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주의로 가득한 좌파” 독일 진보 정당의 위기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7 10: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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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표적 좌파 정치인 “좌파당 찍지 말라”
요즘 진보 지식인들, 정치적 올바름 강요하고 도덕적 우월성 주장

연방선거를 3개월 앞둔 독일이 본격적인 선거철에 들어섰다. 각 정당에서는 올 상반기 전당대회를 개최해 주요 정책을 발표했다. 6월19일과 20일은 좌파당의 차례였다. 이에 대해 대다수 독일 언론은 전당대회 내용보다는 좌파당 위기에 대해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독일 좌파당은 내부 분열과 노선 문제로 시끄럽기 때문이다.

독일 좌파당은 2007년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당(WASG)’과 ‘민주사회당(PDS)’이 합치면서 구성된 신생 정당이다. WASG는 2004년 당시 슈뢰더 내각의 정책들을 비판하며 사민당 극좌파 및 노조원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당이다. 민주사회당은 동독의 지배 정당이었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을 계승한 당이다. 즉 구동독과 구서독의 극좌파 계열이 합심한 결과가 현재 독일의 좌파당인 것이다. 특히 좌파당은 그 전신들이 노동자를 위한 당이었기 때문에 더욱이 노동운동이나 경제적 약자 보호에 방점을 둔 진보 계열의 정당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진보의 문제의식이 환경 보호나 소수자의 인권 문제로 넘어가면서, 좌파당은 내부에서 분열이 심화됐으며 당 존폐를 언급할 만큼 위기에 봉착해 있다.

좌파당 창당 멤버였던 오스카 라퐁텐(오른쪽)과 그의 아내이자 오랜 정치적 동지인 좌파당공동 원내대표 출신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최근 진보 정당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좌파당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EPA 연합
독일 좌파당 창당 멤버였던 오스카 라퐁텐(오른쪽)과 그의 아내이자 오랜 정치적 동지인 좌파당공동 원내대표 출신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최근 진보 정당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좌파당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EPA 연합

“알맹이 없는 라이프스타일 좌파” 비난

단적인 예로 오스카 라퐁텐을 들 수 있다. 라퐁텐은 사민당 소속 정치인으로, 1990년 총리 후보까지 올랐던 전력이 있다. 그 외에도 1985년부터 1998년까지 자란트주 총리를, 그리고 슈뢰더 내각에서 연방 재무부 장관을 맡았었다. 이렇게 사민당 내에서 굵직굵직한 보직을 맡았던 그는 슈뢰더 내각의 정책들에 반기를 들며 돌연 장관직을 사퇴하고 곧이어 사민당을 떠나 WASG에 합류했다. 이어 WASG가 좌파당으로 넘어가면서 동시에 그도 좌파당의 창당 멤버가 되었다. 그만큼 그에게는 좌파적 이념이 중요했고 사민당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정치적 빈틈이 있었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자란트주에서 유독 좌파당 지지율이 높은 것 또한 바로 라퐁텐이 그곳에 정치적 거점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라퐁텐의 저력을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불과 한 달 전, 자란트주 사람들에게 좌파당을 찍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 이유를 좌파당 내부의 비리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상 그가 현재 좌파당의 노선에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독일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의 불만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독일 언론은 그의 아내이자 오랜 정치적 동지인 자라 바겐크네히트의 목소리를 주목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는 자라 바겐크네히트다. 바겐크네히트는 2009년부터 독일 연방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좌파당 공동 원내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인기 있는 정치인’ 설문조사에서 메르켈 총리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을 정도의 인지도 역시 갖추고 있다.

 

저가 비행 금지·유가 인상이 진보인가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선 그를 극우주의자라고 지적하는 반면,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유일하게 독일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이자 진정한 좌파라고 치켜세운다. 특히 그는 최근 발표한 신간 《독선자들》에 자신이 속한 좌파당의 내부 분열을 적나라하게 담으며 논쟁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독선자들》에서 바겐크네히트는 현재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들을 ‘라이프스타일 좌파’라 일컬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진보 지식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좌파가 아니며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고, 자신들이 타인보다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존재다. 또한 다양한 의견의 공존보다는 획일적인 가치관을 퍼뜨리고 주입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진정한 좌파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 계층을 옹호하고 그들을 대변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 사회적 약자는 피부색이나 성별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기반에 의해 정의된다고도 밝혔다. 즉 사회적 차별은 성 소수자나 소수민족의 정체성보다는 경제적 약자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는 “국회나 대기업 이사회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비율로 자리를 차지하면 사회적 정의가 실현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동자 혹은 노동자 가정 출신의 사람들이 윗선에서 사라지는 추세라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환경오염 때문에 저가 비행을 금지하고 유가를 올려야 한다는 녹색당을 비판했다. 그러한 노선이야말로 엘리트 계층으로 구성된 지도층이 노동자와 괴리돼 있다는 걸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노선을 추종하는 좌파가 바로 알맹이 없는 라이프스타일 좌파라고 주장한다. 땀을 흘리며 생계를 꾸려가는 독일의 대다수 사람은 저가 항공 없이는 제대로 된 휴가 한 번 즐길 수 없고, 유가가 올라 자동차를 몰지 못하면 직장에 출근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인데, 오늘날 좌파는 이를 간과한다는 것이다. “녹색당이 주장하는 이 같은 정책들은 저가 항공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휴가를 즐길 수 있고 차 없이도 출퇴근이 쉬운 대도시의 비싼 집세를 감당할 수 있는 계층의 머리에서나 나올 수 있다”는 게 바겐크네히트가 강조하는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자신이 속한 좌파당이 녹색당과 유사한 노선으로 이동하고 있는 데 대해 “지금까지 좌파당을 지지했던 노동자들의 표심을 잃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했다.

좌파와 진보는 주로 동일 선상에 놓여왔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의회의 오른쪽에는 온건-보수파, 왼쪽에는 급진-진보파가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진보는 좌파가 되었다. 좌파와 진보는 상대적으로 약자를 더욱 보호하고 불평등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세력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오늘날 독일 좌파당의 내부 분열로 인해, 독일 사회는 좌파와 진보라는 개념이 간결하게 정의될 수 없으며 그 안에 여러 갈래가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은 오늘날 좌파 혹은 진보 정당에 대해, 경제 취약층 보호와 환경문제 해결을 함께 가져가지 못하고 서로 갈라져 소모적 논쟁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두 가지 가치는 함께 갈 수 없는 것인가. 독일 진보정치에 커다란 난제가 던져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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