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의 역설…‘대비’에 실패했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7 10:00
  • 호수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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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 시작되자 감염자 증가...늘 뒷북치는 수동적 K방역도 한몫

백신 접종 전보다 그 후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오히려 더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7월22일 현재 누적 감염자는 18만4103명인데, 이 가운데 백신 접종 전과 이후의 감염자는 각각 8만8516명과 9만5587명이다. 백신 접종 이후에 발생한 감염자 수가 백신 접종 이전의 감염자 수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 약 5개월 만에 감염자가 부쩍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K방역의 실패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의 방역 대책 문건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선제적 방역보다 수동적 방역에 주력하는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백신 접종을 시작한 후에는 방역보다 접종률 높이기에만 신경을 썼다. 게다가 ‘(코로나19 유행) 끝이 보인다’는 정부의 말에 국민의 경각심은 곤두박질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대구의 한 교회를 중심으로 퍼진 집단감염 이후부터 정부의 방역은 무뎌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18일 대구의 한 교회에서 집단감염 사례가 보고됐고 2월29일 하루 감염자가 909명으로 폭증하자 전국 의료진과 국민은 긴급 진화에 나섰다. 4월부터 점차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자 감염병 전문가들은 대구와 경북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 집단감염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한 정부는 5월6일 방역 단계를 최하위인 생활방역 수준으로 낮췄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날부터 서울 이태원 클럽을 비롯해 물류센터, 콜센터, 교회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집단감염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하루 감염자 수가 100명 이하라는 이유로 정부는 방역 단계를 높이지 않았다. 결국 하루 감염자가 200명을 넘어선 8월 중순에야 방역 단계를 올렸다. 방역 단계를 늦게 올리는 바람에 하루 감염자 수는 꺾이지 않고 오히려 400명대로 증가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최고 방역 수준인 3단계 격상을 주장했으나 정부는 엉뚱하게도 기존 방역 단계에 없는 2.5단계를 발령했다. 선제적 방역이 아닌 뒤쫓아가는 방역인 데다 방역 수준도 찔끔씩 올리는 탓에 코로나19 확산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는 하루 감염자가 1000명대를 이어갔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212명 발생한 7월7일 서울 강남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시민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백신 접종 후 5개월 만에 약 9만3000명 증가

올해 초 백신 접종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1월 신년사에서 “다음 달이면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드디어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지 약 13개월째인 올해 2월26일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전날까지 누적 감염자는 8만8516명이었고, 하루 400명씩 감염자가 발생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백신 접종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5월까지 백신 접종률은 7%대에 머물렀다. 그 속도로는 전반기(6월까지) 목표인 백신 접종률 25% 달성이 어렵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잇따랐다. 하루 감염자가 500~600명대로 증가한 6월이 돼서야 정부는 접종 속도를 높였다. 6월1일 11%이던 백신 접종률이 6월16일 25%를 넘겼고, 6월30일 30%에 육박했다. 정부는 백신 접종률을 초과 달성했다고 자찬했다. 

이는 2차 접종분으로 비축해둔 백신을 1차 접종에 쏟아부은 결과다. 백신 수급이 계획대로 되지 않자 1차 접종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차 비축분 백신으로 돌려막기를 한 셈이다. 실제로 1차 접종률이 20%포인트 급증한 6월 한 달 동안 2차 접종률은 5%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전반기 백신 1차 접종률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접종 속도는 다시 멈추다시피 했다. 7월1일 29.9%이던 백신 1차 접종률은 7월22일 32%에 그쳤다. 백신 물량이 절대 부족해지면서 하루 접종 인구는 전국적으로 1000명대에 머물렀고, 그나마 7월5일에는 0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7월 들어 하루 감염자는 1300~ 1500명대를 이어가다 7월22일 사상 최고치인 1842명을 기록했고, 누적 감염자는 18만4103명에 이르렀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2월26일 이후 5개월 만에 9만5587명 증가한 셈이다. 백신 접종 전까지 누적 감염자 약 8만8516명이 13개월 동안 발생한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빠른 증가세다. 감염자 한 명이 주변에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감염재생산지수(R0)도 6월 하순 0.99에서 꾸준히 증가해 7월 2주 차(11~17일) 1.32를 기록했다. 감염재생산지수가 1 미만이면 ‘유행 억제’, 1 이상이면 ‘유행 확산’을 뜻하는 것으로 현재 지수 1.32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의 역설이다. 접종이 시작되면 안심 기조가 생기고 방역을 완화하면서 감염자가 증가한다.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을 지난해 12월 시작한 영국도 이후 감염자가 증가했다. 우리가 이런 전례를 교훈으로 삼아 대비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위험군에 대한 백신 접종을 마친 것에 안주해 방역의 고삐를 당기지 않았다. 접종자에 대한 방역은 완화하더라도 미접종군에 대해서는 방역을 강하게 하는 것 등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코로나19 고위험군인 고령자에 대한 백신 접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6월부터 정부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는다’는 등의 방역 완화 방침을 예고했다. 그러자 국민의 경각심도 약해졌고, 이제 하루 1000명이 넘는 감염자가 발생해도 둔감해졌다. 지난해에는 하루 100명대 감염자가 발생해도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국민의 경각심이 높았다. 최근에는 아예 외국처럼 마스크를 벗고 코로나19와 함께 공존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주요국 백신 접종률 50% 이상⋯우리는 32%

