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유치로 ‘한국의 빌바오’ 꿈꾼다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7 15: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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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지역 주민과 문화가 상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 브랜드 창출”
몰락한 공업도시를 세계적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킨 스페인 구겐하임 미술관이 롤모델

경남 창원에는 100여 년 동안 마산회원구와 마산합포구를 가로지르는 철길이 있었다. 옛 마산 시민들의 추억과 애환이 서린 ‘임항선’이다. 산업화 시절 마산항으로 석탄이나 군수 물자 등을 실은 화물열차가 다녔고, 마산역이 생기기 전에는 시민들이 탄 여객열차도 다녔다.

반면에 기차가 수시로 다니다 보니 철길시장이 생겼을 뿐 주택과 인근 지역은 개발이 더뎌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도로 교통의 발달로 철길 활용도는 점차 낮아졌으며, 2007년 월평균 6~8회 화물열차가 운행되다 결국 이 철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창원시 제공
경남 창원시가 마산해양신도시에 유치를 추진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상상도ⓒ창원시 제공

임항선 그린웨이로 탄소중립·도시재생 실현

쓸모없던 폐철도 활용 방안을 고민하던 창원시는 전문가 등을 통해 ‘친환경 도시공간 조성사업’을 구상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창원 ‘임항선 그린웨이’다. 도시를 남북으로 나누며 단절시켰던 철길을 ‘연결 통로’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쾌적한 여가 공간, 운동과 휴식 장소로 돌려주는 사업이다. 

임항선 그린웨이는 마산합포구 옛 마산세관부터 마산회원구 석전동 개나리맨션까지 창원 도심을 가로지르는 4.6㎞ 구간이다. 창원시는 철길을 따라 수십만 그루의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었고, 산책로와 자전거길도 만들었다. LED 조명등이 설치된 ‘더(The) 밝은 빛거리’를 비롯해 바닥분수, 철길횡단데크, 운동기구 등 편의시설도 설치했다. 쓸모없어진 철로는 ‘그린’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작은 숲이 있는 공원이 됐다. 

쓸모없던 폐철도를 공원화한 후 도심의 녹지가 눈에 띄게 울창해졌다. 이런 성과에 창원시는 가음동 등 창원국가산업단지와 가까운 지역을 중심으로 내년까지 미세먼지를 차단하고 공해물질을 저감할 9만3000㎡의 미세먼지 차단숲을 만든다. 축구장 13개 면적과 맞먹는 녹지 공간과 쉼터를 새로 조성하는 셈이다. 회색빛 공업도시 이미지가 강했던 창원시가 불과 몇 년 사이 도심 속 그린환경을 확충하면서 친환경 녹색 생태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창원시에 따르면, 임항선 그린웨이를 통해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해마다 연인원 1000만 명을 넘는다. 임항선 그린웨이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인구가 창원시 전체의 24%인 24만 명에 달해 접근성도 높다. 사람이 몰리니 자연스럽게 도시재생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임항선 그린웨이를 따라 노후주택과 지저분한 공터가 깔끔한 외관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임항선 그린웨이 사업이 성과를 나타내자 창원시는 지난 4월 ‘2050 탄소중립 바로 지금, 창원부터’ 선포를 통해 비전의 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당시 창원시는 2019년 기준 896.2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 35%, 2040년 55% 감축하고, 2050년 말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2050 탄소중립은 제조업과 화석연료 사용 비중이 높은 우리에게 매우 도전적 과제지만, 창원의 지속 가능성과 창원의 미래 경쟁력 그리고 창원의 미래세대를 위해 꼭 가야 할 길”이라며 “자연 친화적 녹색 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시민들이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친환경 생태 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옛 건축물을 미래를 위한 자산으로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고민한 흔적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창원에는 근현대 역사문화자원을 보존한 옛 건축물에 젊은 층도 많이 찾는 이른바 ‘힙(hip·인기)한’ 곳이 있는데, ‘진해구 대천동 흑백다방’ ‘마산합포구 월남동 절충식 가옥’ 등이 대표적이다. 

창원시는 시간의 흔적과 기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 상징 공간을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핵심 축으로 만들고 있다. 근현대 역사문화자원 보존과 활용을 통해 지역 재생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2월 문화재청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 등록조사 후보 대상지로 선정된 진해구 일원이 그 예다. 

선정된 공간은 진해구 중원 로터리를 중심으로 대천동~창선동 일원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군항도시로 만들기 위해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계획도시로 평가된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구도심 도시 경관과 건축 유산도 보존돼 있어 활용 가치가 높다.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이 해군부대 정문 앞 북원 광장에 자리하고 있고,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노래한 백범 김구의 친필 시비 등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도 즐비하다. 

창원시는 오래된 건축물을 무조건 헐고 새로 짓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고 봤다. 오래된 기존 건축물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되면 내년부터 5년간 학술조사연구와 역사문화공간 내 토지 매입, 등록문화재 보수·복원, 역사경관 회복 등 보존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또 교육·전시·체험 공간 조성과 운영 콘텐츠 개발, 편의시설 확충 등 근대문화공간을 활용한 사업도 추진한다. 

허 시장은 “건축물 나이에 관계없이 좋은 건축물이나, 역사적·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건축물을 잘 보살피지 않으면 우리는 중요한 우리 생활 장소이며 역사 자료인 건축물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며 “지역 주민과 문화가 상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 브랜드 창출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원시 제공
옛 마산세관부터 석전동 개나리맨션까지 창원 도심을 가로지르는 4.6㎞ 구간의 임항선 그린웨이 모습ⓒ창원시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유치는 도시재생의 결정판

마산해양신도시에 유치할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은 창원시 도시재생의 결정판으로 꼽힌다. 창원시는 이를 유치하기 위해 3년 넘게 공을 들이고 있다. 시민 25만 명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전달하고, 범시민 운동본부까지 꾸려서 힘을 보태고 있다. 왜 유치하려는 것일까. 한국의 빌바오를 꿈꾸기 때문이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몰락한 공업도시 빌바오를 한 해 100만 명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건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1997년 빌바오시가 1억 유로(약 1367억원)를 들여 유치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개관 3년 만에 관광객 약 400만 명을 불러모아 5억 유로(약 6835억원) 상당의 경제적 효과를 도시에 안겼다. 환경오염이 극심했던 공업도시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시작으로 문화예술도시로 탈바꿈했다. 

창원시도 3400억원을 들여 만든 인공섬 마산해양신도시에 미술관을 유치해 도시를 살려내려는 것이다. 이미 3만3000㎡ 이상의 부지를 확보했다. 창원의 수소 에너지를 접목한 ‘탄소배출 제로 미술관’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허 시장은 “옛 마산 지역 곳곳에서 도시재생이 진행됐고,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혁신 거점 시설로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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