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200원 받던 소년공이 40년 후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금배지 한 번 달아본 적 없는 정치인이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10일 제20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최종 대선 후보가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얘기다. 지난 7월1일 자신을 ‘흙수저 비주류’라고 소개하며 20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지 100여일 만이다.
이 지사가 민주당 대선주자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개천로드’의 전형으로 꼽힌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표현의 살아있는 표본으로 불린다는 이야기다. 이 지사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지나 주경야독으로 사시에 통과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에도 변방의 아웃사이더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탄핵 정국을 계기로 체급을 키우더니, 2021년 현재에는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한 편의 성장 드라마와 닮은 이 지사의 굴곡진 인생을 되짚어봤다.
기름때 묻은 공장 전전하던 소년공이 사시 패스하기까지
이 지사는 1964년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태어났다. “나는 흙수저보다 더 낮은 무수저”라고 말할 정도로, 버스도 안 다니는 오지마을이었다고 한다. 부친은 성남 상대원시장에서 청소부로 일했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시장통 공동화장실에서 요금 받는 일을 했다.
집안이 늘 가난했던 탓에 이 지사는 겨우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공장을 전전하는 소년공이 됐다. 일당 200원으로 시작했다. 공장 프레스 기계에 왼쪽 손목이 끼이면서 뼈가 골절된 것도 이 때다. 손목시계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작업을 하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장애를 얻게 된 것도 같은 시기이다.
공장에서 지속적으로 폭력을 겪기도 한 이 지사는 고등학교 무렵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공장 일과 공부를 병행한 이 지사는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월 20만원을 받는 장학생이었다. 졸업 후 1986년 사법시험(28회·연수원 18기)에 합격하며 인생 2막을 연다. 이 지사는 성남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인권변호사로,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과 2002년 파크뷰 특혜분양사건 등을 다루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사이다 화법으로 탄핵정국 라이징 스타…사법리스크 해소로 날개 달아
이후 이 지사는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2006년 성남시장,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이어 낙방했지만,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되며 인생 3막을 열었다. 이 지사는 첫 임기 시작 11일 만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등 파격적인 시정 운영으로 파란을 일으켰고, 무상급식 등 ‘무상 복지’ 시리즈를 내세우며 ‘이재명만의 정치’를 구사했다.
여기에 특유의 사이다 화법은 이 지사를 ‘라이징 스타’로 만들었다. 2016년 11월 시작된 촛불 정국에서 대선주자로는 처음으로 ‘박근혜 탄핵’을 언급하면서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는 문재인‧안희정 당시 후보에 이어 3위를 기록했고, 득표율 21.2%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기세를 몰아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직에 도전해, 16년간 보수정당이 차지했던 지사직 탈환에 성공했다.
이 지사의 정치인생 최대 위기는 ‘친형 강제입원’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2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때이다.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 지사직 상실은 물론 2022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이러한 리스크를 떨쳐냈다. 이후 경쟁자이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빠르게 추격하며, 결국 대역전까지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