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게 가난한 소년공” 출신이 대통령 꿈꾸기까지…이재명의 굴곡진 역사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1.10.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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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 안 거친 ‘비주류’ 이재명…성남시장 당선 10년 만에 정치 거물로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선거 서울지역 합동연설회에서 대선후보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선출됐다. 사진은 1980년 성남으로 이사온 지 4년 만에 지하를 벗어나 처음 1층으로 이사한 날 가족들과 밥을 먹는 장면을 셋째 형이 촬영한 모습 ⓒ 연합뉴스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선거 서울지역 합동연설회에서 대선후보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선출됐다. 사진은 1980년 성남으로 이사온 지 4년 만에 지하를 벗어나 처음 1층으로 이사한 날 가족들과 밥을 먹는 장면을 셋째 형이 촬영한 모습 ⓒ 이재명 후보 측 제공

일당 200원 받던 소년공이 40년 후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금배지 한 번 달아본 적 없는 정치인이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10일 제20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최종 대선 후보가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얘기다. 지난 7월1일 자신을 ‘흙수저 비주류’라고 소개하며 20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지 100여일 만이다.

이 지사가 민주당 대선주자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개천로드’의 전형으로 꼽힌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표현의 살아있는 표본으로 불린다는 이야기다. 이 지사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지나 주경야독으로 사시에 통과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에도 변방의 아웃사이더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탄핵 정국을 계기로 체급을 키우더니, 2021년 현재에는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한 편의 성장 드라마와 닮은 이 지사의 굴곡진 인생을 되짚어봤다.

1970년대 후반 셋째형 막내동생과 성남 자택앞에서 사진촬영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 연합뉴스·이재명 후보 측 제공
1970년대 후반 셋째형 막내동생과 성남 자택앞에서 사진촬영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 연합뉴스·이재명 후보 측 제공

기름때 묻은 공장 전전하던 소년공이 사시 패스하기까지

이 지사는 1964년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태어났다. “나는 흙수저보다 더 낮은 무수저”라고 말할 정도로, 버스도 안 다니는 오지마을이었다고 한다. 부친은 성남 상대원시장에서 청소부로 일했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시장통 공동화장실에서 요금 받는 일을 했다. 

집안이 늘 가난했던 탓에 이 지사는 겨우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공장을 전전하는 소년공이 됐다. 일당 200원으로 시작했다. 공장 프레스 기계에 왼쪽 손목이 끼이면서 뼈가 골절된 것도 이 때다. 손목시계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작업을 하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장애를 얻게 된 것도 같은 시기이다.

공장에서 지속적으로 폭력을 겪기도 한 이 지사는 고등학교 무렵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공장 일과 공부를 병행한 이 지사는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월 20만원을 받는 장학생이었다. 졸업 후 1986년 사법시험(28회·연수원 18기)에 합격하며 인생 2막을 연다. 이 지사는 성남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인권변호사로,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과 2002년 파크뷰 특혜분양사건 등을 다루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17년 2월8일 열린 '이재명의 굽은 팔' 출판 간담회에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출간 소감을 밝히던 중 소년공 시절 사고로 굽은 왼쪽 팔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2017년 2월8일 열린 '이재명의 굽은 팔' 출판 간담회에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출간 소감을 밝히던 중 소년공 시절 사고로 굽은 왼쪽 팔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사이다 화법으로 탄핵정국 라이징 스타…사법리스크 해소로 날개 달아

이후 이 지사는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2006년 성남시장,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이어 낙방했지만,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되며 인생 3막을 열었다. 이 지사는 첫 임기 시작 11일 만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등 파격적인 시정 운영으로 파란을 일으켰고, 무상급식 등 ‘무상 복지’ 시리즈를 내세우며 ‘이재명만의 정치’를 구사했다.

여기에 특유의 사이다 화법은 이 지사를 ‘라이징 스타’로 만들었다. 2016년 11월 시작된 촛불 정국에서 대선주자로는 처음으로 ‘박근혜 탄핵’을 언급하면서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는 문재인‧안희정 당시 후보에 이어 3위를 기록했고, 득표율 21.2%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기세를 몰아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직에 도전해, 16년간 보수정당이 차지했던 지사직 탈환에 성공했다.

이 지사의 정치인생 최대 위기는 ‘친형 강제입원’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2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때이다.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 지사직 상실은 물론 2022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이러한 리스크를 떨쳐냈다. 이후 경쟁자이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빠르게 추격하며, 결국 대역전까지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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