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은 어떻게 유니콘이 됐을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6 10:00
  • 호수 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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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가치 3조’ 당근마켓의 저력
‘당신 근처’ 중고 거래 앱에서 로컬 플랫폼으로 진화

올 상반기 한국인이 가장 많이 내려받은 애플리케이션. 국내에서 넷플릭스와 카카오톡, 틱톡, 인스타그램 앱 다운로드 수를 꺾은 앱 최강자.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의 이야기다. ‘당근한다’는 말은 ‘중고 거래를 한다’라는 뜻을 지니게 됐고, 당근마켓과 중고 거래를 활용한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했으며, 소설과 웹툰은 ‘가지마켓’ ‘연근마켓’으로 당근마켓을 변주시켰다. 이렇게 당신의 근처에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린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지역 생활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발을 넓혔다.

이제 당근마켓의 기업 가치는 3조원에 이른다. 최근 마무리된 투자유치를 통해 ‘유통 공룡’ 신세계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은 몸값을 인정받은 당근마켓은 국내 16번째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기업)의 자리에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수많은 중고 거래 플랫폼 중 후발주자인 당근마켓이 독보적으로 부상한 배경은 뭘까. 어떤 성장성과 저력이 당근마켓을 국민 앱과 유니콘의 반열에 올려놓았을까.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당근마켓을 쓰는 이유

‘당근을 한다’ ‘재당근’이라는 말이 익숙하게 사용될 정도로,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 플랫폼의 새로운 대명사가 됐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총 가입자 수는 2100만 명. 한 집에 한 명은 당근을 쓴다. 월간 이용자 수는 1600만 명, 주간 이용자 수는 1000만 명에 달한다. 말 그대로 ‘당신의 근처(당근)’, 동네에서 하는 직거래가 당근마켓 거래의 정체성이다. 코로나19로 지속되고 있는 비대면 시국에서도 직거래를 지향하는 당근마켓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접근성’이다. 앱에서 동네 인증을 받고 연락처만 입력하면 가입이 가능하다. 4~6km 내의 동네 이웃끼리만 거래할 수 있다. 직거래가 주거래 방식이기에, 물품을 박스에 포장하거나 택배를 부칠 필요도 없다. 슬리퍼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거리에서 손쉽게 거래가 이뤄진다. 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당근마켓을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활용하게 된 이유다. 보통 중고 거래 플랫폼의 이용자는 MZ세대가 대부분이지만, 당근은 조금 다르다. 45세 이상 이용자가 전체의 35% 이상을 차지한다. 55세 이상의 비중도 15%에 달한다.

중고 거래를 통해 내 연락처와 정보가 공유될 수 있다는 걱정도 덜었다. 택배 거래가 아니기에 집 주소는 공유하지 않는다. 만날 장소를 정할 뿐이다. 거래 당사자들끼리 만남을 갖기 위해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아도 된다. 앱 채팅창 안에서 ‘당근 전화’로 연락이 가능하다. 마치 카카오톡의 보이스톡과 비슷한 기능이지만 거래 약속을 설정해야 사용이 가능하고, 약속 시간 1시간 전후로만 통화가 가능하다.

이렇게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거래와 관련된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데 그 경쟁력이 있다. 당근마켓의 캐릭터 ‘당근이’의 존재 역시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용자들의 구매 문의와 거래 성사가 채팅을 통해 이뤄지는 당근마켓에서, 당근이 이모티콘은 거래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채팅에 더해진 이모티콘은 마치 SNS처럼 기능한다. 나눔을 받거나 만족할 만한 거래를 한 뒤, 상대방에게 기프티콘을 보낼 수 있는 ‘선물하기’ 기능도 있다.

거래 전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다른 앱을 사용할 필요도, 감사의 마음을 보내기 위해 연락처를 묻거나 기프티콘을 구매할 수 있는 다른 앱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여러 장점은 당근마켓의 진입장벽을 낮췄고, 중고 거래에 대한 분위기까지 환기시켰다. 당근마켓의 성장에 힘입어 중고 거래 시장도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20조원. 올해는 20% 증가한 2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확장

당근마켓의 다음 시도는 ‘동네 플랫폼으로의 진화’였다. 단순히 중고 거래 앱이 아닌, 로컬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당근마켓의 목표는 ‘동네생활’과 ‘내 근처’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구체적으로 구현됐다. ‘동네생활’은 같은 지역 주민들끼리 유용한 정보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는 온라인 소통 공간이다. 분실한 물건을 찾는 글부터, 동네 맛집이나 학원에 대한 문의, 함께 운동을 할 사람을 구하는 글도 올라온다. 당근마켓에서 가능한 중고 거래의 범위에서 가까운 동네의 사람들끼리 소통이 가능하다.

