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표절 논란의 부조리한 이면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9 11:00
  • 호수 16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란만으로 작가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 찍기도
의혹 부풀린 언론은 상처 뒤로 사라져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와 이득을 취하는 범죄니만큼, 표절은 ‘논란’이 됐다는 점만으로도 해당 미술가를 거대한 공분 앞에 세운다. 확정이 아닌 ‘논란’만으로도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는 게 표절 논란이다.’

지난해 10월 강원키즈트리엔날레 2020에 출품된 최정화의 작품 《그린 커넥션》이 이용백의 《플라워 탱크》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터졌을 당시 필자가 쓴 칼럼(시사저널 1623호 참조)의 일부 내용이다. 표절 논란은 진위 여부를 떠나 여론·언론 시장에선 잘 팔리는 화제다. 이 때문에 표절이 아닌 것 같다는 해석은 흐트러짐 없는 ‘가해자 지목 문화’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어서 주목도 동의도 얻기 힘들다. 지난해 최정화-이용백 논란 때 표절이 아니라는 게 필자의 입장이었다.

ⓒ
2014년 대구미술관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에 선정된 작품 《방해(Disturbing)》의 설치 장면. 한때 표절 논란으로 소송에 휩싸였다가 지난 7월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박정현 작가 제공

표절 의혹 제기 7년 만에 무죄 확정

이 일이 있고 9개월여가 흘렀다. 지난 7월 미술 표절 소송 한 건이 무죄로 최종 확정됐다. 고소인의 문제 제기로부터 무려 7년이 흐른 후였다. 2014년 대구미술관의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 Y Artist에 선정된 박정현 작가의 고무줄로 공간을 채운 설치 작업 《방해(disturbing)》가 손몽주 작가의 기존 작업 아이디어를 표절했다는 문제 제기가 대구미술관 게시판에 올라왔다. 급기야 손 작가의 전시 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전시 중에 박 작가의 작품이 철거되는 초유의 사태가 있었고, 손해배상소송도 이어졌다. 전시장의 벽과 벽 사이를 일정 간격의 고무줄로 잇는 모양새 때문에 외형도 유사했고, 피고인보다 고무줄을 사용한 공간 점유형 설치 작업을 고소인이 먼저 시작한 점 때문인지 1심은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다.

두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비교해 보면, 많은 이가 두 작품이 닮았다고 믿을 줄로 안다. 그렇지만 닮음을 표절로 단정하는 순간, 되돌아올 수 있는 다리가 끊어지고 만다. 이 사건의 2심에서 필자는 피고인을 위한 전문가 의견서를 냈다. 변론의 요지는 이랬다. 고무줄은 너무 흔한 재료여서 누가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고무줄이 공간을 점유한 유사한 외형의 설치 작품은 해외에도 이미 선례가 많고, 신축성을 띤 재료를 사용한 설치 작품은 외형이 대동소이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 표절을 의심한 측에서는 박정현의 신작이 그의 과거 작업들과 다른 점도 지적했다.

그렇지만 한 작가가 다양한 재료로 상이한 외형의 결과물을 내는 일은 현대미술에서 너무 흔한 일이다. 필자는 전문가 의견서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였던 이용백을 예로 들었다. 사진과 회화, 영상, 입체 설치 미디어 작업까지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한 명의 작가가 섭렵하는 경우는 너무 흔한 현상이라고 바로잡아줬다.

