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대출 셧다운’ 현실화되다
  • 이기욱 시사저널e. 기자 (gwlee@sisajournal-e.com)
  • 승인 2021.10.18 07:30
  • 호수 1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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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연말까지 취급 제한 불가피...자금 필요한 서민들 불법 사금융 노크하나

금융 당국의 고강도 규제로 인한 전 금융권 가계대출 중단 사태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3분기에 이미 금융 당국의 권고 수준에 근접한 가계대출 증가율을 기록한 은행권은 각종 대출 제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최근 의욕적으로 출범한 토스뱅크 역시 정부의 총량 규제에 막혀 대출 영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힘든 상황이다. 보험사와 상호금융 등 2금융권 역시 풍선효과 차단을 위해 하나둘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어 실수요자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이 추가 규제안까지 예고하고 있어 자금이 절실한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빠질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3호 인터넷전문은행’ 토스뱅크가 10월5일 공식 출범했지만 정부의 총량 규제에 막히면서 대출 업무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연합뉴스

토스뱅크도 나흘 만에 한도액 60% 소진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8월 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중단 결정으로 시작된 은행권 ‘대출 대란’은 올해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02조8878억원으로 전월 대비 4조729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대비 증가율은 4.88%로 금융 당국이 정한 연간 증가율 목표치 5~6%에 근접한 상태다.

단순 계산상 5대 시중은행이 연말까지 취급할 수 있는 가계대출 한도는 약 13조원 수준에 불과하다. 7.29%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농협은행은 연말까지 대출 중단 조치 연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현재 농협은행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의 신규 취급을 제한하고 있다. 하나은행(5.19%)과 국민은행(4.9%), 우리은행(4.05%) 등도 대출 증가율이 높기 때문에 지금의 대출 축소 정책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9월29일부터 전세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하고 있다. 집단대출 역시 시가가 아니라, 분양가를 기준으로 담보가치를 산정하기로 했으며 타행 상환조건부 신규대출(대환대출)도 중단했다.

하나은행도 국민은행과 마찬가지로 임대차계약 갱신 시 전세대출 한도를 보증금 범위 내로 제한했다. 비대면 대출상품인 ‘하나원큐 신용대출’와 ‘하나원큐 아파트론’ 등의 대환 신규대출을 중단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9월부터 지점별로 대출 한도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총량 관리에 돌입했다. 가장 가계대출 증가율이 낮은 신한은행(3.02%)도 대출 모집인을 통한 전세대출 한도를 5000억원으로 제한하는 등 ‘대출 조이기’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심지어 지역민들의 자금 애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지방은행들조차 조금씩 가계대출 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남은행은 10월12일부터 전세자금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일부 신용대출 등에 대한 신규 접수를 연말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다.

은행권 대출 대란의 대안으로 기대됐던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넘치는 대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케이뱅크는 10월2일부터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대출, 신용대출 플러스 등 3개 신용대출 상품의 최대 한도를 축소하기로 했다. 기존 최대 한도가 2억5000만원이었던 일반 신용대출 상품은 한도가 1억5000만원으로 줄었으며 마이너스통장과 신용대출 플러스 상품은 각각 최대 한도가 1억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됐다.

또 케이뱅크는 10월8일 이들 상품의 개인 한도를 ‘연소득의 100% 이내’로 제한하는 조치를 추가적으로 시행했다. 카카오뱅크는 9월말 신규 마이너스통장 판매를 연말까지 중단하기로 했으며 10월8일부터는 고신용 신용대출, 직장인 사잇돌대출, 일반 전월세보증금 대출도 제한하기 시작했다.

대출 수요자들의 마지막 희망으로 여겨졌던 ‘토스뱅크’ 역시 대출 총량 규제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10월5일 국내 3호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새롭게 출범한 토스뱅크는 사전 가입 신청에만 150만 명 이상의 고객이 몰리는 등 정식 서비스 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아왔다. 출범 초기니만큼 금융 당국이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해줄 것이라는 분석들도 다수 제기됐다. 하지만 토스뱅크는 출범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에 대출 영업을 중단할 위기에 놓였다. 금융 당국이 정한 올해 대출 한도 5000억원 중 3000억원이 단 나흘 만에 소진됐기 때문이다.

보험사나 상호금융 등 2금융권 역시 풍선효과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한화생명의 주담대 평균금리는 3.09%로 전월(3.06%) 대비 0.0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의 금리도 3.13%에서 3.27%로 0.14%포인트 높아졌다. 교보생명과 신한라이프 역시 주담대 금리를 각각 3.17%에서 3.27%로, 2.84%에서 3.28%로 올렸다.

삼성생명의 경우 지난 9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운영 기준을 자체적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DSR은 연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을 일정 비율 이내로 제한하는 대출 규제로 2금융권의 DSR 기준은 60%지만 삼성생명은 40%를 적용하기로 했다. 상호금융권에서는 수협이 10월1일부터 신규 전세자금대출, 주택담보대출, 중도금집단대출을 중단하기로 했으며 농협은 이보다 앞서 지난 7월 비·준조합원들의 전세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금융 당국의 고강도 대출 규제로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업무가 연말까지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서울 의 한 시중은행 창구ⓒ연합뉴스

금융위 추가 규제 예고에 쏠리는 시선

금융권의 대출 제한 조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사들의 여러 조치에도 꺾이지 않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금융 당국이 추가 조치에 나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9월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6조5000억원으로 8월(6조1000억원)보다 오히려 4000억원 늘어났으며 2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액도 1조4000억원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현재 거론되는 추가 대책으로는 △전세대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DSR 규제 2단계 조기 적용 등이 거론되고 있다. DSR 규제는 현재 규제지역 내 6억원 초과 주택을 구매하는 주택담보대출 1억원 초과 신용대출에 대해 선제 적용되고 있으며 내년 7월(총 대출액 2억원 초과)과 2023년 7월(총 대출액 1억원 초과)에 단계적으로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 7월 1단계 시행 이후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 금융 당국이 단계 상향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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