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을 연 홍콩 빈과일보 기자들...“매일 1면에 친중 기사 실릴것”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3 09: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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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길 잃어버린 현지 언론인 4명의 토로…“절망의 도시에 미래가 없다”

‘문자옥(文字獄).’ 중국 왕조시대에 행해진 사상 통제 정책이다. 이에 따라 황제에 비판적인 글을 쓴 사람은 어김없이 투옥되거나 숙청됐다. 왕조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문자옥은 끝나지 않았다. 6월23일 홍콩의 친민주화 매체 빈과일보(蘋果日報)가 당국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폐간됐다. 현지에서는 “문자옥이 다시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빈과일보 직원들은 저항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빈과일보 기자와 마케터 등 직원 4명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일부 직원은 익명 보도를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중국의 탄압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본지는 따로 의사를 밝히지 않은 나머지 직원들의 의견도 익명으로 인용하고자 한다.

홍콩의 대표적 친민주화 매체 빈과일보의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6월24일 시내 가판대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다. © AP 연합
홍콩의 대표적 친민주화 매체 빈과일보의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6월24일 시내 가판대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다. © AP 연합

빈과일보 폐간 그 후…“저항의 힘이 없다”

마케팅 매니저 A씨는 “빈과일보의 마지막 며칠 동안 모든 직원이 프로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며 “우리는 믿음을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빈과일보 취재기자 B씨는 “우리에게 저항의 힘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빈과일보 대만판의 취재기자 C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업무를 계속하면서 민주주의 고취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면서도 “아마 홍콩에서 많은 것이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빈과일보 폐간을 앞둔 날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홍콩 본사에는 체념의 분위기가 감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6월21일 빈과일보 모회사 넥스트디지털은 이사회를 통해 “폐간 여부를 곧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빈과일보 홍콩 본사를 현장 취재한 레미 이노센시오 CBS 아시아 특파원은 “직원들은 이미 게임이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레미 특파원이 SNS에 올린 현장 영상에는 빈과일보 직원들이 짐을 들고 연이어 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빈과일보 편집기자 D씨는 “가족 같은 동료들이 하룻밤에 일자리를 잃었다”며 “코로나 시국에 그들의 생계가 너무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반면 레미 특파원에 따르면, 빈과일보 직원들과 대조적으로 중국 공산당원들은 폐간을 축하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폐간 조짐이 드리운 건 지난해 8월부터다. 당시 홍콩 경찰은 빈과일보 사옥을 압수수색했고,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73) 등 10명의 관계자를 체포했다. B씨는 “약 200명의 경찰이 급습해 컴퓨터와 기사 자료 등을 가져갔다”며 “이후 우리는 기사 대부분의 바이라인(이름을 밝힌 줄)을 숨기기로 결정했다”고 회상했다.

B씨에 따르면, 빈과일보 기자들은 올 5월 ‘홍콩 정부가 중국공산당의 지령을 받고 빈과일보를 올해 말 또는 7월1일까지 진압할 계획을 세웠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7월1일은 홍콩의 주권 반환 기념일이자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이다. B씨는 “그때부터 우리는 각자의 기사를 자체 검열하기 시작했다”며 “예를 들어 기사에 ‘우한 바이러스’ 단어가 있으면 ‘코로나19’로 바꿨다”고 했다.

빈과일보 편집기자 D씨가 만든 호외. 1면에 광둥어로 “막을수록 강해진다”는 문구와 함께 “구독료 : 언론자유”라고 적혀 있다. ⓒ 시사저널
빈과일보 편집기자 D씨가 만든 호외. 1면에 광둥어로 “막을수록 강해진다”는 문구와 함께 “구독료 : 언론자유”라고 적혀 있다. ⓒ 시사저널

자체 검열의 시대…“기사 바이라인 대부분 숨겼다”

6월17일 홍콩 경찰은 빈과일보 사옥을 또 압수수색했다. 이번에는 자산도 동결시켰다. A씨는 “자산이 동결되자 회사는 직원들에게 7일 이상 급여를 주지 못했고,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영진은 동결 해제 조치를 요청했지만 당국은 거부했다”고 전했다. A씨는 “모든 직원이 월급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털어놓았다.