마치 동네 게시판에 분실물을 찾는 글을 붙이듯, 잃어버린 반려동물을 찾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듯, 이웃 주민에게 정보를 물어보듯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다. 당근마켓은 그 공간을 구현했고, 이용자들은 이에 호응했다. ‘동네생활’의 월간 이용자 수는 500만 명. 최근에는 지자체에서도 ‘동네생활’을 주민 간 소통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 지역 소상공인 지원사업이나 주민 참여 행사를 당근마켓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당근마켓이 운영하는 '동네생활' 서비스
‘동네생활’은 같은 지역 주민들끼리 유용한 정보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는 온라인 소통 공간이다. ⓒ당근마켓

‘동네생활’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면, ‘내 근처’ 서비스는 동네 상권과 주민을 연결한다. 미용실, 카페, 식당, 학원 등 동네 가게들의 정보를 모아 볼 수 있도록 했다. 동네 가게를 직접 이용한 주민들의 후기도 직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에 광고나 홍보글에 ‘낚일’ 우려도 적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글이나 과외 홍보글도 올라온다. 마치 ‘벼룩시장’ 같은 지역 정보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과거 동네에서 열리는 ‘아나바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 듯, 동네에서 하는 중고 거래로 당근마켓에 진입한 사람들은 일종의 ‘모바일 벼룩시장’이 된 지역 플랫폼을 활용하며 앱 내에 락인된다.

이렇게 당근마켓이 지역에 집중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돈을 쓰기 때문이다. 편의점과 마트처럼 고정적인 지출이 발생하는 곳은 집 근처다. 포털에서 이사업체나 빨래방을 검색하면 인지도가 높거나 전국적으로 순위가 높은 곳이 나오지만, 사람들이 찾는 것은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서비스다. ‘내 근처’ 서비스의 지향점도 바로 그것이다. 결국 지역 안에서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 진정한 ‘하이퍼로컬’을 실현하는 시장을 주도하는 것이 당근마켓의 목표다. 당근마켓이 자사의 경쟁사를 중고나라나 번개장터가 아닌, 생활 정보를 교류하고 지역의 상권을 홍보하는 ‘맘 카페’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좁아지고, 동네 소비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는 점도 당근마켓의 성장에 기여했다.

당근마켓의 하반기 목표는 로컬 커머스의 본격화다. 농수산물과 신선식품 등을 활용한 로컬 비즈니스를 활성화해 지역 상권과 주민들을 긴밀하게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O2O(Online to Offline)의 영역도 계속해서 넓히고 있다. 세탁, 청소, 이사, 반려동물 케어 등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생활밀착형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당근마켓은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과 제휴를 맺고 일종의 예약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로컬 커머스 본격화에 ‘페이’를 더하다

하반기에 내놓을 카드는 ‘당근페이’다. 이미 번개장터, 헬로마켓과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은 자체적인 페이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이 페이 서비스들과 당근마켓의 당근페이가 다른 점은 뭘까. 활용의 영역이다. 당근페이 역시 중고 거래에서 송금을 쉽게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쓰일 테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당근페이는 당근마켓이 본격화하는 커머스와 결합할 수 있다.

당근마켓은 현재 동네 장보기나 생활 서비스 카테고리에 한정해 결제 서비스를 지원하지만, 아직까지는 이용자가 신용카드 정보를 직접 입력하거나 결제 앱을 구동해야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할 당근페이는 당근마켓과 연동돼 이 같은 번거로움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 세탁이나 청소대행 서비스처럼, ‘내 근처’ 서비스에 연동된 생활밀착형 서비스가 당근페이의 주요 사용처가 될 전망이다.

비즈프로필을 등록한 지역 상점, 소액의 선물을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했던 ‘선물하기’에서도 당근페이는 활용될 수 있다. 페이는 고객을 묶어두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당근마켓의 로컬 커머스 서비스 활성화와 유지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고객의 결제 데이터를 확보해 광고를 추천할 수도,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을 구상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올 하반기 당근마켓은 당근페이를 필두로 또 도약할 수 있을까. 중고 거래 앱에서 로컬 플랫폼으로 진화한 유니콘, 당근마켓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굿즈에 진심인 당근마켓

처음 보는 상대와 만나 중고 거래를 하는 어색한 순간이, 당근 장바구니의 ‘당근이세요?’라는 문구로 재치있게 등장했다. 당근마켓 캐릭터 ‘당근이’의 귀여움은 덤이다. 사은품으로 증정되던 당근 장바구니는 이용자들의 구매 문의가 이어지자 공식 굿즈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이뤄지는 거래를 보여주듯 등장한 주황색 ‘당근 슬리퍼’는 판매 시작 4일 만에 품절됐다. 중고 거래를 하는 플랫폼이 굿즈를 만든다는 이상한 공식이 당근마켓에는 성공적으로 적용된다.

