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드라마계 BTS가 되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9 16:00
  • 호수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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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보다 해외에서 창의성 더 인정받아…더 주목받는 한국 콘텐츠

이제 막 공개된 한국 드라마 때문에 전 지구적 신드롬이 일어나는 초유의 사건이 터졌다. 《오징어 게임》 신드롬이다. 《대장금》도 세계 곳곳에서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그땐 시차가 있었다. 이번엔 공개되자마자 동시에 반향이 일어났고, 《대장금》 때보다 훨씬 뜨겁다. 범위도 더 넓다. 그야말로 한국 드라마사의 신기원이다. 

이 작품은 세계 최대 OTT업체인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는데, 10월6일 기준으로 14일째 ‘넷플릭스 오늘 전 세계의 톱 10 TV 프로그램’ 1위를 지키고 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까지 통틀어 전 세계 TV 영상 1위다. 게다가 사상 최초로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83개국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연합뉴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연합뉴스

“넷플릭스 사상 가장 큰 작품 될 수 있다” 

공개 후 첫 28일 동안 8200만 명이 시청할 것으로 미국 잡지 포춘이 예측했는데, 이는 지난해 넷플릭스 상위 40개 프로그램의 시청자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숫자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는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가 현재까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까지 말했다. 

넷플릭스 창업자는 《오징어 게임》 복장 인증샷을 올렸고,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이 드라마를 언급했다. 곳곳에서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동영상 플랫폼에선 《오징어 게임》 따라 하기가 지구 곳곳에서 나타난다. 극 중 게임 진행자들의 옷이 올해의 핼러윈 의상으로 떠올랐다. 게임 참가자들의 트레이닝복, 진행 우두머리의 검은 의상 등도 인기 상품이 됐다. 

프랑스 파리에선 《오징어 게임》 체험관이 열리자 수천 명이 줄을 섰다. “오후 1시에 왔는데 오후 6시까지 기다렸다” “온종일 줄을 서고도 입장하지 못했다”는 글들이 SNS에 올라왔고, 노숙하며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으며 난투극까지 벌어져 경찰이 출동했다. 극 중에 나왔던 달고나 키트 상품도 해외에 등장했다. 엄청난 열기다. 단순히 드라마 시청률이 높다는 정도가 아닌 전 지구적 문화현상 수준이다. 

해외 드라마가 이런 초거대 신드롬을 일으켜도 화제가 될 일인데, 한국 드라마가 그 주인공이 됐으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방탄소년단 신드롬도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오징어 게임》으로 드라마계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던 기존 K팝 한류의 저변을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으로 대폭 확장시킨 주역이 방탄소년단이었는데, 《오징어 게임》도 미국 등 서구권에서 1위 드라마에 올랐다. 

정말 상상초월이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를 거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는 의미에서도 그런데, 《오징어 게임》 공개 직후 국내 반응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흥행 폭발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의미에서도 상상을 넘어섰다. 

서구의 신드롬은 항상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지점에서 벼락같이 터졌다. 싸이도 방탄소년단도 한국에서 먼저 터진 신드롬이 아니었다. 서구에서 열기가 일어나고 한국이 뒤따랐다. 《오징어 게임》도 그런 경로를 밟았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달고나 뽑기도 덩달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 대학로의 한 뽑기 가게에서 유튜버들이 촬영하는 모습ⓒ연합뉴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달고나 뽑기도 덩달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 대학로의 한 뽑기 가게에서 유튜버들이 촬영하는 모습ⓒ연합뉴스

왜 《오징어 게임》인가 

평가가 가장 극명하게 엇갈리는 지점은 창의성 부분이다. 한국에선 진부하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해외에선 신선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가 공개 직후 무려 100%였다. 10월5일 기준으로 94%인데 이것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공개 직후에 적극적으로 이 드라마를 찾아본 사람들 중엔 해외의 서바이벌 데스게임 장르 팬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 장르의 관습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100% 신선하다는 평가가 나왔다는 건 외국인들이 보기에 《오징어 게임》이 매우 창의적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국내에선 왜 반대 평가가 나왔을까? 

서바이벌 데스게임 장르 자체가 외국에서 먼저 생긴 것이고, 우리 누리꾼들도 해외 작품들을 보며 이런 장르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사한 작품이 나오니 ‘짝퉁’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만약 서구에서 그런 작품이 나왔으면 ‘원래 그들에겐 그런 전통이 있어’라며 짝퉁이란 생각을 안 했을 텐데 한국에서 나오니 뭔가 베낀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과거에 우리나라 콘텐츠 업계가 서구 콘텐츠를 많이 참조했었기 때문에 우리 누리꾼들이 표절에 특히 민감하고, 거기다가 서구문화를 따라잡기 하는 처지에서 비롯된 콤플렉스 때문에 더욱 베끼기에 예민하다. 그래서 뭔가 비슷한 것 같으면 바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데스게임 팬이 훨씬 많은 외국에선 작품 간 유사성을 같은 장르 내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오징어 게임》과 여타 데스게임 작품의 유사성 이슈에 대해 ‘냉소적이고 절망적인 인류의 모습을 그릴 때 유사성은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또 한국 관객들은 이 작품이 인물의 이야기를 부각하는 것에 대해 진부하다고 느꼈다. 그런 인간적 스토리를 신파라며 지긋지긋해하는 관객들이 건조한 미국 드라마 장르물에 환호한다. 《오징어 게임》은 서구 장르물처럼 만들었으면서도 헌신적인 어머니 등 우리에게 익숙한 휴먼 스토리가 나오니 우리 관객들이 실망한 것이다. 반면에 외국 관객들은 바로 그 휴먼 스토리에 열광했다. 그들에겐 그게 새로웠으니까. 