자산 동결의 여파는 홍콩 밖의 빈과일보 대만판에도 미쳤다. C씨는 “홍콩의 상황이 나빠질수록 대만지사가 민주주의 고취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했다”며 “일단 대만지사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라도 대량 해고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빈과일보 대만판은 온라인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빈과일보 모회사 넥스트디지털은 대만 회사와 합작해 대만판을 발행하고 있다.

홍콩 당국이 빈과일보 압박을 위해 씌운 혐의는 홍콩보안법 위반이다. 홍콩보안법은 중국이 국가 분열, 테러,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지난해 6월30일 시행됐다. 이는 결국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억압하는 근거가 됐다.

D씨는 “몇몇 언론이 기사를 내린 사실 자체가 홍콩보안법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준다”며 “이 법은 홍콩 언론을 위축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홍콩 입장신문(立場新聞)은 빈과일보 폐간 이후 칼럼을 당분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입장신문은 6월27일 “홍콩에 문자옥이 왔다”고 밝혔다.

B씨는 “심지어 지역의 동네 소식을 다룰 때도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는 힘들었다”고 전했다. C씨는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매일 신문 1면에는 중국에 우호적인 기사만 실렸다”고 비판했다.

과거에는 달랐다고 한다. D씨는 “홍콩보안법 시행 이전에는 대다수 언론이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기사를 썼다”며 “언론 자유도를 10점 만점으로 치면 8점 정도 됐을 것”이라고 했다. A씨는 더 나아가 “홍콩보안법 시행 이전에는 그 어떤 언론도 탄압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지난 2019년 홍콩 언론자유지수를 180개국 중 73위로 평가했다. 올해는 80위로 떨어졌다. 중국의 경우 3년 연속 177위에 머물렀다.

 

보안법에 뺏긴 언론 자유…“오직 친중 목소리만 남을 것”

앞으로 홍콩의 언론 자유는 어떻게 될까. 긍정적으로 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D씨는 “기껏해야 2점밖에 못 주겠다”고 했다. B씨는 “곧 우리도 중국과 같아질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는 “중국은 홍콩보안법 아래 모든 언론인을 대상으로 신원 등록을 요구하겠지만, 틀림없이 ‘우리는 홍콩을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C씨는 “중국은 홍콩보안법을 이용해 오직 친중(親中) 목소리만 남기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뷰에 응한 4명 모두에게 생계를 위한 계획을 물었다. 3명은 답변을 거부했다. 유일하게 답한 B씨는 이와 같은 말을 남겼다.

“저널리스트로 6년을 일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갖고 있었다. 한평생 정말, 정말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에서는 기자로 일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언론에 대한 검열은 물론이고 체포에 대한 두려움도 감수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이 절망의 도시에서 미래를 위한 계획은 없다.”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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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색신문’에서 ‘친민주화 매체’로 우뚝...빈과일보는 어떤 곳?

빈과일보 편집기자 D씨는 “빈과일보는 홍콩에서 가장 큰 민주화 지지 신문”이라고 소개했다. 그 말대로 빈과일보는 홍콩 내에서 판매부수 상위권을 꾸준히 지켜온 친민주화 매체다. 홍콩의 글로벌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 창업주인 지미 라이가 1995년 창간했다.

2019년 홍콩 중문대학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빈과일보는 자국 내 유료 신문 중 신뢰도가 3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처음부터 신뢰도가 높았던 건 아니다. 초기에는 상업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로 비판을 받았다. 주로 사망 사건, 스캔들, 마약, 도박 따위의 소식이 총천연색 사진과 함께 실렸다. 학계에서는 “홍콩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의 시초”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극적인 보도는 장점도 있었다. 짧은 기간에 많은 독자와 영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빈과일보는 2003년 홍콩 정부를 비판하면서 독자들에게 민주화 시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5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섰다. 이를 계기로 빈과일보는 대표적인 친민주화 매체로 거듭났다. 일단 창업주 지미 라이부터 민주화운동 지지자였다.

다만 지미 라이는 빈과일보를 통해 지나친 편향성을 드러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미국 대선을 앞둔 지난해 10월 빈과일보에 기명으로 “나는 트럼프가 정권을 잡을 때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사설을 올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중 정책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반대편 후보였던 조 바이든을 비방하는 보고서에 지미 라이가 자금을 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도 바이든 대통령은 빈과일보가 폐간되자 “언론 자유에 슬픈 날”이라는 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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