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채가 ‘만병의 근원’은 아니다
  • 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5 17:0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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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지표들을 보면 좀 심각한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은 게 몇 가지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빚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게 첫 번째다. 일단 부정적인 면을 좀 짚어 보자. 한국은행의 금융안정 보고서 최근판에 나온 수치를 보면 올 1분기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4.7%다. 역대로 가장 높은 수치다. 기업부채도 적지 않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더한 부채 총량은 GDP의 216%다. 한마디로 부채가 너무 많고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이다.

금융위원회가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한 4월29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서 고객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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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긍정적인 부분을 이야기해 보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주택을 담보로 빌린 대출이 많고, 주로 고소득층이 받은 대출이다. 그래서 그 부채가 문제가 되거나 상환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부채가 많다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부채가 많음으로써 생기는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나 이자 지출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소비의 둔화 등이 걱정거리인데, 우리나라는 비교적 건강한 부채의 비중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가계부채가 늘어가면 뭔가 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사실 진짜 걱정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면 요즘 은행들이 새로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대출상품 중에 만기 40년짜리 모기지 대출은 가계대출 억제 정책이 만들어낸 부작용의 산물이다.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집을 구입할 때도 만기까지 반드시 원금을 모두 갚는 방식의 대출만 가능하게 하고, 소득의 일정 비율 이상은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쓰일 수 없게 강제하다 보니 소득이 그리 많지 않은 젊은층은 아예 대출을 받지도 못하고, 집을 구매하지도 못하게 됐다. 정부가 고민 끝에 내놓은 고육책이 만기를 40년으로 더 길게 늘려서 매월 상환하는 대출 원금을 줄인 것이다. 집값이 더 오르면 아마 만기 50년, 60년짜리 대출도 나오게 될 것이다.

가계부채 대책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져오는 이유는 부채를 반드시 줄여야 한다는 총량 감축 목표에 너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주택이나 주식 같은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늘어나는 부채는 자산을 매입하는 이들에게는 부채이고, 부채의 증가로 나타나지만 그들의 그런 매입에 힘입어 오른 가격에 자산을 매도한 이들에게는 그만큼의 매각 차익이 생긴다. 그리고 그것은 금융자산의 증가로 나타난다. 실제로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44.7%로 1년 전보다 2.9%포인트 하락했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주택 매수자와 주택 매도자 사이의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의 변화도 나타난다.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집을 팔고 그 돈으로 노후생활을 감당하고 젊은이들은 기꺼이 부채를 짊어지고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자산의 순환이자 이동이다. 그걸 막으면 노인은 노인대로 힘들고, 젊은이들은 그들대로 괴롭다. 부채의 증가가 긍정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부채가 계속 늘어나고 수십 년째 계속 부채 걱정을 하지만, 경제가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부채 증가의 반대쪽에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현상 때문이다.

부채의 증가는 경제 성장의 원인이자 결과물이다. 그래서 그 자체로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다만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것이라고 해도 경제의 능력치 이상으로 늘어나게 할 수는 없을 뿐이다. 마치 밥을 먹는 행위가 매우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행위지만 적당량이라는 수치가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이 경계를 넘어선 부채 증가는 부채가 증가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니 조심할 따름이다. 가계부채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자칫하면 밥그릇을 빼앗는 과장된 정책으로 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가계부채 증가가 두려운 것은 그 자체가 갖는 위험보다는 그것이 불러오는 과도한 억제 정책 때문인지도 모른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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