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오르고 있다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21 07:30
  • 호수 1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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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원자재 및 식품 가격 최고치 경신
급속한 인플레이션 확대 추세에 주요국 긴장

미국 서부텍사스유(WTI)가 10월1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년 만에 80달러를 돌파했다.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20% 상승한 금액이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83.6달러를 기록하면서 2018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천연가스 역시 미국의 경우 연초 대비 3배 수준으로 상승했으며, 석탄도 중국 장저우 상품거래소 선물 기준으로 톤당 218.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톤 생산에 14MWh에 해당하는 대량의 전기가 필요한 알루미늄의 경우 중국 전력난 여파로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톤당 3064달러를 기록하면서 2008년 7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원자재뿐만이 아니다. 국내 식품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삼겹살의 경우 연초 100g당 2080원을 기록했으나 최근 2604원으로 34% 상승했다. 시금치는 연초 대비 24%, 깐마늘은 22.8% 상승했고, 천일염도 35%의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생활과 관련한 모든 가격이 상승하면서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freepik

석유·석탄·삼겹살·깐마늘 전방위적 오름세

이와 같은 전방위적 가격 상승은 여러 가지 요인이 겹치면서 나타나고 있다. 연초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각종 원자재 수요가 증가했다. 하지만 동남아를 비롯한 주요 산업생산 지역이나 원료 공급 지역에서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기 못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항만 운영 장애와 트럭 운전기사 부족이 겹치면서 물류 부문의 병목현상이 연초부터 지속됐다. 급등한 물류비용이 더해지면서 당초 일시적일 것으로 생각됐던 가격 상승 추세는 지속적인 현상으로 바뀌었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는 하반기 들어 에너지 부문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력생산의 15% 수준이던 풍력발전 비중이 5%로 낮아졌다. 이 감소분만큼을 가스화력발전소가 담당하면서 천연가스 수요가 증가했다. 하지만 유럽의 천연가스 재고는 평소보다 길게 이어진 겨울로 인해 평상시보다 낮은 상태였다. 발전 부문의 천연가스 수요 증가는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으며 전력요금 폭등으로 연결됐다.

천연가스 가격과 전력요금 급등에 따라 암모니아 비료를 비롯한 에너지 다소비 업종들은 가동을 중단했으며, 드라이아이스 등의 공급이 격감하면서 산업생산이 위축됐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19로 인한 조기 은퇴, 비효율적인 트럭기사 면허 발급, 신규 채용 감소 등으로 인해 영국에서 시작된 대형 트럭기사 부족 현상이 확대되면서 공급망 균열이 진행되고 있다.

천연가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은 주요 가스 공급처인 러시아에 공급을 늘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러시아는 장기계약분을 제외한 신규 공급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파이프를 통해 운반되는 천연가스를 대체하는 것은 액화천연가스(LNG)지만 이것 역시 수요 증가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공급 여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던 카타르와 미국으로부터 LNG 공급이 어렵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유럽의 가스 가격은 다시 폭등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이 추가적인 공급을 명령하면서 가스 가격 급등세는 진정됐지만 러시아도 가스 재고가 넉넉지 않아 겨울철 난방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불안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전력공급 중단으로 생산 차질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 사용량 감축 목표 충족을 위한 인위적 공급 축소, 동북 3성을 중심으로 한 풍력발전의 차질, 그리고 계속적인 탄광 폐쇄와 운영조건 강화로 석탄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중국의 제조업은 정상적인 운영이 힘들어졌고,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그리고 ESG 경영의 확대도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로 대표되는 새로운 수요의 확대는 코발트, 니켈 등 광물자원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지고 있지만 광물자원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를 우려한 투자 축소 및 지연 등으로 공급 확대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부문에서도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대로 석탄, 석유 등 전통적인 화석에너지 부문 투자가 중단되거나 감소하면서 수요 증가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을 중심으로 한 공급 부족이 확실해지면서 투기적 수요까지 겹치고 있어 가격 상승은 이어지고 있다.

수요 증가로 인한 적절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기대했던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급속한 인플레이션 확대에 긴장하고 있다. 급격한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요구되지만, 현 단계에서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거나 통화량을 축소할 경우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은 경기침체와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져왔기 때문에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가 같이 진행되는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ESG 경영 확대도 가격 상승 부추겨

우리나라도 지난 8월26일 한국은행이 금리를 0.25% 인상했지만 경기회복 흐름의 둔화, 변동성 확대 등으로 인해 일단 기준금리를 0.75%로 동결했다.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내년 초까지 한두 차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원화 약세 기조가 이어지며 달러당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서면서 수입물가 상승 추세는 강화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균열과 회복 지연으로 시작된 물가 상승 추세는 예상치 못한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인해 장기화되고 있다. 특정한 요인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과 상호작용이 겹치면서 발생한 물가 상승 추세이기 때문에 대응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19 극복과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지만 최근 나타나는 모습은 그러한 전환과 변화가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당장 에너지 부족으로 춥고 어두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유럽의 경우 그동안 강조해 왔던 각종 저탄소 정책에 대한 비판과 변화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책 당국은 이런 상황에 맞서 정책적 유연성을 가지고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야 하지만 저금리로 인한 부작용 방지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과 대출 축소를 통한 통화량 감소를 밀어붙이고 있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으로의 복귀라는 목표 달성보다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유연함이 아쉬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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