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중국을 건드렸나...다시 보는 빈과일보의 ‘촌철’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3 09:00
  • 호수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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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으로 사라진 글, 아카이브에서 찾아보니…“공격적·팽창적·악의적 중국에 맞서야”

“G7의 칼 5개가 중국의 군사화 자극할까?(G7五劍指中國 對抗會否軍事化?)”

지난 6월15일 빈과일보가 게재한 칼럼 제목이다. 여기서 5개의 칼이란 △중국의 반시장 정책 비판 △코로나19 기원 추적 요청 △위구르인의 인권 존중 요구 △대만해협의 평화 강조 △홍콩 자유에 대한 보장 요구 등을 뜻한다. 해당 칼럼에는 “G7은 중국에 5개의 칼을 공개적으로 들이대는 가장 큰 외세”라며 “G7은 싸울 생각이 없지만 중국공산당은 이미 승리의 투지를 다지는 듯하다”고 적혀 있다.

칼럼이 올라간 지 8일 뒤인 6월23일, 칼럼을 쓴 리핑은 집에서 체포됐다.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다. 리핑의 본명은 융칭키(楊清奇·55). 그는 2016년부터 800편의 칼럼과 논평을 써왔다. 홍콩 경찰은 홍콩보안법이 발효된 지난해 6월 이후 융칭키가 쓴 글 가운데 5~6편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의 대표적 친민주화 매체인 빈과일보 기자들이 창간 26년 만에 폐간을 발표한 6월23일 본사 빌딩에서 인근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손전등을 켠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홍콩의 대표적 친민주화 매체인 빈과일보 기자들이 창간 26년 만에 폐간을 발표한 6월23일 본사 빌딩에서 인근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손전등을 켠 휴대전화를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이 운영하는 수용소에 갇혀 고문당했다"

대체 어떤 글이 홍콩보안법을 어겼다는 걸까. 현재 빈과일보 홈페이지는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다. 시사저널은 웹 아카이브(웹페이지 보존 시스템)를 통해 일반적인 경로로 볼 수 없는 빈과일보의 최근 글을 찾아봤다. 그 결과, 융칭키의 칼럼 외에도 중국에 비판적인 논조를 띤 글이 눈에 띄었다.

6월12일자 칼럼은 중국이 껄끄러워하는 위구르인 탄압 행위를 저격했다. 여기에는 중국 위구르 자치구의 재교육 수용소를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이 실명으로 담겨 있었다. 칼럼 제목은 ‘중국에 따지다’였다.

칼럼에는 “위구르인 오미르 베칼리는 중국 당국이 운영하는 수용소에 감금된 채 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수용소에서 교사로 일했던 우즈벡 여성 켈비누르 시딕은 중국인 간수들이 ‘여성 재소자들을 강간했다’고 떠벌리는 것을 들었다” 등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강한 어조로 중국을 비난하기도 했다. “공격적이고 팽창주의적이며, 악의적이고 집단 학살을 초래하는 중국 정권에 맞서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해당 칼럼을 쓴 조셉 롱은 영국에 거주하는 홍콩 출신 언어학자다.

또 다른 칼럼 ‘빈과일보가 사라지는 날’은 폐간 이틀 전인 6월21일 올라왔다. 이 글에는 중국의 억압에 대한 자조와 풍자가 담겨 있었다. 필자는 푼 시우토 전문 칼럼니스트다. 그는 ‘빈과’가 사과를 뜻한다는 점에 착안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과를 깨무는 소리는 기분 좋게 들린다. 하지만 많은 사람, 특히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는 정부에는 극도로 소름끼치는 소리다. 이들은 사과를 멀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과일을 먹는 것조차 못 하게 한다. 이들에게 ‘빈과’의 소리는 고문일 테지만, ‘빈과’는 건강에 좋다.”

빈과일보 6월21일자 온라인판에 올라왔던, 전문 칼럼니스트 푼 시우토의 칼럼 '빈과일보가 사라지는 날.’ 현재 해당 칼럼은 정상적 경로로는 읽을 수 없다. ⓒ 웹아카이브
빈과일보 6월21일자 온라인판에 올라왔던, 전문 칼럼니스트 푼 시우토의 칼럼 '빈과일보가 사라지는 날.’ 현재 해당 칼럼은 정상적 경로로는 읽을 수 없다. ⓒ 웹아카이브

 

 

 

 

 

 

 

 

 

 


 

 

“‘빈과’의 소리는 고문일 테지만, ‘빈과’는 건강에 좋다”

푼 시우토는 이어 “빈과일보는 홍콩 사회의 거울”이라며 “그 혜택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울을 깨뜨려 스스로 눈을 가리게 되고, 결국 자신이 옷을 제대로 입었는지도 모르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빈과일보가 사라지면 매우 슬프겠지만 이 칼럼도 없어질 것”이라고 적었다.

칼럼만이 아니다. 6월14일에는 친중 성향의 서적에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를 쓴 익명의 기자는 “최근 발간된 중학교 역사책이 중국에 우호적 내용을 담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 책은 1949년부터 2020년까지 사건을 다뤘는데 2019년 홍콩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단 3페이지만 할애했다”며 “당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던졌다는 내용은 빠져 있었다”고 했다. 기자는 홍콩 민주화 지지 단체의 부대표를 인용해 “이 책은 톈안먼 사태를 일으킨 중국의 잔인함을 축소했다”며 “학생들이 이 책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게 될까 염려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홍콩 시민들은 중국의 탄압에 맞서 빈과일보를 보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빈과일보 홈페이지가 닫힌 이후 4개의 디지털 아카이브가 등장했다”며 “정체불명의 네티즌들은 빈과일보가 20년 넘게 출고한 엄청난 양의 글을 아카이브에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빈과일보 기사가 블록체인 플랫폼에 올라가고 있다”고 전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올라온 자료들은 임의로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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