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사건’으로 바꿔치기된 버닝썬 사태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8.21 14:00
  • 호수 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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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뒤만 쫓다 묻힌 강남 대형 클럽 의혹…결과적으로 대국민 ‘야바위’ 된 셈

2018년 말, 서울 강남의 한 클럽에서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누리꾼의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성추행 피해 여성을 구하려다 클럽 보안요원에게 구타당했고, 도착한 경찰이 클럽 측 말만 듣고 도리어 자신을 구타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그 클럽의 대표가 승리라고 알려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승리가 클럽을 운영하는 것처럼 그려졌는데, 바로 그곳이 폭행 논란이 된 버닝썬이었다. 단순 클럽 폭행 사건에서 승리 이름이 나오자 일이 본격적으로 커졌다. 2019년 초에 폭행 CCTV가 공개되며 논란이 이어졌고, 물뽕 이슈까지 제기되며 마약 성범죄 의혹으로 일이 더 커졌다. 거기에 경찰 유착 의혹까지 나왔고, 버닝썬의 ‘만수르 세트’가 1억원이라는 식의 자극적인 이야기들까지 곁들여지면서 더욱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2019년 2월에 승리, 유아무개 전 유리홀딩스 대표 등이 참여한 대화방에서 성접대를 추정케 하는 대화가 오갔다는 내용도 추가로 알려졌다. 결국 3월에 승리가 은퇴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그 시점에 또 다른 폭탄이 터졌다. 정준영 단톡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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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재판 결과에서 사라진 버닝썬 

정준영은 결국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최종훈에겐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다. 에디킴과 로이킴은 사안이 경미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용준형과 이종현은 사과하며 팀에서 탈퇴했다. 이게 나중에 나온 결과인데, 당시엔 이들의 이름이 밝혀질 때마다 언론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다 경찰 총경이 이들과 유착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와 사안이 더 중해졌다. 이들의 이야기가 날마다 포털 메인을 장식했다. 공분이 들끓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버닝썬 사건은 승리, 정준영 사건으로 정리됐다. 버닝썬 사건을 전한다면서 승리, 정준영 사건의 전개 과정을 전하는 뉴스가 허다했다. 당시 사건탐사 프로그램의 버닝썬 편도 승리, 정준영 등 연예인 얘기로 가득했다. 특히 승리가 버닝썬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되면서 버닝썬 사건과 승리 사건이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언론은 승리가 구속돼야 버닝썬 사건이 정리된다고 했다. 일부 매체는 승리가 조사받을 때 풀메이크업을 했다는 근거 없는 보도까지 내놓으며 승리 사냥에 나섰다. 승리 구속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고, 검찰이 구속영장을 두 번이나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공분이 극에 달했다. 그리고 이번에, 사건이 불거지고 거의 2년 반 정도 만에 마침내 승리 재판 1심이 마무리됐다. 이 재판 전에 일부 언론은 버닝썬 재판이 드디어 마무리된다고 쓰기도 했다. 결과는 전부 유죄였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횡령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알선 등) △상습도박 △외국환거래법 위반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 △특수폭행교사 혐의 등 총 9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 선고가 내려졌다. 

하지만 여기에 버닝썬 사건 관련 혐의는 단 하나도 없다. 버닝썬 사건은 부유층 VIP가 버닝썬에서 조직적인 비호를 받으며 대대적으로 마약범죄와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다. 바로 그 때문에 거대한 공분이 일어났던 것인데 지금 승리 재판에서 제기된 혐의라곤 연예인 개인 비리들일 뿐이다. 

언론 보도대로 승리가 버닝썬 사건의 몸통이라면 버닝썬 마약 유통의 총책이라든가, VIP 성범죄의 뒤를 봐주는 책임자였다는 식의 혐의들이 나와야 한다. 현재 그런 혐의가 하나도 없는데 언론은 무슨 근거로 그동안 승리가 버닝썬 사건의 몸통이라고 했단 말인가. 승리와 더불어 핵심인물로 지목된 정준영의 혐의들도 연예인 개인의 일탈 사안이다. 

버닝썬 사건을 해결하려면 연예인들이 아닌 버닝썬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강남 클럽 문화 전반을 조사했어야 했다. 당시 한 클럽 MD는 한겨레TV와의 인터뷰에서 “클럽 산업이 돌아가는 메커니즘 자체가 여성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다. 물뽕에 관한 위험은 여타 클럽에 가도 느낄 수 있다”며 “나는 그 어떤 클럽도 버닝썬과 손절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버닝썬과 손절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다른 클럽들도 버닝썬 행태와 연관이 있다는 뜻이다. 

강남 대형 클럽들을 잠입 취재했던 주원규 작가는 클럽에서의 부유층 일탈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며 마약, 성범죄, 불법 촬영, 공권력 유착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취재했던 클럽은 버닝썬이 아니었다. 애초에 버닝썬 자체가 다른 강남 클럽을 모델로 만들어졌으며 버닝썬 구성원도 다른 클럽에서 스카우트된 이들이라고 했다. 다른 강남 대형 클럽에 비하면 버닝썬의 문제는 조족지혈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버닝썬만의 일이 아닌 강남 대형 클럽 의혹으로 보고 철저하게 진상 규명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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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관들이 2019년 2월14일 서울 강남구 클럽 버닝썬 출입구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연합뉴스

경찰 총경 유착 의혹은 어디로 갔나 

하지만 연예인들에게 초점이 맞춰지면서 버닝썬과 강남 클럽 의혹은 묻혀버렸다. 진상 규명의 에너지가 정준영, 승리 처벌로 집중됐고 마침내 장기간 탈탈 털어서 모은 승리의 개인 비리 혐의들로 1심 유죄를 받아냈는데 클럽 의혹은 뭐가 정리됐나. 미궁에 빠졌을 뿐이다. 와중에 승리는 여론재판의 희생양이 됐다며 일부 억울함을 주장한다. 

승리가 ‘털리는’ 사이에 정작 클럽 비리 관련자들은 증거를 지우고 일부는 자취를 감췄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오피스텔을 빌려 일탈 행위를 한다는 주장도 나왔었는데, 설령 그런 오피스텔이 있었다 해도 지금은 모두 정리됐을 것이다. 연예인에게 집중하는 사이에 버닝썬 사건이라고 불린 강남 대형 클럽 의혹 사건은 진상 규명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언론이 국민 공분 사건을 연예인 사건으로 바꿔치기한 해괴한 일이 벌어진 것인데, 이것을 언론이 공모해 조직적으로 했다고는 믿기 힘들다. 의도하고 바꿔치기를 한 것이 아니라 연예인처럼 자극적인 이슈를 쫓는 언론의 속성이 결과적으로 이런 일을 초래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일반적인 클럽 유흥가 사건으로 묻힐 수도 있었던 사안이 연예인 승리의 이름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고 일이 커졌다. 승리가 버닝썬 사건의 실질적 주모자가 아니라는 정황이 나왔으면 바로 승리에게서 빠져나와 클럽 의혹 사건의 본질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우리나라 언론은 계속 연예인 뒤만 쫓았다. 정준영 단톡방이 터지자 앞뒤 안 가리고 빠져들었다. 이렇게 연예인 이슈성만 따라가는 사이에 저절로 버닝썬 사건을 연예인 사건으로 바꿔치기하게 됐을 것이다. 의도가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대국민 ‘야바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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