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90일, 무엇을 지켰고 무엇을 지웠나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7.09 10:00
  • 호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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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석 달, ‘오세훈표 정책’ 점검
‘아픈 기억’ 무상급식 늘리고, 박원순 마을사업은 집중 감사
"朴 성희롱 피해자 복직 여부 노코멘트"

당초 4·7 보궐선거로 10년 만에 돌아온 오세훈 서울시장이 ‘박원순 지우기’에 몰두할 거란 전망이 선거 직후엔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7월16일 취임 100일을 앞둔 현재, 그의 행보는 다소 뜻밖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곳곳에 곧장 칼날을 대기보다는, 유지와 폐지에 따른 기회비용을 검토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박원순표 정책을 확대 개편하는 결단도 서슴없이 내렸다. 행정의 연속성을 강조한 것이다. 단 1년이라는 임기, 여소야대 시의회 구도 등 현실적 배경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게 오 시장의 솔직한 속내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결정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그대로 진행한 것이었다. 끝까지 고민이 깊었지만 이미 250억원의 예산이 쓰인 공사를 중단하는 데 따른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2030 청년을 위한 기존 정책들은 크게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년 서울’이라는 오 시장의 시정기조에 맞춘 결단이었다. 박원순 전 시장이 2019년 전국 최초로 출범시킨 청년자치정부 ‘청년청’은 미래청년기획단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급을 격상시켰다. 청년들을 위한 월세 지원 대상과 예산 규모를 기존의 5배 이상으로 늘리기도 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오 시장의 아킬레스건이었던 ‘무상급식’과 관련해선 보란 듯이 더욱 속도를 냈다. 10년 전 초등학교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강행했던 데 대해 후회를 내비쳐온 오 시장은 취임 후 무상급식 대상을 유치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평성을 위해 어린이집의 식비 현실화를 위한 논의도 진행할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의 브랜드 아이서울유(I·Seoul·U)도 ‘일단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서울유는 과거 이명박-오세훈 시장이 14년간 쓴 ‘하이서울(Hi Seoul)’을 폐기하고 2015년 박 전 시장이 지은 명칭이다. 이름을 두고 찬반 논란이 지속돼온 탓에, 오 시장이 취임 후 이를 곧장 교체할 거란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오 시장은 “브랜드 가치는 계속 사용하면서 쌓이는 측면이 있다”며 유지 방침을 밝혔다. 다만 해마다 진행해온 브랜드 인식조사를 확대하고, 아이서울유에 밀려 존재감을 잃었던 서울시 캐릭터 ‘해치’ 활용도를 상대적으로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박원순 마을공동체·재건축 규제엔 칼 빼들어

‘구동존이’. 오 시장은 7월7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먼저 공통점을 인정하고 차이점을 미루는’ 것이 지난 90일간 지켜온 시정의 철학이었다고 밝혔다. 그가 급진적 개혁보다 행정의 연속성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가 보궐선거 당시부터 줄곧 비판해온 박원순표 역점사업에 대해선 주저 없이 칼을 빼들었다. 7월5일 박 전 시장이 힘을 쏟아온 ‘마을공동체·주민자치회’ 집중 점검 및 감사를 지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박 전 시장이 재임한 2012년부터 올해 예산까지 두 사업에 그동안 1000억원 이상의 세금이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오 시장은 “특정 시민단체 출신들이 장악해 막대한 인건비를 받아온 정황이 역력하다. 과연 (두 사업이) 투자 대비 효율이 높았는지 반성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역점사업과도 맞물려 있는 서울시 태양광·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 오 시장은 박 전 시장이 원전 줄이기 일환으로 추진해온 미니태양광 보급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설치 실적과 에너지 생산량이 부진하다는 이유에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4월8일 서울시청 첫 출근길에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4월8일 서울시청 첫 출근길에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성폭력 심의위 신설… “피해자 복직 여부는 노코멘트”

오세훈표 정책으로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 가운데 가장 뜨거운 감자는 ‘서울런’이다. 서울런은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유명 사교육 강사들의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교육 플랫폼을 의미한다. 36억원이 최종 편성된 오 시장의 교육정책에 대해 일부 시의원과 시민단체들의 반대가 계속되고 있다.

‘성폭력 제로’를 외쳤던 만큼, 오 시장은 6월8일 구성원 전원이 외부 인사로 꾸려진 ‘서울시 성적괴롭힘·성폭력 심의위원회’를 신설했다.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서울시 내 독립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은 취임 전부터 박 전 시장의 성폭력 피해자 복직을 약속하며 소통해왔다. 이창근 서울시청 대변인은 시사저널에 “오 시장은 이미 피해자에게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으로 복직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어디까지 논의됐는지, 복직이 이뤄졌는지 등은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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