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욱 DL그룹 회장이 최근 계열사를 동원해 개인 회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016년 운전기사에 대한 상습적인 폭언 혐의로 15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 데 이어 두 번째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개인 회사 부당지원의 배경이 이 회장 장남에 대한 승계를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에 이어 아들까지 2대에 걸쳐 일감 몰아주기를 동원한 편법 승계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김준혁 판사는 지난 27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에 대해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이 회장은 DL그룹 호텔 브랜드인 ‘글래드(GLAD)’ 상표권을 에이플러스디에 넘겨 글래드호텔을 운영하는 그룹 계열사인 오라관광(현 글래드호텔앤리조트)으로부터 브랜드 수수료를 지급 받도록 한 혐의를 받았다.
에이플러스디는 이 회장(55%)과 장남 동훈씨(45%)가 지분 100%를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다. 사실상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위해 그룹 계열사를 동원한 셈이다. 오라관광은 2015년부터 2026년까지 253억원의 브랜드 사용료를 에이플러스디에 낼 예정이었는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지급한 수수료는 약 31억원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에이플러스디는 다른 호텔 브랜드 사용료에 비해 높은 수수료를 책정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지난 1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DL(옛 대림산업)과 글래드호텔엔리조트 법인에게는 각각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에 대해 벌금 2억원을, DL과 글래드호텔앤리조트에는 벌금 5000만원과 30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혐의 대부분을 인정하면서도 DL과 글래드호텔앤리조트가 공정위 과징금을 모두 이행하고 이 회장이 아들 동호씨가 에이플러스디 지분 전량를 처분해 위법 상태를 해소한 점, 이 회장이 징역형 이상 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눈 여겨 볼 대목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이 회장 장남 동훈씨에 대한 편법 승계 의혹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총수 일가가 회사를 설립하고 그룹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로 이익을 증가시킨 뒤 합병해 경영권을 승계하는 방식은 교과서라 불릴 만큼 흔하다”며 “장남에게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공교롭게도 이 회장 역시 정확히 이런 방식으로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이 회장 승계의 지렛대는 대림에이치앤엘과 대림아이앤에스였다. 이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했던 대림에이치앤엘은 대림그룹의 해운·화물운송업을 도맡으며 사세를 확장했다. 그리고 2008년 그룹 지주사격인 대림코퍼레이션에 합병됐다. 이를 통해 이 회장은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32.1%를 확보했다.
대림아이앤에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소프트웨어 시스템 구축 사업을 영위하던 대림아이앤에스는 전량에 가까운 매출을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에 의존하며 덩치를 불려왔다. 이 회장은 대림에이치앤엘이 대림코퍼레이션에 합병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대림아이앤에스 지분을 늘려갔다. 그 결과 이 회장은 2015년 기준 이 회사 지분 89.69%를 확보했다.
그리고 그해 대림아이앤에스도 대림코퍼레이션에 합병됐다. 그 결과 이 회장의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율은 52.7%로 확대되며 이 명예회장(42.7%)를 넘어선 최대주주에 올랐다. 사실상 경영권 지분 승계가 마무리된 셈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 회장은 별도의 증여‧상속세를 들이지 않고 자산규모 수십조원대 대기업의 경영권을 손에 넣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