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여론조사] 2030세대 10명 중 6명 “대출 규제 반대”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10.20 10:00
  • 호수 167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규제 ‘딜레마’에 빠진 한국 경제
위드 코로나 국면에서 경제정책 불신 여실히 드러나

‘위드 코로나’(With Corona·단계적 일상 회복)를 앞두고 경기 회복 기대감이 싹튼 것도 잠시. 한국 경제엔 요즘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있다. 대출 규제와 기준금리 인상 압박이 동시에 강화되고 있어서다. 명분은 초저금리의 ‘정상화’와 부동산 시장 안정이다. 그간 코로나19 피해 대응 차원에서 통화·재정 정책을 확대해 오던 정부가 돌연 방향을 선회한 것은 복합적인 경제위기 조짐 때문이다. 유동성 급증으로 가계부채가 폭증하고 인플레이션과 자산 버블 붕괴 우려도 속속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급한 불을 끄겠다고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졸지에 ‘비정상’으로 몰린 기존 대출자와 실수요자 등은 분통을 터뜨리는 중이다.  

10월20일 서울 종로구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 여론조사는 계속되는 규제 위주 경제정책에 대해 많은 국민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방증했다. 시사저널은 10월19일 여론조사기관 시사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위드 코로나 이후 경제 전망에 관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는 무선 자동응답(ARS) 방식이었다. 통계 보정은 2021년 8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성·연령대·지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림가중)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대출 필요한 30대 66.7%가 규제 반대 

우선 대출 규제의 적절성을 묻는 문항에서 반대한다는 응답이 57.6%로 찬성한다는 응답 31.4%를 압도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0.9%였다. 반대 여론은 모든 연령대에서 높게 나타났다. 30대(66.7%)에서 두드러졌고 20대(61.9%), 50대(59.9%), 40대(57.2%), 60세 이상(52.6%)이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는 제주(70%), 대구·경북(67.3%), 강원(65.4%), 부산·울산·경남(62.4%), 서울(57.9%), 대전·세종·충청(55.4%), 경기·인천(54.6%) 등 순이다. 광주·전남·전북은 찬성(48.1%)이 반대(41.8%)보다 많았다. 성별에 따른 반대 응답률 차이(남성·57.6%, 여성·56.6%)는 크지 않았다. 

현재 대출을 받았거나 앞으로 받을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36.5%, 없다는 응답은 63.5%였다. 대출자 혹은 대출 수요자의 72.4%는 대출 규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대출을 받지 않았고 받을 계획도 없다는 이들 가운데서도 대출 규제를 반대(48.6%)한다는 응답률이 찬성(37.9%)보다 높았다. 

눈에 띄는 사실은 조사 연령대 중 30대만 유일하게 대출자 혹은 대출 수요자(52.9%)가 그렇지 않은 응답자(47.1%)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결혼 적령기에 해당해 주택 관련 대출 등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빚투’(빚내서 투자)의 중심에 있었던 연령대도 30대다. 한국은행이 9월24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20~30대의 올 2분기 가계부채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8%로, 나머지 연령층의 7.8%를 크게 웃돌았다. 집값 상승 속 20~30대의 전세자금 대출은 21.2%, 신용대출은 20.1% 늘었다. 신용대출 일부는 주식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초저금리 정상화 기조의 직격탄을 맞게 된 30대가 누구보다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형국이다. 

조사에서 대출 규제를 반대하는 이유로는 ‘대출 실수요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응답이 38.7%, ‘정부의 시장 개입이 과도한 것 같다’는 응답이 32%로 나타났다. ‘오히려 불법 사채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응답(25.4%)도 나왔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해’(43.6%),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37.8%), ‘금융권 부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14.2%) 대출 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의 강력한 관리를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상환 능력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10월26일 내놓을 예정이다.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전세대출의 경우 올 4분기 총량 관리 한도(증가율 6%대)에서 제외됐으며, 전세대출에는 DSR을 적용하지 않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출 규제는 대선 정국의 주요 이슈로도 부상했다. 특히 제1야당인 국민의힘 주자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각자의 구상을 밝히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10월14일 정부를 향해 “가계부채를 잡는다면서 국민의 삶을 벼랑 끝으로 밀고 있다”며 “가계부채의 급격한 증가는 막아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저는 국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추진할 때 반드시 정책의 타당성을 면밀히 평가하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유승민 전 의원도 “부동산 정책 실패로 미친 집값, 미친 전·월세를 초래한 문재인 정권이 대출까지 막는 것은 서민 숨통을 죄는 나쁜 정책”이라면서 ‘2030 청년들과 신혼부부에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90%까지 제한 없이 풀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한편 방역 규제를 푸는 위드 코로나 정책이 향후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73.8%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더 나빠질 것이란 응답은 13.1%에 불과했다. 

