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파열음에 영(令) 안 서는 재계 저승사자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8 10:00
  • 호수 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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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징금 기준으로 행정소송 패소율 33%…재계, 공정위 조사 신뢰성에 의문 제기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 기업집단국을 정규 조직으로 승격했다. 이 부서는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를 감시하는 곳이다. 경제 민주화 바람을 타고 2017년 한시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성과가 적지 않았다. 하이트진로, 효성, 대림, 태광, 미래에셋, 금호아시아나, SPC 등 주요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적발하고 오너 일가와 경영진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기업집단국이 국내 기업들에 부과한 과징금 역시 해마다 높아졌다. 탄생 첫해인 2017년 24억원에서 지난해 1407억원으로 60배 가까이 증가했다. 기업집단국이 ‘재계의 저승사자’ 혹은 ‘경제 검찰’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재계는 기업집단국 설립 이후 바짝 긴장했다. 공정위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계열사끼리 합병해 내부거래를 낮추는 것은 기본이다. 일부 기업은 논란이 되는 회사를 아예 매각하거나, 총수나 오너 2세들의 지분을 빼는 등 기민하게 움직였다. 기업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최근 총수가 있는 54개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 2197곳을 조사한 결과, 내부거래 규모는 2019년 174조원에서 지난해 159조원으로 15조원(8.7%)이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집단의 매출이 1392조원에서 1358조원으로 2.5% 감소한 것과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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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계속된 재계와의 법적 분쟁으로 ‘재계 저승사자’인 공정위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 사진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연합뉴스

삼성웰스토리 2300억원 과징금 부과는 역대 최대 규모

올해 말에는 개정된 공정거래법도 시행된다. 지금까지는 ‘20·30룰’이 적용됐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의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비상장사 20% 이상)일 경우에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었다.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상장사와 비상장사에 관계없이 총수 일가 지분을 20%로 일원화했다. 또 이들 회사가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까지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경우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이 265곳에서 709곳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최근 대기업의 물류·IT서비스 회사의 거래현황을 공시하는 규정까지 새로 개정했다. 내년 5월1일부터 이 규정이 시행될 예정이다. 공정위 측은 “강제사항이 아니다. 지키지 않아도 불이익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의 생각은 다르다. “공정위는 자율을 강조하지만 이를 따르는 기업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냐”면서 “재계를 겨냥한 공정위의 길들이기나 군기잡기가 도를 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공정위가 지난 6월 삼성그룹의 단체급식 업체인 삼성웰스토리에 대해 23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역대 최대 규모다. 삼성웰스토리가 그동안 삼성전자 등 계열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부당이익을 챙겼고, 그만큼 중소 급식업체들의 기회를 박탈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여기에 맞서 삼성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임직원의 복리후생을 위한 경영활동이 부당지원으로 호도됐다”는 주장이다.

판단은 법원의 몫이 됐다. 다만 재계에서는 삼성웰스토리에 대한 공정위의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과가 일종의 “본보기 아니겠냐”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임원은 “국내 단체급식 시장의 80%를 이미 삼성웰스토리와 아워홈, CJ프레시웨이 등 상위 5개사가 장악하고 있다. 대기업 급식을 외부에 개방하면 중소 업체들이 혜택을 본다는 공정위의 판단은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발상”이라면서 “업계 1위인 삼성웰스토리를 압박해 나머지 업체들을 줄 세우려는 공정위의 노림수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정위는 최근 조사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적지 않은 역풍을 맞았다. 공정거래백서에 따르면 2015~19년 공정위의 제재조치에 반발해 기업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건수는 모두 380건이다. 이 중 94건(24.7%)에서 공정위가 패소(일부패소 포함)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행정소송 패소로 과징금을 돌려준 규모 역시 1조원에 육박한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는 2016~20년 행정소송 패소 등에 따라 과징금 9908억원을 환급했다. 같은 기간 과징금 수납액(2조459억원)의 48%를 기업에 다시 돌려준 것이다. 공정위 측은 “해당 기업에 3205억원의 과징금을 재부과한 만큼 48% 환급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런 주장을 감안해도 환급률이 33%에 이른다는 점에서 곱지 않은 시각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 측 “‘기울어진 운동장’ 말도 안 돼”

공정위도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하다. 공정위는 홈페이지를 통해 그동안 언론을 통해 제기된 지적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공정위 측은 “일부패소를 일부승소 비율(67건)로 판단할 경우 공정위의 승소 비율은 353건(92.8%)에 이른다”면서 “공정위의 조사와 심의 기능은 엄격하게 분리돼 있는 만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일부의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공정위는 이어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의 지분 매각을 강제하거나 계열사 간 내부거래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면서 “시장의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는 거래만 제한하고 있다. 기업 혼선이 없도록 개정법 시행 전에 구체적 사례를 담은 별도 심사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우려가 나온다. 최근 계속된 재계와의 법정 분쟁으로 공정위 조사의 신뢰성에 금이 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미 재계에는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면 일단 소송부터 하고 본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현재도 하림과 SPC, 네이버, 롯데마트 등이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미래통합당 의원실의 2019년 자료에 따르면 기업들이 과징금 부과에 대해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한 비율은 93.64%(액수 기준)에 이른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최근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공정위 규제를 지켜보면서 답답한 점이 많다”면서 “제대로 된 실태조사 없이 이중 규제를 할 경우 자칫 산업의 혁신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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