당근마켓은 굿즈에 진심이다. 다양한 연령대가 포진해 있는 당근마켓에서도 캐릭터와 굿즈에 대한 팬덤이 형성돼 있기에, 당근마켓은 그 팬덤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당근마켓은 최근 새로운 굿즈를 탄생시키기 위해 ‘당근굿즈 오디션’을 열었다. 심사 기준은 슬기로운 동네생활을 위한, 당근 거래를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상생활에 실용적인,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사람이 원하는 아이템이다. 예선부터 본선, 최종 발표까지 3단계를 거친다.

아이디어 공모부터 선정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이용자들의 손으로 이뤄진다. 직접 참여해 굿즈를 탄생시킨다는 당근마켓의 영리한 취지는 이용자들을 움직였고, 4일간 진행된 예선전에 3만3968명이 참여해 4만 건이 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본선에 오른 아이디어는 8개. 당근 폴딩 카트, 야광봉, 우산, 줄자, 마스크, 티셔츠, 텀블러, 화분이었다. 이용자 투표로 선정된 최종 1위는 크고 무거운 제품을 넣고 이동할 수 있는 당근 폴딩 카트다. 당근마켓은 당근 폴딩 카트를 새로운 굿즈로 제작할 예정이다.

# 당근마켓 입성으로 K유니콘 16곳

스타트업이 상장하기 전, 1조원의 기업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머리에 뿔이 달린 전설 속 동물 유니콘처럼, 그런 기업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유니콘 기업’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올해 9월까지 국내 유니콘 기업은 총 16곳. 지난 7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밝힌 15개 유니콘에 당근마켓이 더해진 결과다. 외국 기업에 인수·합병되거나 상장된 곳은 유니콘 목록에서 빠진다. 쿠팡은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유니콘에서 빠졌고,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합병되면서 명단에서 제외됐다.

올해는 4곳의 유니콘이 추가됐다. 나머지 3곳은 프롭테크 기업 직방, 가상자산 거래소를 운영하는 두나무,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다. 세계적인 비디오 메신저 앱 아자르를 운영하는 하이퍼커넥트는 국내 벤처캐피털 평가액이 1조원 미만이었다가 급격히 회사 가치가 커지면서 미국 매치그룹에 17억2500만 달러에 매각돼 공식 통계에서는 제외됐다. 기업 가치 1조원을 돌파한 이력이 있는 기업은 2018년 말 13개에서 올해 25개로 늘어났다.

야놀자, 위메프, 지피클럽, 무신사, 에이프로젠 등 가장 많은 유니콘이 배출된 해는 2019년. 올해에는 역대 최다 유니콘 배출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니콘 기업들은 쇼핑, 배달, 핀테크, 바이오,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대면 방식의 비즈니스가 강세를 보였는데, 올해 유니콘에 입성한 직방, 컬리, 두나무 등의 성장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새벽배송으로 비대면 유통을 선도한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의 기업 가치는 2조5000억원 규모로 평가된다. 프롭테크 기업 직방은 3D·VR 모델하우스를 활용해 부동산 시장을 비대면으로 주도한다.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한 직방은 1조10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니콘에 등극했다.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점유율 1위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는 한화투자증권이 583억원을 투입해 지분 6.15%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1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에서 오프라인 문법을 지향하지만, 로컬 커뮤니티 측면에서는 비대면의 형태를 띤다. 지역 광고, 로컬 커머스, ‘동네생활’ 서비스 등을 하나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당근마켓은 최근 180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마무리하면서 3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2019년(2000억~3000억원)보다 몸값이 10배 이상 뛰었다.

16번째 유니콘에 입성한 당근마켓은 로컬 커뮤니티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첫 투자에 나섰다. 관심사 기반의 모임 커뮤니티 스타트업 ‘남의 집’에 1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다. 이렇게 고도성장하는 혁신 스타트업이 신생 스타트업을 발굴·지원하면서 지속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는 사례도 주목된다. 직방, 무신사 등 유니콘 기업들도 신생 스타트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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