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완벽한 현대화를 보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7 12: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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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뮤지컬 《하데스타운》이 순항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Orpheus)가 사랑하는 부인 에우리디케가 어느 날 독사에 물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됐다.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부인을 되찾아오기 위해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하데스(Hades)와 부인 페르세포네 앞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다. 이에 탄복한 하데스 부부는 에우리디케를 다시 데려가는 것을 허락한다.

다만 두 사람이 지상세계에 도달해 빛을 보기 전까지 오르페우스는 앞장서서 걸어야 하며, 만약 뒤따라가는 에우리디케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면 부인은 다시 지하세계에 영영 갇히게 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빛을 보기 직전에 뒤를 돌아보게 되고, 두 사람은 영영 이별하게 된다. 결국 오르페우스는 슬픔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클립서비스제공
토니어워즈 8관왕, 그래미어워즈 최고 뮤지컬 앨범상 등을 수상한 뮤지컬 《하데스타 운》이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한국어 공연으로 지난 9월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렸다.ⓒ클립서비스제공

오르페우스의 스토리가 왜 ‘하데스타운’일까

그리스 신화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로 손꼽히는 ‘오르페우스 신화’가 특별한 각색을 거친 후 뮤지컬로 만들어져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9월 개막해 올해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순항하고 있는 《하데스타운》이다. 2019년 브로드웨이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작품상, 음악상, 연출상, 무대디자인상을 포함해 8개 부문을 수상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번 한국 공연은 전 세계 최초의 라이선스 프로덕션이다.

그런데 제목이 왜 ‘오르페우스 스토리’가 아니라 지하세계의 권력자 하데스의 공간을 표현한 ‘하데스타운’일까. 이 뮤지컬의 배경은 현대 산업사회로 옮겨졌고 ‘하데스타운’은 광산 기업이 됐다. 그리고 하데스는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에서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고 지하광산을 채굴하는 기업주다.

반면 오르페우스는 차갑고 메말라버린 지상세계에 다시 봄을 느끼게 해주는 곡을 쓰려고 노력하는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허름한 술집에서 웨이터로도 일하고 있는 순수한 청년이다. 그는 가난에 찌들어 생존을 위해 떠돌다가 이 술집에 들러 차가워진 손발을 녹이기 위해 성냥불을 켜는 에우리디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다. 에우리디케는 신화에서는 뱀에 물려 지하세계로 보내졌던 수동적인 여성이었지만 뮤지컬에선 자신에게 다짜고짜 청혼하는 남자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 당찬 여성이다. “지금 쓰고 있는 곡이 아름다우니 어서 완성하라”는 격려까지 해준다. 그리고 그와의 사랑을 스스로 결정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 앞에 여전히 닥쳐 있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홀로 지하광산에 일자리를 찾으러 떠날 정도로 독립성과 책임감이 강한 캐릭터로 표현돼 있다.

제 발로 광산을 찾아온 에우리디케를 본 하데스는 만족해하며 집무실로 따로 불러 노동계약서를 쓰고, 이를 바깥에서 지켜보는 페르세포네는 질투심과 외로움을 느낀다. 광산 일을 시작한 에우리디케는 그곳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보상을 받는 일이 사실은 영혼까지 팔고 자아를 상실하는 것임을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뒤늦게 사랑하는 사람이 지하세계로 내려간 것을 알게 된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로 내려가지만 하데스는 그를 발견하고 제지한다.

여기서부터 이 뮤지컬의 진가가 더욱 드러난다. 앞부분에서는 두 선남선녀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성공한 중년 사업가 하데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동시대성을 가진 서사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데스는 가난을 증오한다. 가난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겠노라며 자신의 왕국 주변에 높은 담을 쌓으며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왜 벽을 세우는가? 자유롭기 위해서. 장벽이 적을 막아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그것이 벽을 세우는 이유. 가난은 우리의 적’이라는 노래는 마치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 건설 정책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트럼프-멜라니아의 윈도 부부처럼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역시 지독한 권태기를 겪고 있다.

우리 현실에서 성공한 사업가라고 해서 반드시 돈만 밝히고 가정은 소홀한 채 냉정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 뮤지컬에서 하데스는 한편으로 분명히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탐욕스러운 독불장군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반대의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된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다시 데려가겠다고 호소하며 그의 앞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부인과의 첫사랑과 열정적인 감정을 되살리게 되는 그의 모습에서 극한의 긴장감과 감동이 교차하며 최고의 명장면이 만들어진다.

이 작품은 한때 예술을 사랑했고 순수하게 사랑의 감정을 공유할 줄 알았던, 성공한 중년 사업가의 내면 깊숙이 묵혀 있었던 감성이 다시 예술을 통해 되살아나는 과정을 통해 빈부, 젊음과 늙음, 사랑과 권태, 이상과 현실, 예술과 자본이라는 상반된 가치 중 하나에만 소속된 채 다른 것은 미워하고 시기하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사가 얼마나 어리석고 불행한 일인가를 말해 준다.

극의 결말은 신화와 같은 새드엔딩이다. 집에 돌아가도 좋다는 하데스의 허락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결국 어둡고 먼 지하세계의 길을 뒤따라오던 에우리디케에 대한 불안과 의심을 버리지 못한 오르페우스는 지상세계에 발을 디디기 직전에 뒤를 돌아보게 되고, 에우리디케는 짧은 인사만을 남긴 채 지하세계로 다시 떨어진다. 이야기는 끝났고 인간은 우둔했다. 우리 인생은 사실 매번 실수와 잘못된 선택의 연속이다.

 

가상의 ‘하데스’와 현실의 ‘트럼프’ 오버랩

하지만 그동안 이 모든 상황을 해설하고 옆에서 지켜보았던 해설자 헤르메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우린 노래를 부르리라. 중요한 것은 결말을 알지만 이번엔 다르기를 기대하며 다시 노래 부르기를 시작하는 것. 내 친구에게 배운 교훈이기에”라고. 그리고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서 에우리디케는 술집에 나타나서 성냥을 켜고 오르페우스는 그 모습을 바라본다. 이번에도 첫눈에 바로 사랑에 빠진 채로.

작가이자 작곡가인 아나이스 미첼은 이 작품의 각색 의도를 “우리가 혼자라고 느낄 때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자, 파트너가 바로 뒤에 있을 때도 어둠 속을 혼자 걷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권력 구조의 통제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했다. 이야기 결말 이후의 에필로그 장면에서도 인간관계에서 거짓과 배신이 난무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을 믿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극 중에서 오르페우스가 부르는 음악은 신화의 설정에 부합하는 뛰어난 멜로디와 가창력으로 객석을 감동시킨다. 트롬본, 첼로, 바이올린, 드럼, 더블베이스, 기타, 피아노·아코디언으로 이루어진 7인조 라이브 밴드가 무대 위에 노출돼 있어 콘서트 같은 생동감도 느껴지는 그리스 신화의 완벽한 현대화 콘텐츠다. 공연은 내년 2월27일까지 역삼동 엘지아트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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