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죽지 않은 ‘후보교체론’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17 10:00
  • 호수 1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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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불복 위기는 일단 봉합했지만,
이재명 민주당의 ‘원팀’
가능할지엔 회의적 시선도

이낙연 전 대표의 경선 승복 선언은 이재명 대선후보 선출이 있고 사흘 만에야 이루어졌다. 이낙연 캠프는 중도 사퇴자들의 표를 무효 처리함으로써 결선투표 없이 이재명 후보의 선출을 확정한 데 대한 이의제기 신청서를 당에 제출했지만, 더불어민주당 당무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이를 기각했고 이 전 대표는 결국 그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민주당의 경선 불복 사태를 몰고 올 수 있었던 위기 상황은 일단 진정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갈등이 남길 후유증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10월10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대통령 “엄정 수사” 지시도 이 후보에 부담

특별당규 제59조 1항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표출되었던 갈등의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이재명으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강경한 발언들이 이낙연 캠프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재명 후보의 구속 가능성은 굉장히 높다. 본선 가면 진다”는 설훈 의원의 말은 이재명 후보의 앞길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물론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 내 다수의 현역 의원들이 이재명 캠프에 몸을 실었지만,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파장이 확산된 이후로 ‘이재명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민주당 내에서 많이 늘어났음을 읽을 수 있다.

경선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3차 선거인단 선거의 결과는 이재명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다. 이재명 후보가 누적 득표에서 반수를 간신히 넘은 50.29%로 결선투표 없이 선출되었지만,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의 참패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 후보는 30만 명의 선거인단이 참여한 ‘3차 슈퍼위크’에서 28.3% 득표에 그쳐, 62.37%의 표를 얻은 이낙연 전 대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참패를 당했다. ‘슈퍼위크’는 일반당원과 국민이 사전에 신청만 하면 누구나 선거인단으로 참여할 수 있기에 지역순회 경선에 비해 민심을 더 반영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그러한 층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거진 시기에 선거인단 신청을 하고 그런 결과를 낳는 투표를 했으니, 대장동 의혹으로 인해 이재명 후보를 향한 중도층 민심이 크게 흔들렸음이 나타난 것이다. 민주당의 경선 일정이 2주만 늦게 진행되었어도 경선 결과는 전혀 달라졌으리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후보에 대한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경선 드라마는 막을 내려버렸으니, 엔딩 이후의 상황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선투표 여부를 둘러싸고 빚어진 불복 사태 위기는 일단 봉합되었지만, 이재명 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되는 시점부터 오히려 ‘불안한 후보’로 인식되기 시작한 상황은 민주당의 대선 행보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경선이 끝나고 대선후보가 선출되었는데도 컨벤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이 후보의 지지율이 오히려 부진한 상황도 민주당으로서는 긴장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이 ‘국민의힘 게이트’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자신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그의 말대로 1원도 받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해도, 대장동 사업의 결정권자로서 갖는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후보가 인정한 ‘관리 책임’ 이외에도 배임 혐의의 성립 여부는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마당에 문재인 대통령은 대장동 의혹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달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과거 조국 전 장관이나 자기 주변 사람들이 수사를 받을 때와는 온도 차이가 있는 냉정함이 읽힌다. 이재명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이 후보 측 해석과는 달리, 검찰과 경찰에 전권을 부여한 듯한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이 후보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대통령까지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마당에 정권 임기말의 수사기관들이 여당 후보의 의혹이라 해서 덮고 가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후보 리스크’가 당내 화학적 결합의 걸림돌

이재명이 집권여당 후보로 안착하는 일이 이낙연의 승복 선언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우선 대장동 의혹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통해 이재명 후보의 책임이 어떤 성격과 수준으로 판명 날 것인가를 지켜봐야 한다. 검찰 수사를 통해 ‘관리 책임’ 이상은 나오는 것이 없다 해도, 논란은 그것으로 종결되지 않고 특검을 요구하는 여론은 계속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대장동 의혹보다 더 큰 지뢰가 될 수도 있다. 가족과 관련된 일들, ‘형수 욕설’ 이외에도 형 이재선씨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 과정에 대한 의혹 등 본선에서 야당에 의해 다시 제기될 악재들이 도사리고 있다.

민주당 지지층만 상대로 하는 경선에서는 이재명 후보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 상관없이 그를 지지하는 변함없는 표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본선은 전혀 다르다. 사안마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각종 의혹에 대한 규명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중도층이 대선 승부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재명의 참패를 낳은 3차 선거인단 투표 결과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이재명의 ‘후보 리스크’는 민주당 지지층 내부의 화학적 결합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계속 자리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 안팎의 ‘친문’들에게는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붙였던 이재명 후보에 대한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다. 언제든 문 대통령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후보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깊은 불신이다.

문제는 본선으로 가는 길에서 이 후보의 악재들이 이어져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후보교체론이 당 안팎에서 제기될 가능성도 살아있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나 노무현 민주당 후보 때도 후보교체론이 제기된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 일은 없다. 하지만 후보교체론이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라도 대두되는 상황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심각한 분열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사 여부에 관계없이 이재명 후보를 흔들 수 있는 아주 나쁜 상황일 수 있다.

2007년 대선 때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당내 주류인 ‘친노’ 세력이 손을 놓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외롭게 대선을 치러야 했다. 2012년 대선 때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있었던 갈등으로 지지층의 결합을 이루어내지 못한 채 패하고 말았다. 이낙연 전 대표가 승복 선언을 하고 장차 선대위원장을 맡는다고 한들, 지지층의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원팀은 불가능해진다. 이재명 후보에게 경선은 어쩌면 쉬운 게임이었다. 이제 원팀을 복원시킬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경선과는 차원이 다른 힘겨운 본선을 맞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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