일정에 맞춰 압박 방식도 달리 가져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X파일 논란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문서”라며 윤 전 총장을 적극 엄호했다. ‘이준석계’를 자처하는 하태경 의원이 윤 전 총장 측의 불법사찰 주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거들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윤 전 총장 측이 무대응 입장에서 적극 반격으로 대응 태세를 전환할 수 있었던 데도 이 대표를 위시한 국민의힘의 방어가 힘이 된 측면이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에게 정치를 배웠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내 입지를 다지기 위해 윤 전 총장을 최대한 이용할 것”이라며 “이 대표가 윤 전 총장에게도 쉽지 않은 파트너일 테지만 결과적으론 정권 교체를 위해 두 사람이 좋은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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