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사업 본격 나서는 50년 ‘은둔의 경영자’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 송응철‧송창섭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6 11:00
  • 호수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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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회사 매각 결정…IMM PE와 7월14일 양해각서 체결

국내 인테리어·가구업계 1위 기업인 한샘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매각이 성사될 경우 한샘은 창사 50여 년 만에 새 주인을 맞게 된다. 재계의 시선은 경영권 승계가 아닌 매각 결정을 내린 배경에 집중되고 있다.

7월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샘은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15.45%) 등 특수관계자 지분 30.21%에 대한 매각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샘은 14일 최대주주 지분 매각 사실 여부를 묻는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조창걸 외 특수관계인 7인이 보유하고 있는 한샘의 기명식 보통주식 전부 및 경영권 양도에 관해 IMM PE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답변했다. IMM PE는 이번 한샘 인수에 지난해 조성한 블라인드펀드인 ‘로즈골드 4호’를 활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샘 관계자는 “조창걸 명예회장께선 IMM PE가 한샘의 가치와 장기비전을 가장 잘 이해해 줬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양해각서 체결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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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걸 한샘 명예회장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한샘 본사ⓒ시사저널 이종현·뉴시스

아들 사망 후 승계 뜻 접고 공익재단 준비

조 명예회장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주당 25만원의 가격을 희망하고 있다. 전체 거래 대상 주식 수로 환산하면 약 1조7000억원 규모다. 한샘의 주가가 7월13일 종가 기준 11만5000원임을 감안하면, 시세 대비 2배 이상을 원하는 셈이다.

IB업계는 한샘 거래가격이 1조3000억원 안팎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 명예회장의 희망가격보다는 적은 액수지만 시세 대비 여전히 높은 가격이다. 그럼에도 IB업계에서는 IMM PE가 인수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전망이 밝기 때문이다. 국내 가구 소매판매액은 지난해 사상 최초로 10조원을 돌파했고, 올해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조 명예회장은 왜 승계가 아닌 매각을 결정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한샘에 마땅한 후계자가 없기 때문이다. 조 명예회장은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이 중 외아들인 조아무개씨가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돼 왔다. 그러나 그가 2012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면서 후계자 자리는 공석이 됐다.

조 명예회장은 조씨 외에 세 딸을 뒀지만, 차녀인 은희씨만 유일하게 한샘 미국법인에서 근무 중이다. 장녀인 은영씨와 삼녀 은진씨는 남편이 각각 미국법인장과 한샘 감사를 맡고 있을 뿐 경영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다. 올 3월말 현재 은영씨는 1.32%(31만1500주), 은희씨는 0.88%(20만7400주), 은진씨는 0.72%(16만8750주)만을 갖고 있으며, 조 명예회장의 동생 조창식씨 지분은 0.07%(1만5400주)다. 또 다른 한샘 고위 관계자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는 경영승계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딸들이 경영에 관여하는 것을 엄격하게 막으셨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조 명예회장의 딸들은 후계와 무관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조 명예회장이 수년 전부터 한샘 매각을 추진해 왔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무게를 실었다. 실제 조 명예회장은 지난 2018년 국내 대기업, 국내외 사모펀드 운용사들과 매각을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무산됐다. 인수 가격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5년 한샘드뷰재단에 260만 주 출연 약속

한샘은 1994년 조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최양하 전 한샘 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CEO) 체제로 운영돼 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9년간 CEO를 역임한 최 회장이 사임하고 강승수 한샘 회장이 새로 취임하며 전문경영인 2기 체제에 들어갔다.

업계에선 조 명예회장이 2015년부터 추진해온 공익사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 명예회장은 2015년 3월 한샘드뷰연구재단(현 태재재단)을 세워 자신이 보유한 회사 지분의 절반인 260만 주를 출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60만 주는 당시 시가로 44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재단명인 드뷰(DBEW)에는 ‘동양과 서양을 뛰어넘는 디자인(Design Beyond East & West)을 구현해 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중 일부 지분을 매각해 마련한 300억원으로 그해 12월 세운 민간 싱크탱크가 바로 ‘여시재’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여시재 원장과 부원장 출신이다. 현재까지 한샘이 태재재단에 출연한 주식은 약 166만 주로 알려져 있다. 한샘 관계자는 “약속한 대로 조만간 추가로 100만 주를 태재재단에 출연할 계획”이라면서 “지분 매각 후 재단 출연 여부는 조 명예회장 자신이 결정하겠지만 여생을 공익사업에 바치겠다는 뜻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새벽 4시 출근, 오전 9시 퇴근…독서가 유일한 취미

1939년생으로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와 1973년 한샘을 세운 조창걸 명예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릴 정도로 외부에 알려진 바가 없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전혀 없다. 매일 새벽 4시40분 서울 원서동 태재재단으로 출근해 4시간20분가량 업무를 본 뒤 남들이 출근하는 오전 9시 퇴근한다. 퇴근 후에는 근처에 마련한 별채 겸 서재에서 독서로 하루를 보낸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특별한 취미도 없다.

그는 오래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표면적으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 아침 5시 원서동 재단 사무실에서 한샘 실무자들과 회의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명예회장을 잘 아는 한 지인은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지만 다른 종교에도 조예가 깊으며, 하루 종일 책을 보면서 5분도 허투루 쓰지 않는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매년 비밀리에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하는 학구형 CEO”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후 9시에 취침에 들어간다. 그를 잘 안다는 한 기업인은 “그의 관심 분야는 정치·경제·역사·문화부터 지구환경·기후변화까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면서 “대학교수들과의 대화에서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식견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번 매각 결정이 이미 예전부터 결정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전직 한샘 직원은 “사실상 실패로 끝난 중국 사업을 주도했던 이가 강승수 회장인데, 문책성 경질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에서 이미 일찍부터 경영권 매각을 마음먹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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