미국 슬레이트 매거진은 《오징어 게임》을 꼭 봐야 하는 신작으로 소개하며 ‘이 장르의 다른 사촌들과 주요하게 다른 점은 감정적인 펀치를 날린다는 것’이라고 썼다. 기존 데스게임 작품들과 달리 인간적 스토리로 마음을 움직인다는 뜻이다. 미국 포브스는 ‘특히 6번째 에피소드는 올해 본 TV 프로그램 에피소드 중 최고’라고 썼다. 6회는 단짝 친구가 옛날식 골목에서 서로 죽이는 구슬치기를 한다는 내용으로 국내에선 신파라는 비판이 나왔었다. 

또 이런 유의 해외 장르물을 찾아서 보는 국내 시청자들은 치밀한 구조, 두뇌게임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선 주인공이 운과 타인의 호의로 어쩌다 보니 이길 뿐이고, 게임의 구조도 너무 단순해 두뇌게임이랄 것이 없다. 이것도 평가절하 이유였는데 해외 시청자들은 그런 기준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서 드라마를 즐겼다. 《오징어 게임》은 확실히 재미있게 만든 드라마인데 데스게임 장르에 대한 국내 팬들의 기준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 정답에서 벗어나면 바로 오답으로 치부하는 것일까. 

감독은 처음부터 게임 난이도를 낮추면서 한국적인 이야기를 부가하는 것이 목표였다. 난이도를 낮춰야 외국인들도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한국적인 요소를 추가하면 외국인들에게 더 이채롭게 다가갈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국제화한 기획이었다. 

사회적 묘사도 서구권에서 인기를 얻은 이유다. 우린 장르 오락물에도 빈부격차 등 사회적 묘사가 깔리는 전통이 있다. 외국은 사회적인 작품과 장르 오락물이 구분되는데, 《오징어 게임》은 오락물인데도 그 안에 자본주의 경쟁 사회의 축소판 같은 설정이 나오니 더 신선하게 다가간 것이다. 반면에 우린 이런 설정을 이미 많이 봐 반응이 달랐다. 

스페인의 시네마가비아는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의 어두운 부분을 스릴러 장르로 파헤친다’고 썼다. 영국의 가디언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며 ‘살인 게임이 끔찍하다고 해도, 끝없는 빚에 시달려온 이들의 상황보다 얼마나 더 나쁘겠는가’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르몽드도 ‘빈부격차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는 점을 짚었다. 거기에 더해 화사한 세트와 진행요원의 분홍색 의상들이 살육극과 기괴하게 대비되면서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 점도 신드롬의 이유 중 하나다. 

 

사상 최고조에 이른 한국 콘텐츠 위상 

한국은 보편적인 콘텐츠를 만든다. 지구촌에서 가장 보편적인 할리우드 문법과 그리 다르지 않고 요즘은 장르물도 많이 제작한다. 그래서 어디에서나 익숙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할리우드와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고 한국만의 특징이 들어간다. 그 특징이 너무 강하면 낯설게 느껴지면서 일부 마니아만의 콘텐츠가 된다. 그런 특징이 너무 없으면 진부하게 느껴진다. 한국 콘텐츠는 보편적인 코드와 한국만의 특수성을 절묘하게 배합한다. 그래서 해외에서 한국 콘텐츠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신선하게 느낀다. 

이렇게 ‘적당하게’ 신선한 콘텐츠가 지구촌 곳곳에 유통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 인터넷, OTT 플랫폼 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콘텐츠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미국 NBC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K드라마가 전 세계를 정복했다’며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한국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K팝 가수, 한국 배우, 한국 영화 제작자, 한국 운동선수 등 한국 인재에 대한 수요가 너무 많기 때문에 미국의 모든 회사가 그들을 불러 모으는 방법을 찾으려 혈안이 되고 있다’ ‘한국 연예산업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보도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 콘텐츠 업계에 자본이 몰려든다. 넷플릭스 한 곳에서만 올해 한국 콘텐츠에 5500억원을 투입한다. 불과 몇 년 전에 100억원짜리 드라마를 대작이라고 했었는데 이젠 200억원도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다. 당분간 《오징어 게임》보다 더 거대한 프로젝트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것이 단지 규모만의 확대가 아니라 작품의 질이 계속 담보돼야 한류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방탄소년단과 《기생충》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이 사상 최고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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