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 대출 건들면 대선 물 건너간다
  • 송두한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22 10:00
  • 호수 1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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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적 관치 규제가 불러온 ‘신용대란’ 사태
실수요자 엄격히 구분하는 ‘규제 차별화’ 강화해야

대출 총량 규제는 금융기관에 대출한도를 배급한 후 소진시켜 나가는 쿼터제와 유사한 규제 방식이다. 개발경제 시대에나 있을 법한 후진적인 관치 규제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초유의 전세대출 중단 사태가 진정되면서 발등의 급한 불은 꺼진 셈이다. 이번 전세대란 사태가 남긴 교훈은 정책 신뢰가 무너지면 회복하기 힘들고, 그로 인한 피해를 사후적으로 복원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좀 더 근본적인 실수요자 보호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작금의 신용대란 사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맥락도, 원칙도 없는 총량 규제가 위험한 이유는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너무 광범위하고, 일단 피해가 발생하면 복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주택 실수요자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어야 하며, 세입자는 평수를 줄이거나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것도 아니면, 전세를 반전세로 바꿔 비싼 월세로 주거비를 충당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전세난민이 돼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서민층에 피해가 집중되는 저인망식 총량 규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도, 방치할 수도 없는 이유다.

10월19일 서울 대치동 한 은행 외벽에 주택담보대출 상품과 개인신용대출 상품 관련 안내문이 함께 붙어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총량 규제 실시하면 실수요자 희생 불가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출 배급제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통으로 묶어 관리하는 총량 규제는 실수요자 희생을 전제하는 고육책에 가깝다.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는 방편이 될 수는 있어도 잠재부실을 관리하는 정교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자본력과 신용력이 취약한 무주택자를 골라 선별 타격하는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 890만 무주택 가구, 세대원으로는 2000만 명 이상이 규제 충격에 노출되게 된다. 가계부채 관리가 아무리 중하다 해도 실수요자 보호 원칙이 무너지면, 무주택 서민들은 생존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역대 정부에서도 전세대출만큼은 손대지 못했던 이유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실수요자 보호대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첫째,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총량 규제에서 실수요자 대출(전세대출, 집단대출 등)을 제외하는 규제 방화벽을 한 차원 더 높게 세우는 것이다. 실수요 시장과 이외의 주택시장을 엄격히 구분해야만 규제 충격이 실수요 시장으로 넘어오는 부작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총량 규제의 틀 안에서 일부 실수요자를 선별적으로 배려하는 기존의 방식은 근본적인 실수요자 보호대책이 될 수 없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전세대출이 총량 규제에서 제외됨에 따라 무주택자 서민들이 한숨 돌리게 됐다. 물론 실효성 있는 전세대책이 되기 위해서는 연말 등으로 기한에 제한을 두는 한시적인 조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6%대 총량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전세대출에 한해 용인한다면, 대출 축소를 통한 총량 맞추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보증서 심사를 강화하거나 공적 보증비율을 추가로 축소하는 등의 간접 규제가 그것이다. 은행들이 대출한도를 타이트하게 관리한다면 입주가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전세대출 재개 조치가 조삼모사 대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촘촘하고 정교한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0월14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뒤 대출 총량 규제와 관련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실수요자 보호 원칙 무너지면 지지기반 와해

둘째, 어떠한 경우에도 전세대출이 DSR 산정에 포함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DSR 규제가 전세대출에 적용되면, 대출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서민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DSR 40% 규제가 기존의 안전장치인 대출한도나 보증비율 등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떼일 염려가 없고 세입자의 상환 능력과 무관한 전세대출만큼은 DSR 규제를 적용받을 이유가 없다. 만약, 총량 규제에서 전세대출을 빼는 대신 DSR 규제가 들어온다면, 전세대출 지원책은 병 주고 약 주는 대책으로 전락할 것이다. DTI보다 더 세게 소득을 보는 DSR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무주택 서민이 얼마나 될까?

셋째, ‘금리급등·한도급락’의 주범인 간접 규제를 강화해 실수요자 대출을 추가로 조여서는 안 된다. 직접 규제를 완화해 실수요자 대출을 지원한다 해도 간접 규제로 한도를 줄여버리면 악몽과도 같은 대출 중단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 은행의 자발적 한도 축소, DSR 규제범위 확대, 금리 조정(우대금리 축소, 가산금리 확대)을 통한 대출 억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필요한 조치는 대출 중단이 없다는 선언적 발언이나 추상적인 정책이 아니다. 무주택자라면 누구나 전세보증금의 80%까지 빌릴 수 있고, 주택담보대출을 융통할 수 있어야만 무너진 정책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대출이 막히면 대부업이나 불벌 사금융을 통해 부족 자금을 비싸게 조달할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이 3%로 빌릴 수 있는 저리 자금의 한도를 줄이면, 무주택 는 2금융권에서 20% 내외의 고금리로 주택자금을 융통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평균 금리가 50%에 육박하는 불법 사금융에 의존할 수도 있다.

관치 규제가 국민의 원성을 사는 이유는 그 안에 공정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관리 대상으로 전락하면 선규제 하고 사후적으로 실수요자 보완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반면,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실수요자 보호 원칙을 먼저 세운 이후에 대출 규제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후자로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하게만 느껴진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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