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기 우승’ 위업 도전하는 막내구단 KT의 포효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6 12: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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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시즌 보낸 KT, 한국시리즈 여정은 더 험난할 듯
코로나 여파로 플레이오프 일정 단축…정규리그 우승팀 어드밴티지 사라져

스포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스토리다. 스포츠 세상에서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가끔은 비현실적인 장면이 구현된다. 여기에 성장 스토리까지 가미되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매년 형들에게 뒤처졌던, 그래서 늘 기죽어 살았던 ‘만년 꼴찌’ 막내의 험난한 1위 등극기. 프로야구 10구단 KT 위즈가 2021 KBO리그 정규리그에서 써내려간 스토리였다. 과연 KT는 가을야구에서도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기록은 ‘그렇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10월31일 대구에서 열린 KT 위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2021 정규시즌 1위 결정 전에서 KT가 1대0으로 승리하며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짓자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강철매직’이 빚은 3년 만의 결실…극적인 1위 탈환

KT는 올 시즌 내내 상위권에 있었다. 조기 종료된 전반기를 1위로 마쳤고 후반기에도 10월22일까지 단 하루(8월12일)를 빼고 줄곧 1위를 내달렸다. 하지만 중심타자 강백호(22)가 도쿄올림픽 이후 더그아웃 껌씹기 논란 탓에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팀타율이 동반 하락했고, 탄탄한 선발을 앞세운 삼성 라이온즈가 거세게 추격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5연패에 빠지는 등 팀 최대 위기가 하필 시즌 막판 찾아왔다.

결국 정규리그 종료 1주일여를 앞둔 10월23일 삼성에 1위를 뺏기며 ‘용두사미’ 시즌이 될 뻔했지만 10월28일 ‘디펜딩 챔피언’ NC 다이노스와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1승1무를 거두며 삼성과 다시 동률이 됐다. 승·무·패가 모두 같아진 상황에서 KT와 삼성은 잔여 2경기에서도 똑같이 1승1패를 기록하며 동률(76승59패9무)로 한국시리즈 직행권을 타이브레이커(순위 결정전)까지 가져갔다.

1989년 정규시즌이 단일리그로 바뀐 뒤 처음으로 1위 결정전이 열린 10월의 마지막 날. KT는 윌리엄 쿠에바스의 놀라운 역투에 힘입어 1대0 짜릿한 승리를 맛봤다. 쿠에바스는 10월28일 NC전에서 108구를 던지고 이틀밖에 쉬지 못한 채 등판했지만, 7이닝(99구) 1피안타 무실점의 괴력을 선보였다. 두 팀의 유일한 득점인 1점은 그동안 부진했던 강백호가 기록한 타점이었다. 전무후무한 시즌 721번째 경기에서 일궈낸 마법 같은 KT의 우승이었다.

KT는 2012년 말 경기도·수원시와 함께 프로야구 창단을 발표했고, 전라북도와 손잡은 부영과의 10구단 창단 경쟁에서 승리하며 한국 야구 4번째 신생팀이 됐다. 인수 뒤 재창단까지 합하면 12번째 팀. 한국 야구 10구단 체제를 열어젖힌 KT는 2014년 퓨처스(2군)리그를 거쳐 2015년부터 1군 리그 막내로 합류했다. 하지만 전력적으로 한참 뒤지면서 3시즌 연속 꼴찌에 머물렀다. 2018 시즌에도 9위에 머물렀다.

조범현·김진욱에 이어 이강철이 3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뒤부터 KT는 서서히 꿈틀대기 시작했다. 3할대 승률에 머물렀던 조범현(0.368)·김진욱(0.382) 전임 감독과 달리 이강철 감독은 부임 첫해인 2019년 팀 승률을 5할로 끌어올리면서 KT를 가을야구와 근접한 6위까지 진격시켰다.

현역 시절 최고의 언더핸드 투수였던 이 감독은 마운드의 안정을 가져오면서 서서히 선수들의 패배의식을 지워갔다. 그리고 지난해 기어이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으며 창단 첫 가을야구를 안겼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 패하기는 했으나 더 높은 곳을 향한 희망을 갖기에 충분한 해였다.

이강철 감독은 올 시즌에도 타 팀에서 전력 외로 분류됐던 안영명·박시영 같은 투수를 회생시켰다. 외국인 투수 데스파이네와 쿠에바스의 기량 또한 끌어올렸다. ‘강철매직’으로 만년 하위권이던 KT는 중위권으로 도약했고,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으며 이제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대권을 노린다. 신생팀 KT의 1군 데뷔 7시즌 만의 정규리그 우승은 SK 와이번스(2000년 1군 데뷔, 2007년 우승)나 NC(2013년 1군 데뷔, 2020년 우승)보다 빠르다. 프로 원년(1982년) 팀인 롯데 자이언츠가 지금껏 단 한 번도 정규리그 우승을 못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KT의 행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삼성, 2경기만 치르고 한국시리즈 진출할 수도

이강철 감독은 정규리그 우승 직후 “잘 준비해서 구단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선수들도 비슷하다. KBO리그 최고참인 외야수 유한준(40)은 “선수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 멤버가 됐다. 정말 영광스럽다”고 했고, 내야수 박경수는 “정말 믿기지 않는다. 야구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라고 했다. 올 시즌 주장인 황재균은 “KT에 처음 와서 9위로 시작했는데 팀이 성장하는 것을 계속 목격한다. 정말 이 팀에 오길 잘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 감독과 선수들은 앞으로 4승만 거두면 프로야구 왕좌에 오른다. 역대 기록을 보면 정규리그 1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은 81.8%(33차례 중 27차례). 2001년 이후만 놓고 보면 2001년 두산(3위), 2015년 두산(3위), 2018년 SK(2위)를 제외하고 모두 정규리그 1위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승리했다. 지난해에도 NC가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변수가 있다. 7월 리그 내 코로나19 확진자 확산으로 예정보다 시즌을 1주일 더 쉬게 되면서 포스트시즌 일정이 빡빡해졌고, 결국 올해 가을야구는 한시적으로 짧게 치러진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모두 2선승제로 치러지는 것. 준플레이오프는 2선승제로 진행된 적이 많지만, 플레이오프가 2선승제로 열리는 것은 역대 최초다. 예년에는 5전3선승제, 혹은 7전4선승제로 치러졌다.

타이브레이커 때 야수 실책에서 비롯된 실점으로 아쉽게 6년 만의 정규리그 우승을 놓친 삼성의 경우 최소 2경기만 치르고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을 수 있다. 한국시리즈 직행 팀의 가장 큰 이점은 체력을 안배한 상황에서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온 팀을 상대하게 된다는 것인데 올해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 오히려 정규리그 종료 후 2주가 흐른 뒤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KT가 상대보다 실전 감각이 떨어져 경기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방망이 예열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규리그 종료 전부터 “올해는 정규리그 1, 2위 차이가 크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더군다나 한국시리즈 진출이 가장 유력한 삼성의 경우 투수력이 아주 좋다. 특히 선발진이 풍부해 2~3경기를 더 치르고 한국시리즈에 오른다고 해서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한국시리즈 진출만 17회에 달하는 풍부한 큰 경기 경험도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다.

11월14일부터 시작되는 한국시리즈는 추위 때문에 중립 지역인 고척 스카이돔에서 모두 치러진다. 마법 같은 시즌을 보낸 KT는 과연 마지막까지 마법봉을 휘두르며 우승을 자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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