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보다 통합” 리더십으로 독일 최강국 반열 올린 메르켈
  • 김택환 경기대 특임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25 11:00
  • 호수 1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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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위대한 리더 갈망하는 우리 사회에 울림 줘
메르켈의 정치인생과 리더십, 그리고 그가 남긴 숙제

대한민국의 20대 대선 유력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도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제대로 준비된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20대층 무당파가 과반수에 이른다는 결과도 나왔다.

위대한 리더를 목말라 하는 우리 사회에서 16년 동안 깨끗한 리더십으로 독일을 ‘황금시대(Goldene Zeit)’로 이끈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대한 관심과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그가 어떤 정치 인생을 걸어왔고,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남긴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봤다.

ⓒEPA 연합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9월22일(현지시간) 베를린 총리관저에서 총선을 앞두 고 마지막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EPA 연합

공산주의에서 경험한 거짓과 부패가 청렴 정치의 원천

“헬무트 콜 총리가 묵인한 사건들은 기민당에 큰 피해를 입혔어요. 정치 비자금 스캔들은 콜 총리나 기민당에 큰 비극입니다. 이제 콜의 시대를 끝내고 미래로 갑시다.”

1999년 기민당이 정치 비자금 스캔들로 위기에 처하자 메르켈이 ‘정치적 아버지’로 불리던 콜 전 총리를 비판하는 글을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신문에 기고해 파란을 일으켰다. 기민당 일각에서 그를 향해 “친부 살인자”라고 비판했지만, 그는 부정부패와 싸우는 용기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민과 당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이듬해 그는 최초 중도보수 정당(CDU)의 여성 대표에 올랐다. 그리고 2005년 최연소이자 최초로 여성·동독·과학자 출신으로 최고 권좌인 총리에 취임했다.

메르켈이 부정부패에 단호하게 행동한 배경은 그의 인생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그해 구(舊)동독의 조그마한 지역 크비트초프로 이주했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메르켈은 거짓과 부정부패를 보면서 살았다. 구동독 언론들은 정권을 찬양하고 서독의 실상을 왜곡했으나, 손가락으로 햇빛을 가리는 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리학자로 살아가던 그에게 인생의 반전 기회가 찾아왔다. 1989년 구동독 시민들은 자유와 행복을 위한 반정부 투쟁과 엑소더스, 즉 서독으로의 대규모 탈출이 시작되었다. 당시 메르켈은 ‘민주혁명’이라는 정치단체의 대변인을 맡았다. 같은 해 구동독 땅에서 실시된 첫 민주선거에서 민주혁명당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0년 10월3일 통일된 땅에서 그는 목사의 딸답게 기독교민주당(CDU)에 입당해 의원에 당선되었다.

메르켈의 또 한 번의 인생 변화는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 총리를 만나면서다. 콜 총리는 앳된 그를 여성부 장관, 이어 환경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미래 리더십 수업이라고 볼 수 있다. 메르켈은 장관 임무를 잘 수행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메르켈은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는 담대함’을 보여주었다. 정치적 친부나 다름없는 콜의 탯줄을 끊고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갔다. 패거리 정치의 부정부패보다 나라와 국민을 먼저 챙기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 지도자로 우뚝 섰다.

메르켈에게 ‘무티’, 즉 엄마의 리더십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구동독 출신이자 여성인 그는 ‘마이너리티’라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었다. 통 큰 통합과 연대의 정치로 ‘코끼리 결혼식’으로 불리는 대연정, 즉 중도우파 기민기사당(CDU/CSU), 중도좌파 사민당(SPD)과 연합정부를 세 번, 12년 동안 꾸렸다. 정파보다도 중도 정치로 업적을 만들어간 것이다. 정치는 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듯 그는 ‘유럽병자’로 조롱받았던 독일을 유럽 최강국으로 발전시켰다. 개인소득이 약 5만 달러로 130% 이상 성장했고, G7 중 가장 행복한 국가로 도약했다.

메르켈 리더십의 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청렴’ ‘솔선수범’이다. 세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총리 재임 16년간 개인 아파트에서 출퇴근하고 주말이면 마트에서 일반 시민처럼 장을 보고 요리한다. 아파트 전기세와 수도세를 남편(대학교수)과 나누어 낸다. 특활비 자체가 없다. 깨끗한 정치로 부정부패를 유발하는 패거리 정치가 없어지자, 국민 전체가 혜택을 보게 된다. 16년 동안 메르켈은 자신은 물론 친인척 등 단 한 건의 스캔들도 없었다.

 

총리 16년간 개인 아파트에서 출퇴근…세금 한 푼도 허투루 안 써

메르켈이 남긴 유산과 과오에 대한 언론 특집도 뜨겁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스위스의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NZZ) 등 고급지들은 연일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 언론은 메르켈이 남긴 유산과 과오를 3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먼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점이다. 그 원인으로 메르켈이 과도하게 중도의 정치, 즉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보수의 정체성을 잃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독일 마인츠대 안드레아스 뢰더 교수(독일 현대사)는 “메르켈은 위기 관리자이지 비전과 전략을 가진 리더가 아니다”면서 “확장된 중도라는 스타일로 적당하게 변장했다”고 비판한다. NZZ의 얀닉 노크 칼럼니스트는 “메르켈이 사민당의 숄츠가 집권하는 데 부역했다”고 조롱한다. 왜냐하면 사민당과 녹색당의 의제인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탈핵, 동성결혼 허용, 최저임금 도입, 과도한 난민 수용 등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로 석유, 석탄값이 천정부지로 높아지면서 독일 기민당 아민 라셰트 후보는 총선에서 ‘다시 원전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설 정도였다. 메르켈의 기민당과 라셰트의 기민당의 원전에 대한 입장이 상반되는 혼선을 보여주었다. 이번 총선에서 기민당은 24.1%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받았다.

또 다른 비판은 독일 사회철학자인 막스 베버가 지적한 ‘신념’의 정치로 인한 문제다. 2015년 중동 난민을 과도하게 100만 명 받아들여 극우인 독일대안당(AFD)이 출현하는 숙주를 만들었다고 비판받는다. 통일 이후 상대적으로 낙후된 구동독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가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난민을 받아들였지만 ‘책임 정치’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좋았던 황금시대가 임기 말에 저물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이 4%에 이르고, 주택 월세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또한 미국 vs 중·러 패권전쟁에서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면서 무엇보다도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메르켈스럽다’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반도체를 비롯해 부품·소재·장비 조달이 어려워져 오펠 자동차 생산망이 멈춰서는 사태까지 나타났다. 민생이 가장 중요한 정치과제라는 것을 총선 결과가 보여주었다.

16년 장기집권 과정에 따른 비판 제기가 이 정도로 정리되는 지도자를 본 적이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메르켈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대장동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깨끗한 정치문화, 통합의 리더십,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리더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그런 리더를 만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른바 ‘빠’의 패거리 정치문화 때문이다. 수명을 다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기하고 독일처럼 책임지는 ‘총리민주주의’로 개헌을 준비할 때다. 위대한 우리 국민도 메르켈 같은 리더를 만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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