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원은 부캐일 뿐, 본캐는 재건축조합장?
  • 이원석·구민주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8.31 07:30
  • 호수 1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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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함께하는시민행동, 서울시 기초·광역 의원 겸직 사례 전수조사
정비사업 조합장 겸직 의원이 본회의에서 지역 민원 따져
지역구 사업 따낸 건설사 임원 겸직한 시의원도

지방의원(기초·광역)의 겸직 논란은 매번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의회에서는 여전히 ‘투잡’을 뛰는 의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해충돌 여지가 있는 건설·개발업종 종사자들의 지방의원 겸직 사례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엔 현재 재개발 등 정비사업 조합장을 맡고 있는 현직 의원도 3명이나 된다. 이렇듯 지방의원의 겸직 논란이 계속되자, 이와 관련해 내년 1월 지방자치법 개정안의 시행으로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업종 등에 대해 겸직 제한이 강화될 예정이다. 

시사저널은 시민단체 ‘함께하는시민행동’과 공동으로 정보공개청구 등의 방법을 통해 서울시 광역의원과 25개 자치구 기초의원 전체의 겸직 사례를 조사·분석했다. 서울시 지방의원은 현재 모두 530명(시의원 110명, 구의원 420명)이다. 그중 겸직을 하고 있는 사례는 240여 건에 이른다. 한 의원이 여러 개의 겸직을 신고한 경우도 있다. 중복을 감안했을 때 약 30~40%의 의원이 겸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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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세중

서울 지방의원 30~40%가 겸직…실제론 더 많을 듯

물론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의원이 겸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방자치법 제35조 3항은 겸직 여부를 각 의회 의장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신고제의 특성상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따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실제 겸직을 하고 있지만 신고하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의원의 겸직은 의원직 수행에서 개개인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크게는 무보수 명예직이던 지방의원직이 2005년 이후부터 보수직으로 바뀌었는데, 겸직이 필요하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현재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연 5000만~6000만원가량의 보수가 주어지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이해충돌이다. 지방의원들은 주로 자신의 지역구 내에 사업체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시·구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사업을 따낼 여지가 있다. 이를 위해 의원직 지위를 이용해 시청·구청을 압박할 수 있다. 자신의 사업에 이익이 가도록 조례를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또 의원은 여러 미공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크다. 미공개 정보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건설·개발 관련 업종에서 나타나기 쉽다. 건설·개발을 위해선 각종 인허가가 필요한데, 시·구의 인허가를 심의·의결하는 곳이 지방의회다. 이해충돌 여지가 매우 많은 셈이다. 시사저널과 함께하는시민행동은 이러한 소지가 짙은 구체적 사례 몇 가지를 확인했다.

가장 논란이 될 수 있는 사례는 정비사업 조합장을 겸직하는 경우다. 서울 지방의원 중 시의원 1명, 구의원 2명이 현재 정비사업 조합장을 겸직하고 있었다. 김수규 시의원(더불어민주당, 동대문 제4선거구)은 현재 장안동 A아파트 재건축조합장이다. 물론 그는 해당 아파트에 집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조합장에 취임한 그는 그보다 앞서 추진위원장부터 맡아왔다. 김 의원은 시의원이 되기 전 같은 지역구인 동대문에서 2010년부터 구의원을 두 번 지냈다. A아파트는 2011년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고, 2017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재건축조합장 시의원, 본회의에서 “공공융자 규제 완화해야”

김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제가 조합장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추천서를 받아서 추대한 것”이라며 “오히려 조합장을 맡으면서 제 사업엔 막대한 손실이 있는데, 주민들의 간곡한 청으로 고민 끝에 맡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김 의원은 “(조합장) 이전엔 (재건축 진행이) 지지부진했던 상황에 대해 구의원을 하면서 도움이 되는 일을 조금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의원과 관련해 시의회에선 직접적으로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한다. 상임위가 교육위원회인 김 의원은 6월15일 본회의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질의하며 정비사업 초기자금 공공 융자지원사업에 대해 언급한다. 회의록에 따르면 김 의원은 “서울시는 공공관리라는 이유로 (융자지원 조건) 규제만 강화하고 필요자금의 3분의 1도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개발 주체의 재정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개발 추진 주체가 요구하는 금액의 절반 이상은 지원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하고 사업비 최소 60%라는 규정을 신청액 대비 집행액을 고려하여 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비사업 조합장인 김 의원은 해당 공공지원사업 대상의 주체로 상당한 이해충돌 소지가 있어 보인다.