현대미술은 전문 영역임에도 미술 표절 논란은 SNS에서 비전문가들이 심판관으로 활약하며, 전후 맥락 따질 것 없이 ‘외관의 유사성=표절’이라는 비전문가 그룹의 분노에 찬 확증편향은 공론으로 굳어버린다. 지난해 최정화–이용백 논란처럼 작가의 지명도에 따라, 신중히 다뤄야 할 이 주제를 주요 언론이 검증도 없이 선정성 높은 뉴스로 내보낸다. 이런 보도는 공익과는 무관한 오락물처럼 소비된다. 표절 논란의 가장 불행한 종착지가 법정이다. 박정현-손몽주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표절 논란은 기울어진 운동장 경기다. 표절 피해를 당했다는 작가의 뒤로 그를 지지하는 압도적인 불특정 다수가 포진해 있다. 반대로 표절 작가로 지목된 이를 변호하는 쪽은 수적으로 극소수일 뿐 아니라 나서려 하지도 않는데, 범죄행위를 두둔한다는 지탄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 몇 년 사이 필자가 관여했던 미술 표절 논란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2017년 시인 출신 사진가 A씨는 전업 사진가 B씨 작품의 모티프가 자신의 사진을 표절했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SNS에 올려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B씨가 심리적으로 큰 곤경에 빠지는 일이 있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때 무대미술로 등장한 전통 기와의 골조 형식의 조형물이 자신의 작업을 표절했다는 미술가 백승호의 SNS 폭로가 있었고 이를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했다. 2020년에는 최정화-이용백의 꽃탱크 표절 논란도 있었다. 이런 논란 모두에 대해 필자는 표절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왜 하나같이 소수 입장에 섰는지 이유는 이렇다.

표절 논란에 오른 두 작품을 나란히 비교하면 너무 똑같다고 느끼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외형의 유사성과 표절은 전혀 다른 세계다. 앞서 열거한 표절 논란 작품들은 예외 없이 조형적 모티프가 지극히 단순한 것들이었다. 단순한 조형적 모티프일수록 동일한 상상력이 다른 누군가의 머리에서 떠오를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는 얘기가 된다. 그에 더해 작품의 세부와 제작의 맥락까지 비교하면 유사한 두 작품은 전혀 상이한 작품이기 쉽다. 이 주장을 필자는 지난해 칼럼을 썼을 때도 했다. 경솔하게 확산되는 표절 소동을 지켜보면서, 어쩔 수 없이 늘 똑같은 충고만 무의미하게 반복하게 된다.

 

표절 논란은 기울어진 운동장 경기

다시 박정현-손몽주 논란으로 돌아가자. 2심 판결에선 원고 측이 요구한 한국저작권협의회의 감정에서 반전이 생긴다. 내가 피고를 변호하며 전문가 의견서에 밝힌 것과 같이, 한국저작권협의회도 고무줄을 사용한 유사한 설치 작품의 사례가 국내외에 이미 여럿 있을 뿐 아니라, 두 작품 사이의 유사한 외관도 고무줄이라는 재료가 만드는 필연적인 결과이므로 고무줄 사용은 ‘창작성이 없는 표현’이라고 평했다. 이뿐만 아니라 두 작품은 구성에도 차이가 있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감정했다.

‘미술작품 표절 논란은 문제를 제기한 쪽과 표절로 의심받는 쪽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지만, 논란에 가담하고 사태를 크게 부풀린 불특정 다수와 언론은 상처 뒤로 사라져 버린다.’

작년 칼럼의 지문 일부를 다시 인용해 본다. 일련의 미술품 표절 논란을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칙에 따르면, 표절 작가로 지목된 이는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크게 위축돼 지내고 지난 시절의 피해를 환급받기도 어렵다. 표절 논란은 그래서 명예형이다. 반대로 논란이 종결된 후에도 표절당했다고 믿는 작가는 여전히 확증편향의 터널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무런 공익도 교훈도 남기지 못하는 이 같은 표절 논란은 앞으로도 더 많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왜냐하면 표절 논란은 선악의 드라마를 지닌 소비시장이다. 악을 응징한다는 다수의 신념이 시장의 소비자다. 진실은 신념을 이기기 어렵다. 오해에서 비롯됐을 표절 논란에서 두 당사자 사이의 싸움을 부추기고, 구경하고, 전파하던 무수한 구경꾼과 언론은 일상으로 돌아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잘 지내는 중이다. 이것이 표절 논란의 부조리한 이면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