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한류 열풍’보다는 ‘한류 현상’이 더 와닿는 이유
  • 사혜원 영국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25 12:00
  • 호수 1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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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인기 등 힘입어 한국 문화 관심 부쩍 높아진 영국…
현지에서 바라보는 한류 체감도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런던에서 하늘을 찌른다. 최근 2~3주간 회사에서 “요즘 뭐 보냐”라는 대화를 할 때마다 항상 누군가는 “Squid game(오징어 게임)!”이라고 답했고, 이제는 다들 당연히 봤을 거라 생각하는 ‘시청 필수 드라마’ 느낌이 들 정도다. 런던의 대표 번화가인 소호(Soho)에 있는 ‘BUNSIK(분식)’이라는 핫도그 가게에는 런더너들의 줄이 끊이지 않고, 구글 리뷰를 보면 감자 핫도그와 떡볶이를 함께 즐기는 사진 리뷰가 가득하다. 지난해 초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는 백남준 특별전시가 열렸고, 축구팬이라면 올해 토트넘 경기에서 ‘Sonny’(손흥민 선수의 애칭)의 활약에 대해 신나게 대답해줄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누군가는 “런던에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대한민국의 몇몇 보도에선 ‘한류 열풍’을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열풍이 맞냐’고 물어보면, 런던 현지의 관점에서 바로 답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점이 있다. 비교 대상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0월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시내의 포일스 서점 정문 앞에 곤룡포가 전시돼 있다.ⓒ뉴시스

10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 인식에 큰 변화

2010년대 초반, 혹은 그 이전과 비교해 봤을 때 최근 한류가 인기 있느냐고 물어보는 거라면, 100퍼센트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필자가 7~8년 전쯤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뉴몰든(런던 남서쪽 한인타운) 외에는 맛있는 한식당 추천을 받기 힘들었고, 런던 시내에는 큰 한인마트가 있지도 않아서 대부분 중국 슈퍼에서 한국 음식 재료를 사곤 했다. 당시에도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굳게 믿었지만, 그 무렵 한국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남자 아이돌인 엑소를 아는 현지 사람은 필자의 지인 중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North or South?(북한 혹은 남한?)”라고 장난 70%, 진심 30%를 담아 물어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이때도 한국의 대기업인 삼성이나 현대에 대해서는 거의 다 알고 있었고, 런던 시내에 한식당들도 있었고, K팝 아이돌 팬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한류’가 ‘주류’에 속해 있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2021년 10월 지금은, 사람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접할 기회가 훨씬 많아졌고 조금 더 ‘주류’에 속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런던 시내에 한식당과 한인 마트가 늘어났다. ‘아시안 마트’의 한국 음식 코너도 더 커졌고, 일반 슈퍼에서 파는 한국 음식의 범위도 조금 늘어났다. 심지어 런던 시내에 당일배송을 해주는 한인 마트도 생겼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 슈퍼마켓 브랜드에서도 볼 수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마크 앤 스펜서(M&S) 슈퍼마켓의 고추장 및 쌈장 판매량은 지난 12개월간 급증했고, 특히 고추장의 판매량은 20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 중 고급스럽기로 유명한 웨이트로즈에서도 고추장 판매량이 149% 증가했고, 간편조리식품으로 판매하는 ‘코리안 스타일 버거’의 판매량도 역시 106% 증가했다.

또한 한국 음식 재료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높아져 한국 소스나 재료를 활용하는 메뉴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에서 사용하는 고유명사를 그대로 사용하는 메뉴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매운 한국 소스(고추장)를 사용한 닭고기 구이’ 이런 식으로 풀어서 설명했다면, 지금은 한식당이 아닌 일반 샐러드 가게에서도 ‘Gochujang Salmon(고추장 연어 구이)’ 이렇게 설명 없이 재료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식이다. 또한 ‘한국식 치킨’이나 ‘한국식 바비큐’처럼 ‘한국식’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는 메뉴도 늘어났다.

한국 문화에 대한 접근성과 관심도 커졌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 초반에 말 그대로 전 세계를 강타한 달고나 커피부터, 영화 《기생충》과 지금의 《오징어 게임》까지. 다들 집에만 있으면서 세계가 더 좁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대부분 “한국 음식 진짜 맛있잖아”라거나 “나, 한국 진짜 가보고 싶은데”라는 대답을 주로 듣는다. BTS의 세계적인 인기에 대해서는 수많은 기사가 이미 다루었기 때문에 굳이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온라인으로 편하게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듀오링고라는 웹사이트에서는, 2020~21년 사이 한국어를 배우려는 영국 사람들의 숫자가 78%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그런지 측정 가능한 건 아니지만, K로 시작하는 K뷰티, K팝, K드라마 등 한국 문화를 트렌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매우 강해졌다. 비유하자면 대한민국에서 “할리우드 영화, 특히 마블 영화를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프랑스의 인디 영화를 좋아해”라거나 “요즘엔 오래된 대만 영화들을 보는 편이야”라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세련되어 보이는 것처럼. 전반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지금 런던에 ‘한류 열풍’이 일고 있다고 보는 것도 맞을 듯하다.

10월15일 런던 시내의 한 한국 식료품 체인에 김치 등 한식 재료가 가득 진열돼 있다.ⓒ뉴시스

개별 아티스트·작품 혹은 음식에 대한 관심

그렇다고 해서 이걸 ‘열풍’이라고 할 것까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확히 속을 들여다보면 ‘열풍’보다는 ‘현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느껴진다. 개별 아티스트, 작품 혹은 음식에 대한 관심을 현지 전문가들이 ‘한류 열풍’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런던 시내 및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한국에 대한 관심도,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K팝이 인기가 있다고 해도 BTS를 모르는 사람도 많고, 블랙핑크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미국 가수인 저스틴 비버의 인기곡이 몇 주 연속 ‘멜론 톱100’ 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미국 문화 열풍’이라고 분석하진 않는다. 한국에서 쌀국수를 파는 베트남 음식점이 수없이 많지만 이걸 ‘베트남 열풍’이라고 부르지 않고, ‘셜록’ 시리즈의 인기를 굳이 ‘영국 문화 열풍’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기생충》의, ‘감자 핫도그’의, 혹은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굳이 ‘한류 열풍’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한류’가 단순한 ‘현상’이 아닌 하나의 ‘열풍’이 되었다고 느끼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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