미국은 독립기념일인 7월4일 ‘코로나19 독립’을 선언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백신 접종자뿐만 아니라 미접종자도 마스크를 벗고 생활한다. 영국은 7월19일을 ‘자유의 날’로 선포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나 실내 마스크 착용 등 코로나19 제한 조치를 종료했다. 4월부터 마스크를 벗기 시작한 이스라엘은 최소한의 규제로 일상을 회복하는 방역정책을 채택했다. 싱가포르는 확진자 집계를 중단하고 코로나19를 독감과 같은 엔데믹(풍토병)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모두 백신 접종률이 50%를 넘겼다는 점이 우리 상황과 다른 부분이다. 우리 백신 접종률은 7월21일 기준 32%이고, 2차 접종률은 13%에 불과하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백신 접종률은 약 56%이고, 2차 접종률은 48%다. 영국은 인구의 68%가 백신을 맞았고 2차 접종률도 53%에 이른다. 접종률 66%가 넘는 이스라엘은 2차 접종률 61%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백신 접종률이 71%이고 2차 접종률 48%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특히 싱가포르와 영국의 최근 사망률은 독감 사망률(0.1%)보다 낮게 유지되고 있다.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7월11~17일 사망률이 싱가포르는 0%, 영국은 0.06%인 반면 우리는 0.13%다. 김 교수는 “마스크를 벗는 국가들과 우리의 처지는 다르다. 우리의 백신 접종률은 매우 낮고 백신 물량도 부족하므로 그들처럼 마스크를 벗자는 등의 방역 완화는 시기상조다. 오히려 백신 접종률이 높은데도 변이 바이러스 등으로 재확산하고 있는 국가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장기적인 방역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미국 내 하루 감염자는 7만~8만 명에 달한다. 이는 최근 일주일간 하루 평균 확진자 수보다 3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영국에서도 5월 2000명대이던 하루 감염자 수가 최근 4만5000명으로 급증했다. 이스라엘에서는 6월 한때 10명까지 줄었던 하루 감염자가 1000명대로 늘었다. 7월10일 신규 확진자가 0명이었지만 최근 100명대로 급증하자 싱가포르 정부는 다시 강한 방역 카드를 꺼냈다. 모임 인원을 5명에서 2명으로 다시 줄이고 식당 내 취식도 금지했다. 김 교수는 “인간이 백신을 만들면 바이러스는 변이하며 생존한다. 이를 우리는 알고 있지만 선제적 방역보다 뒤늦은 방역으로 코로나19 4차 유행을 불렀다. 최근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는 얼마든지 예견하고 막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제는 정부가 과학적 판단을 못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백신 접종으로 중증자와 사망자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방역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진 상태에서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인구 이동이 늘어나면서 코로나19 감염자는 더 증가할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집단면역을 형성해도 코로나19 종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전처럼 지금도 전문가들은 선제적 대비를 정부에 요구한다. 

이 교수는 “외국은 비교적 가벼운 환자를 병원이 아닌 집에 머물게 했다. 우리는 환자는 물론 접촉자까지 모두 격리했다. 이 부분이 방역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비상체계를 오래 유지하기 힘들고 정상체계로 전환하는 데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코로나19 4차 유행은 ‘쓴 약’이 됐다. 방역을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즉 앞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의료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며 비교적 가벼운 환자는 집에서 치료하는 등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백신 접종률이 60~70%가 됐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변이 바이러스가 생길 때마다 감염자가 속출하는 사태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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