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 고된 일을 이제 누가 이어갈까
  •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5 17: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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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 대전시 유성구에 있는 배밭 마을. 하얀 배꽃이 온통 환하던 날이었다. 근처 북 만드는 장인의 공방에서 김관식 장인(대전시 무형문화재 제12호)을 처음 뵌 후, 초가을까지 다섯 번에 걸쳐 장인의 북 제작 과정을 집중해 볼 기회를 누렸다. 

그동안 다른 장인의 북 제작을 조사해본 적이 있고, 1970년대에 제작된 기록영상을 통해 어느 정도의 상식은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김관식 장인을 뵙고 나니 저절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시간에 쫓기지 말고 전 과정을 공들여 알아보되, 선입견 없이 보이는 대로 성실하게 ‘관찰’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3대째 내려온 가업을 태어나면서부터 익혔고, 바깥세상 일에 관심을 가져본 적 없이 오직 북 만드는 일만 해오신 분. 60대 중반임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북 제작의 전 과정을 다 감당해 내고 계신 현역 장인의 움직임에는 ‘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의 에너지가 그대로 응축돼 있었다.     

ⓒ송혜진 제공
ⓒ송혜진 제공

김관식 장인은 사실 ‘88서울올림픽’을 비롯한 국가의 큰 행사에 등장했던 대형 북 제작자로서 큰 명예를 얻은 분이다. 때문에 그동안 장인으로서의 면모보다는 ‘화제의 인물’로 접근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만든 북의 크기와 북소리가 울렸던 행사명, 행사에서 북을 잡은 이의 직분이 강조되기 일쑤여서, 정작 그가 일상에서 해내는 일의 전 과정에 얼마나 순도 높은 전통 기술과 완성도 높은 솜씨가 녹아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헤아려볼 겨를은 없었던 듯하다.

다행히 대전시에서 주관한 이번 조사를 통해 김관식의 모든 것을 살펴보면서, 그가 이어온 기술의 뚜렷한 전승 계보와 학습 과정, 성장 환경에서 축적된 기술 역량, 스스로 도전하면서 일궈온 새로운 영역들을 알 수 있었고, 이 내용들이 글과 사진, 영상으로 세세하게 기록·정리되는 중이다. 그러나 장인의 오랜 경험과 손에 익은 기술을 문장으로 펼쳐놓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찌어찌 문장과 말로 풀어낸다 하더라도 장인이 보유한 ‘무형의 가치’들을 다 끄집어내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며, 결국 장인의 솜씨는 사람으로 이어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짐승의 가죽을 구해 털을 뽑고, 기름기를 제거해 씻어 말리는 일은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었다. 고대로부터 권력 있고 돈 있는 이들이 가죽옷과 가죽 장비를 갖춰 멋 내고 호사하는 것은 즐겼음에도, 가죽에서 울려 나오는 활기차고 웅장한 소리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고 행차했음에도, 정작 이 일을 해내는 기술자들을 귀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현대에 들어 가죽으로 악기 만드는 일을 ‘북메우기’라는 명칭으로 문화재에 지정한 것은 일면 다행스러운 일이나, 현장에 와서 보니 이렇게 고되고 어려운 일들을 그 누가 ‘제대로’ 계속하려 할지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개인의 공방에서 옛 방식대로 가죽을 다루는 노고 대신 피혁공장에서 약품을 이용해 대량으로 임가공한 것을 구입해 쓰는 것이 편리하고, 타산에도 맞으니 굳이 이 일을 직접 하려는 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대수롭게 지켜보는 이가 없다면 전통 방식으로 가죽의 털을 깎고, 기름기를 제거하고, 가죽의 부위별 두께를 고려해 북의 재료를 선별하는 기술은 급속도로 소멸될지도 모르겠다. 좋은 북소리를 낼 수 있는 가죽은 일반 가죽을 처리하는 것과 달라야 하며, 장인이 수작업을 하는 동안 가죽의 특성을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장인의 믿음이 오래오래 빛을 발하며, 살아있는 문화재 기술로 잘 전승돼야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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