정부는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위드 코로나 전환 논의를 ‘두 달여 뒤부터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며 한발 뺐다. 그러다 경제 상황과 여론이 악화하자 코로나19 백신 접종률, 해외 동향 등을 파악해 가며 계획을 앞당기는 모습이다. 시사저널이 지난 9월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국민의 73.3%가 위드 코로나 전환에 찬성했고, 이 중 48.8%는 ‘올해 내’로, 32.1%는 ‘지금 즉시’ 전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열에 일곱은 “위드 코로나 이후 경제 낙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0월7일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민 70%가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면역 형성 기간인 2주가 지나면 단계적 일상 회복을 시작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10월18일 방역 당국 브리핑을 통해서는 “기계적으로 2주가 지나야 가능하다는 원칙은 없다”며 조기 시행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10월15일 현행 사회적 거리 두기를 2주 연장하면서, 이르면 11월1일 방역체계를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전한 바 있다. 

정 청장은 10월20일 국감장에선 접종 완료율 70% 도달 시점을 두고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 초, 10월23일에서 25일 사이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70% 도달 후 면역 형성 기간 14일이 지난 11월7~9일쯤 위드 코로나 돌입이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가 방역체계 전환 시기와 로드맵을 논의하고 있어, 결정되면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점점 더 가시화하는 위드 코로나에 대해 경제계는 일제히 환영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0월12일 한국보다 먼저 일상 회복을 선언한 국가들 사례를 바탕으로 위드 코로나의 특징을 분석해 ‘W.I.T.H.’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일정 수준 이상 백신 접종률(Wide vaccine roll-out)’ ‘방역체계 전환(Intensive approach)’ ‘이동 시 백신여권 지참(Travel with Vaccine Passport)’ ‘경제 회복에 대한 높은 기대감(High expectation on economic recovery)’ 등이다. 

전경련은 국민 상당수가 위드 코로나 전환에 찬성하고 백신 접종률이 10월5일 기준 1차 77.5%, 2차 54.6%로 상승세에 있는 만큼 일상 회복 시점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우리 정부가 전 국민의 80%, 고령층의 90%가 접종을 완료하는 시점인 11월초에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을 환영한다”며 “위드 코로나 전환 시 경제의 빠른 회복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경제와 방역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방역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위드 코로나 이후 경제를 낙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자영업 회복’(55.8%)을 꼽았다. 이어 ‘내수 회복이 기업 매출 증가로 이어질 것’(17.9%), ‘관광·공연 활성화’(16.6%),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쓸 것 같아서’(6.1%) 등의 순이었다. 자영업 회복은 모든 연령대에서 응답률 50% 이상을 기록했다. 20~30대의 경우 다른 연령대와 달리 두 번째로 높은 응답률을 기록한 항목이 관광·공연 활성화였다. 

자영업 회복은 큰 기대만큼 우리 경제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당사자인 자영업자들의 반응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다. 아르바이트 플랫폼 알바몬이 최근 자영업자 323명에게 ‘위드 코로나에 대한 기대감이 있느냐’고 묻자 86.7%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 이유(복수응답)로는 ‘매출 회복’(76.4%), ‘방역조치(집합금지, 영업시간 제한 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35.7%), ‘감염 불안감 등 정신적 스트레스 감소’(24.3%), ‘아르바이트생 고용 시 어려움을 덜 겪을 것 같아서’(21.1%) 등이 언급됐다. 

그러나 기대감이 없다고 답한 13.3%의 자영업자는 ‘코로나 재확산·감염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서’(46.5%), ‘매출 회복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해서’(41.9%), ‘방역조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을 것 같아서’(27.9%), ‘이미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서’(20.9%)라고 비관의 근거를 설명했다. 

10월20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74.7% “집값 안 떨어질 것” 

이번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위드 코로나 이후 다가올 경제 상황을 비관하는 이유로 ‘코로나19 후유증이 너무 크다’(22.1%)는 응답이 ‘물가가 올라 가계 부담이 늘 것 같아서’(46.2%)란 응답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여겨지는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는 내년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으리란 전망이 우세했다. 74.7%가 더 오르거나(45.5%)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29,2%)이라고 응답했다. 가격 하락을 예상하는 응답은 18%밖에 되지 않았다. 

김성진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10월18일 한국주택협회와 건설주택포럼, 한국부동산산업학회가 개최한 ‘새 정부에 바란다’ 세미나에 참석해 “관치금융을 탈피해 차주(借主)의 상환 능력에 따른 자율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직접 규제 폐지, 주택분양보증기관 다양화, 디딤돌 대출 등 유한책임대출 확대, 가계대출 총량 규제 철폐 등을 정책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집값 안정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했지만, 그 효과가 미약함이 판명됐다”며 “가계부채 증가를 염려한 규제보다는 가계부채 내용을 파악해 외부 충격에 취약한 부분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