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넘어도 더 뜨거운 ‘코리안 탱크’ 최경주의 열정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7 12:00
  • 호수 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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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PGA투어 우승 이어 챔피언스투어에서도 우승…또 하나의 골프 역사 쓴 최경주의 라이프 스토리

‘코리안 탱크’ 최경주(51)가 한국 골프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우승했던 최경주가 PGA 챔피언스투어에서도 첫 정상에 올랐다. 최경주는 9월27일(한국시간) PGA 챔피언스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13언더파 203타로 공동 2위 베른하르트 랑거(독일) 등을 2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오르며 우승상금 33만 달러(약 3억8000만원)를 받았다.

그의 우승은 2011년 5월 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이후 10년4개월 만이다. 그는 1999년 12월 퀄리파잉(Q)스쿨을 통과해 PGA투어에 진출했고, 2002년 컴팩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이래 8승을 올리며 한국 남자선수 PGA투어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챔피언스투어 우승은 필 미켈슨(51·미국)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지난 6월 SK텔레콤오픈 때 한국에 온 최경주는 “올해 PGA 챔피언십(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한 미켈슨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 미켈슨이 우승을 위해 준비한 계획과 전략을 지켜보며 우승을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도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PGA 챔피언스투어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싶은 목표가 있고, 그 각오가 심장을 뛰게 한다”고 밝힌 것이다.

9월2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의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에서 열린 PGA 챔피언스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경주가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AFP연합

챔피언스투어는 50세 이상만 출전할 수 있는 시니어 투어

PGA투어는 총 3개 투어를 주관하고 있다. 정규 투어인 PGA투어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참여하는 ‘빅리그’이고, 챔피언스투어는 50세가 넘어야 출전할 수 있는 시니어 투어다. 콘페리투어는 정규 투어에 진출하기 위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2부 투어다. 한국 선수의 챔피언스투어 우승은 앞으로 십여 년 이상 불가능하다. 현재 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우승 가능성 있는 한국 선수들의 나이 때문이다. 배상문(35), 강성훈(34), 안병훈(30), 노승열(30), 이경훈(30), 김시우(26), 임성재(23) 등이 PGA투어를 뛰다가 챔피언스투어에 합류하려면 15년에서 27년이나 걸린다.

국내 골프팬들에게는 챔피언스투어가 조금 낯설 수도 있다. 국내 미디어에서는 국내 대회 외에는 한국 선수들이 세계 정상급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를 중심으로 PGA투어, 일본프로골프 남녀 대회 등을 주로 방송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챔피언스투어 인기가 LPGA투어나 유러피언투어보다 훨씬 높다. 미국의 골프채널을 보면 PGA투어와 챔피언스투어 중심으로 방송을 한다. 1980년 시작해 성공한 PGA 챔피언스투어는 미국 골프 팬들에게 매우 친근하다. 기량만 되면 정규 투어 출신 선수들이 앞다퉈 챔피언스투어에 뛰어든다. 스포츠 선수들이 은퇴할 나이에 ‘제2의 화려한 인생’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2020~21 시즌의 총상금이 무려 5500만 달러(약 652억8500만원)나 된다. 대회 수도 총 40개에 이른다.

챔피언스투어의 매력은 ‘나이’에 숨어있다. 골프를 한창 하는 시기인 중·장년층과 잘 맞아떨어진다. PGA투어를 보던 세대가 그대로 챔피언스투어로 넘어가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골프 마니아들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선수들을 보면서 게임도 감상하지만 선수들의 스윙을 따라 하면서 색다른 골프의 묘미를 즐기는 것이다. 특히 챔피언스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한때 PGA투어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다가 그대로 무대만 옮겨 플레이를 펼치기 때문에 실력은 살아있고, 노련미가 더해져 PGA투어와는 또 다른 골프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들만의 리그’로 골프 팬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는 얘기다.

현재 챔피언스투어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부분 ‘레전드’들이다. 베른하르트 랑거를 비롯해 프레드 커플스, 짐 퓨릭, 필 미켈슨, 어니 엘스, 스티브 스트리커, 콜린 몽고메리, 이안 우스넘, 코리 페이빈, 비제이 싱 등 기라성 같은 선수가 넘쳐난다. 이런 연유로 PGA투어처럼 챔피언스투어에서도 우승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오늘날의 최경주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는 또래에 비해 아주 어렵게 골프에 입문했다. 당시 다른 선수들은 체계적인 골프를 터득하며 국가대표나 상비군을 대부분 지냈다. 그는 상황이 달랐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 탓이다.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있었는데 운동부에 들면 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중학교 때 역도부에 들어갔다. 이것이 훗날 강인한 체력의 밑거름이 됐다. 체격이 ‘통뼈’가 된 것이다.

그의 고향은 전남 완도. 섬마을 완도에 8타석의 골프연습장이 들어섰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인연으로 골프클럽을 잡게 된 것이다. 낮에는 일하고 손님의 연습이 끝난 뒤 별을 보면서 볼을 쳤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면서 점점 샷이 좋아졌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두 번째도 연습장에서 생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이 우연히 연습장에 들른 것. 이곳에서 그 이사장은 최경주에게 “이왕이면 서울에서 연습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최경주는 서울행 기차를 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서울로 옮기는 과정에서 몇 개월을 허송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고교에 편입했고, 이후 골프만이 유일한 살길인 듯 훈련에만 집중했다.

“언젠가는 너무 많은 연습량으로 손바닥이 마치 거북등처럼 변해 있는 것을 보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힘든 미국 투어 생활의 버팀목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족을 미국에 데리고 와서 배수진을 쳤다”

그의 고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 세미프로 생활을 하며 최경주는 친구 집에 얹혀사는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언제 정식 프로가 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지금의 아내가 된 김현정씨를 만난 일이었다.

그는 미국에만 가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았다. 한국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장벽과 생활문화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이었다. 스스로 채찍질을 해가며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하며 이국 생활의 고달픔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 어려웠던 점은 투어에 따른 유랑 생활이었다. 모텔을 전전하며 새우잠을 자야 했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굶기가 다반사였다. 여기에 아무리 아껴 써도 투어 생활비가 연간 20만 달러를 넘으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짓누른 것은 수시로 엄습해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등에서 식은땀이 납니다. 지금이야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지만, 당시엔 정말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지요. 그래서 가족을 (미국에) 데리고 와서 배수진을 쳤습니다. 가정을 꾸려가려면 PGA투어에서 성공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최경주는 선수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재단을 만들어 골프 꿈나무를 육성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세계 주니어 골퍼들이 참가하는 AJGA 주니어 챔피언십도 개최하고 있다. PGA투어와 챔피언스투어를 오가며 활약하는 최경주가 마지막으로 꿈꾸는 마스터스나 메이저대회 우승을 언제 이룰지도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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