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판호’ 벽에 막힌 韓 게임 돌파구가 안 보인다
  • 이하은 시사저널e. 기자 (grace@sisajournal-e.com)
  • 승인 2021.07.08 08: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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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난해 한국에서 1조4800억원 벌어들이면서 3개만 허가
게임업계 “무역 불공정 문제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2017년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으로 한국 게임의 중국 진출이 막혔지만, 중국은 한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검은사막 모바일’이 최근 판호(중국 게임 서비스 허가권) 발급에 성공했지만, 함께 신청한 43개 해외 게임 중 한국 게임은 단 1개만 포함돼 문호가 개방됐다고 평가하긴 이르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국내시장에서 해마다 신작을 쏟아내고 있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게임업계는 “정부가 나서 불공정 무역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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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사막 모바일’ 판호 받는 데만 2.5년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이 신청 후 2년 반 만인 6월 판호를 발급받았다. 펄어비스는 중국 퍼블리셔인 아이드림스카이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게임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상당수 한국 게임이 판호 발급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번 명단에서 또 제외돼 중국 시장의 벽이 여전하다는 반응이다.

펄어비스와 함께 판호를 받은 해외 게임은 총 43개다. 이 중 한국 게임은 ‘검은사막 모바일’ 단 1개뿐이다. 지난 2017년 먼저 판호를 신청한 검은사막 PC용은 이번에도 허가가 나지 않았다.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 ‘블레이드앤소울 레볼루션’, 엔씨소프트 ‘리니지 레드나이츠’, 위메이드의 ‘미르4’ 역시 기약 없는 기다림 중이다. 중국 판호를 받은 해외 게임 중 한국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중국 NBD(National Business Daily)에 따르면 외자판호 발급 건수는 △2017년 467건 △2018년 55건 △2019년 185건 △2020년 97건 △2021년 상반기 127건 등 총 931건에 달한다. 이 중 한국 게임은 단 3개다. 지난해 12월 컴투스 ‘서머너즈워: 천공의 아레나’가 3년9개월 만에 판호를 받았고 올해 2월 핸드메이드 게임 ‘룸즈: 풀리지 않는 퍼즐’과 6월 ‘검은사막 모바일’만이 중국 진입에 성공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 게임은 단 한 개도 중국에 진입하지 못했다. 중국이 2017년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경제보복으로 한한령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 선전부 출판국은 지난 4월 중국의 판호 발급 요건을 더욱 강화했다. 바뀐 규정에 따라 △관념지향 △원조창작 △제작품질 △문화적 의미 △개발정도 등 5가지 항목에서 평균 3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한 항목이라도 0점을 받으면 판호를 받을 수 없다. 심지어 세 번 거절당하면 더 이상 발급하지 않는 3진 아웃제를 도입했다. 점수를 만족했다 하더라도 무조건 발급하는 것은 아니다. 판호 승인 게임의 총량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우회로도 막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게임백서에 따르면 그동안 게임사는 판호 발급을 요구하지 않았던 HTML5 게임을 서비스해 왔다. HTML5 게임은 결제 시스템 없이 광고로 수익을 올리는 게임 모델이다. 그러나 판호 발급 대상에 HTML5까지 포함되면서 길이 막혔다. 중국 시장 진출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화평정영’ 사례가 꼽힌다. 중국의 판호 규제로 중국 시장의 길이 막히자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대신 텐센트를 통해 새로운 게임인 ‘화평정영’을 서비스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기존 이용자 데이터를 그대로 승계한 같은 게임이다. 텐센트는 매년 두둑한 수익을 챙기고 크래프톤에 수수료를 지급한다.

6월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1 서울 가상증강현실 박람회 모습 ⓒ 연합뉴스
6월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1 서울 가상증강현실 박람회 모습 ⓒ 연합뉴스

불공정 무역에도 중국 눈치만 보는 정부

중국은 ‘판호’ 만리장성을 쌓는 한편 한국 게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게임공작위원회(GPC)는 ‘2020 중국 게임산업 보고서’에서 지난해 중국 게임이 전 세계에서 올린 매출이 154억5000만 달러(16조8000억원)라고 발표했다. 이 중 한국 시장에서 13억6115만 달러(1조4800억원)를 벌었다. 중국 게임 해외매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컸다. 실제 구글플레이 매출 순위를 살펴보면 다수의 중국 게임이 상위권을 지켰다. 6월30일 기준 ‘기적의 검’ ‘백야극광’ ‘라이즈오브 킹덤즈’가 나란히 5~7위를 차지했다. 텐센트의 백야극광은 지난 6월15일 출시된 지 5일 만에 6위에 올라섰다. 엔씨소프트의 ‘트릭스터M’, 넥슨의 ‘바람의 나라: 연’ ‘V4’, 넷마블의 ‘세븐나이츠2’를 밀어낸 것이다. 50위권 내로 넓히면 ‘삼국지 전략판’ ‘천상나르샤’ ‘파이널기어’ ‘AFK아레나’ ‘원신’ ‘원펀맨’ ‘명일방주’ ‘블라스트M’ ‘소녀X헌터’ 등 중국 게임이 4분의 1을 차지했다. 출시 이후 꾸준히 10위권을 지킨 쿠카게임즈 ‘삼국지 전략판’은 12위를 달리고 있다. 6월17일 출시한 이유게임의 ‘천상나르샤’는 94위에서 19위로 껑충 뛰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게임은 ‘메이드인 차이나’란 꼬리표가 붙어 질 낮은 게임이란 인식이 강했다”며 “지금은 한국 게임을 베끼면서 빠르게 노하우를 습득했고,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글로벌 시장에 대작을 내놓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중국은 올해를 ‘한·중 문화교류의 해(2021~22)’로 선포했다. 그러나 게임산업은 중국의 한한령 탓에 여전히 ‘불공정 무역’ 상황이다. 게임업계는 명백한 역차별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월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한한령 해제를 요청했다. 지난 회담 이후 판호 논의가 이뤄졌냐는 질의에 외교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중국 정부가 판호를 주면 감사히 받고, 안 주면 하염없이 쳐다보는 형국”이라며 “중국은 한한령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지난 4년간 한국, 일본, 미국, 유럽의 판호 누적 발급 건수를 근거로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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