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춘추전국시대, 마케팅 어떻게 하나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
  • 김정희 마케팅 컨설턴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12 10:00
  • 호수 166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시적으로 급조하거나 위장 마케팅은 위험
기업의 진정성과 함께 꾸준한 실천 담보돼야

‘모두의 불이 꺼지는 시간.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는 집이 있습니다. 가장 늦은 하루가 무사히 끝날 때까지. 가장 이른 하루가 또 무사히 시작될 때까지. 이 작은 집이 우리 모두의 집을 지켜갑니다.’

한 기업의 브랜드 TV 광고 문구다. 며칠 전 한밤중에 불을 다 꺼놓고 TV를 보고 있는데 어두컴컴한 집 안을 촛불 하나가 은은하게 비추는 듯한 광고 하나가 필자의 마음에 훅 들어왔다. 어딘가 익숙하다. 늦은 밤 아파트 주변을 순찰하는 한 경비 아저씨의 모습. 보통의 아파트라면 쉽게 볼 수 있는 낯익은 장면이다. 하지만 우리 사는 이야기 중에 종종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는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해 눈길이 더 끌린 이유도 있다.

ⓒ연합뉴스
10대 기업 총수들의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7월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10대 그룹 기후위기 대응 관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소비자 10명 중 6명, ESG 활동 지지

광고 말미 화면에 뜬 ‘등대 프로젝트: KCC건설 스위첸은 노후된 경비실을 리모델링하여 더 건강한 환경으로 바꿔가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본 후 “좋은데. 잘했네”라며 TV에 대고 칭찬 몇 마디를 건넸다.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메시지를 담은 데다, 기업이 본연의 업을 이용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는구나 싶어 튀어나온 소리다. 자연스레 우리 아파트 경비실은 괜찮은가 떠올려 보게 되더니, 기회가 된다면 해당 브랜드를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지난 5월 ‘소비자 10명 중 6명, 기업 ESG 활동이 제품 구매에 영향 준다’는 비슷한 제목의 뉴스 기사들이 줄줄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ESG 경영과 기업의 역할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였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가 ‘기업의 ESG 활동이 제품 구매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고, 70.3%의 응답자는 ‘ESG 활동에 부정적인 기업의 제품을 의도적으로 구매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ESG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각 머리글자로 최근 국내 경영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두다. 기업의 필수적인 패러다임이자 생존전략으로 떠오른 ESG 경영은 기업의 지속 성장이 사회적 가치 창출과 책임에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ESG는 2004년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의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2006년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을 계기로 그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나 국민연금 같은 국내 투자사의 ESG 요구가 거세지고,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급증하며 올해 국내 기업들은 이에 응답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인터넷에서 ESG를 검색하면 기업들의 관련 활동들이 넘쳐난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6월 한 달 동안 네이버에서 검색되는 매체들의 ESG 관련 보도를 전수조사해 그 결과를 보도했다. ESG 보도는 총 2만5065건이고, 그중 보도자료 기반 기사는 2만2043건(88%)에 달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어느 정도로 ESG 경영에 열중하는지 엿볼 수 있는 자료는 또 있다. 지난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ESG 준비실태 및 인식조사’를 실시해 발표했다. ‘ESG가 필요한 이유와 목적’에 대해 응답자의 43.2%가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라고 답했다. 사회 분야 활동의 주요 대상을 묻는 질문에 ‘소비자’라고 답한 응답자가 31.7%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지역사회(19.8%), 근로자(18.8%) 등 순이었다.

지금 투자자나 고객 등 기업 이해관계자의 눈은 ESG 경영에 쏠리고 있다. 기업은 이미지 제고에 노력할 수밖에 없다. ESG 마케팅이 중요해지는 지점이다. 마케팅은 경영 목표와 방향에 맞춰 전략과 실행 방안이 마련된다. 그리고 이해관계자와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국내 기업들은 올해 ESG 경영 선포에 따라 사회적 책임과 사회공헌활동들을 홍보하며 광고 캠페인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노력해온 기업이라면 고객이든 투자자든 그 진정성을 쉽게 알아볼 것이다.

미국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는 ESG 경영의 교과서 같은 기업이다. 2011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Unless You Need It)’라는 광고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높은 품질의 제품이니 새 옷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담아 소비자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파타고니아는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는 친환경 기업으로 급부상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2020년에는 ‘덜 사고, 더 요구하세요(Buy Less, Demand More)’라는 글로벌 캠페인을 실시했다. 당시 ‘당신에게는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SK그룹은 임직원 평가에 ESG 성과를 반영하고, 국내 최초로 ‘RE100’ 글로벌 에너지 캠페인에 가입하는 등 일찌감치 ESG 경영 행보를 보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IT 기술을 활용한 ESG 스타트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진정성과 꾸준한 실천·개선이 ‘찐’하게 동반돼야

뜨거운 열기만큼 논란과 비판도 만만치 않다. ESG 춘추전국시대다. 투자 유치나 굿컴퍼니(착한 기업) 이미지 획득만을 위해 일시적으로 급조한 마케팅 또한 고객이 먼저 알아본다는 걸 기억하자. 진정성, 꾸준한 실천과 개선이 ‘찐’하게 담보돼야 하는 이유다. 기업은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ESG 워싱(ESG Washing)’용 마케팅을 극히 경계해야 한다. MSG를 친 마케팅 활동으로 ESG 경영을 위장한 것이 들통나는 날에는 고객뿐만 아니라 투자자에게 버림받아 영원히 회생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

연말에 쓰레기를 줍고, 연탄을 나르고, 취약계층에 기부하는 등의 CSR 활동을 ESG로 통째로 바꿔쳐선 곤란하다. 마케팅은 ESG의 본질을 이해하고 기업 철학과 문화에 내재된 ESG 요소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ESG 마케팅을 할지 말지보다 ‘왜’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임을 알아야 한다. ESG는 기업이 당면한 급하고 중요한 책임 과제다. 멈출 수 없는 대세다. 기업이 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타고 올라서려면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역시 멈출 수 없는 것 아니겠나. 이에 ESG 마케팅은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