김 의원도 자신이 맡고 있는 조합장의 지위와 해당 질의의 상관성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제가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서울시에서 주는 융자금이 이자율이 저렴한데, 운영비와 사업비를 구분하는 등 여러 제한이 있다. 그것 때문에 비싼 금융권 융자를 쓰면 민원이 발생하지 않겠나. 오 시장이 재개발·재건축 활성화에 대해 노력하겠다 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 주문한 것”이라며 “조합장을 겸직하면서 실질적으로 어려움을 경험한 시의원이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해 시장한테 얘기를 하는 것이 맞지, 오히려 이해충돌이 무서워서 얘기하지 않는 건 또 하나의 직무유기 아닌가”라고 말했다.

마포구의회 의장인 조영덕 구의원(국민의힘, 마포 다선거구)은 마포구 내 B시장 재개발조합장을 맡고 있다. 평의원도 아닌 구의회 의장이 재개발조합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는 더 커 보인다. 해당 시장에 상가를 소유한 조 의원은 조합장 선거운동 과정에선 의원직을 통해 용적률 승인 등 재개발에 어떤 방향으로 이익을 줄지에 대해서까지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현재 경찰 수사와 서울시 행정심판을 받고 있다.

아울러 윤정자 구의원(민주당, 성북 라선거구)은 지역구 내 C구역 주택재개발조합장 겸직 신고를 임기 중인 2019년 9월에 했다. 해당 재개발 역시 지난 5월 건축계획안이 통과돼 현재 한창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다. 윤 의원 역시 조합장에 앞서 재건축추진위원장부터 맡아 사업을 진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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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공직자 부정부패 주민대책위 관계자들이 3월23일 마포구청 앞에서 구의원 들의 일탈 행위를 규탄하고 있다.ⓒ연합뉴스

“공적인 일 한답시고 모든 일 다 멈출 수 있나” 반박도

정비사업 조합장 외에도 건설 관련 겸직 의원들의 사례들도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건 지역구 내 건설사업을 수주해 진행 중인 김용연 시의원(민주당, 강서 제4선거구)의 사례다. 법인 등기에 따르면 그는 강서구 내 D건설회사 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한때 해당 회사의 대표이기도 했다.

김 의원의 지역구 내엔 서울시가 주도해 조성한 마곡지구가 포함된다. 국토교통부 국가공간정보포털에 의하면 D사는 2019년 마곡지구 내 E프라자 신축공사 사업을 낙찰받아 진행했다. D사는 주변의 F프라자 시행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김 의원은 통화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개인이 최고 금액으로 입찰해서 낙찰받아 진행한 사업이다. 오히려 해당 사업을 무리해서 진행하느라 잔금을 못 치러 계약금을 25억원 날리기도 했다”며 “또 제가 시의원이라고는 하지만 시의원 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공적인 일을 한답시고 모든 일을 다 멈출 수 있나”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구의원이 지역구 내 사업을 수주해 시공·시행한 것에 따른 이해충돌 소지에 대한 인식은 김 의원이 속한 민주당 내에서도 존재한다. 지난 4월 민주당 국회의원 14명은 자신이 속한 지자체 내에서 건설업과 관련한 수주와 시공, 시행을 한 사람의 겸직을 제한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발의한 바 있다.

건설업뿐 아니라 건축사무소 등의 겸직도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 실제 과거 서울의 한 자치구 의회에서 도시계획위원을 맡은 구의원이 관내 청년주택 설계를 수주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방의원 중에 부동산임대업을 겸직하는 사례도 6건 존재했다. 최근 LH 사태와 같이 미공개 정보 이용 등의 소지가 있어 고위 공직자의 겸직 제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자체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는 업종의 겸직도 늘 논란이 돼 왔다. 유치원·어린이집이 대표적이다. 실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대표·원장을 겸직하다가 적발돼 제명된 지방의원 사례도 여러 건 존재한다. 현재도 유치원·어린이집을 겸직하고 있는 사례가 2명 확인됐다. 김기덕 시의원(민주당, 마포 4선거구)은 지역구 내 위치한 유치원의 설립자로 겸직 신고를 했다. 유치원의 경우 시의 재정적 지원을 받기 때문에 이해충돌 소지가 있어 보인다.

최종배 구의원(국민의힘, 서초 라선거구)도 관내 유치원 대표자를 겸직하고 있다. 다만 최 의원은 “어린이집의 경우 구청에서 지원을 받지만, 유치원은 시에서 지원을 받기 때문에 구의원인 저의 이해충돌 여부에 대해 관계가 없다는 여러 변호사의 자문을 받았다”며 “구청에서는 지원을 받더라도 규모가 작다”고 해명했다.

반복되는 겸직 논란에 대해 서울시의 한 구의원은 “이해충돌이 걸릴 수 있는 겸직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특히 건설업 등에 종사하는 지방의원들은 의원직을 수행하는 동안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는 아예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지방자치가 발전해야 하는 시기에 지방의회의 책임은 더 커지기 때문에 더 이상 봉사 수준이 아닌 의원들의 정책, 정치적 전문성의 발전이 필수적이고 이에 대한 제도의 변화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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