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화려한 ‘미디어 아트’ 중심지 된 이유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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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아르떼뮤지엄’ 인기 끌자, 전국 지자체 전시관 투자 경쟁
과열되는 규모 경쟁과 한정된 콘텐츠는 풀어야 할 과제
이머시브(immersive, 몰입형) 아트는 관람객이 작품 안에 직접 들어가 오감으로 경험하는 예술장르다. 사진은 아르떼뮤지엄 제주의 전시 중 하나인 'Beach Aurora'. ⓒ김지나
이머시브(immersive, 몰입형) 아트는 관람객이 작품 안에 직접 들어가 오감으로 경험하는 예술장르다. 사진은 아르떼뮤지엄 제주의 전시 중 하나인 'Beach Aurora' ⓒ김지나

이머시브(immersive, 몰입형) 아트가 대세다. 글자 그대로 관객이 작품 속으로 온전히 몰입해 들어가 감상하는 미술 전시를 뜻한다. 보통 회화작품을 미술관의 벽과 바닥, 기둥에 프로젝션 맵핑(대상물 표면에 영상을 투사하는 기술)으로 재현해, 사람들이 전시실에서 마치 작품 안에 직접 들어온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작품의 주제나 의미를 설명하는 일은 불필요하다. 화가들이 한 폭의 캔버스에 담기 위해 포착했던 역동적인 찰나의 순간이 이머시브 아트 전시관에서는 3차원의 공간으로 되살아난다. 관객들은 오감으로 와 닿는 작품을 그저 느끼기만 하면 된다. 어렵지 않고, 쉬이 감동적이다.

지난해 9월, 우리나라 최대 규모라는 이머시브 미디어아트 전시관 ‘아르떼뮤지엄’이 제주도에 문을 열었다. 이곳을 만든 것은 여느 문화예술기관이 아니라 디스트릭트홀딩스란 디지털 콘텐츠 디자인 회사였다. 삼성역 코엑스의 대형 전광판에 <웨이브(Wave)>란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던 바로 그 기업이다. 이 작업으로 세계적으로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이후, 본격적으로 이머시트 아트 전용 전시관을 기획했고 그 첫 번째 대상지로 제주도가 낙점된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몰입형 콘텐츠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 정도 규모의 부지를 다른 지역의 도심에서는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의 아르떼뮤지엄이 된 장소는 원래 스피커 공장이었다. 공장 건물이었던 덕분에 내부에 기둥이 거의 없어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서는 안성맞춤인 조건이 됐다. 그리고 많은 기술적 노력이 들어가는 이머시브 아트의 특성상 작품을 자주 업데이트할 수 없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였다. 제주도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2~3년에 한 번씩 찾는 곳이기 때문에 그 주기가 작품 교체 시기와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빛의 벙커'는 과거 국가기간 통신시설을 활용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이다. ⓒ김지나
'빛의 벙커'는 과거 국가기간 통신시설을 활용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이다. ⓒ김지나

어두운 벙커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아트 축제

한편, 아르떼뮤지엄 제주가 ‘최대’ 규모일지 몰라도 ‘최초’는 아니다. 그에 앞서 2018년 11월에 제주 성산읍에 개관한 ‘빛의 벙커’가 있다. 이곳의 탄생은 과거 국가기간 통신망 운용을 위해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곳이란 역사에서 비롯된다. 약 900평 규모의 이 벙커는 가로 폭이 길고 천장이 높아 이머시브 아트 전시관으로서 제격이었으며 방음시설까지 완벽했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게 숨겨진 벙커시설이었기에 내부에 들어섰을 때 화려한 미디어아트가 펼쳐지는 반전 효과가 아르떼뮤지엄보다 훨씬 강렬하기도 했다.

빛의 벙커와 아르떼뮤지엄의 연이은 성공 때문인지, 이후에도 제주도에는 이머시브 아트 전시공간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서귀포시 제주신화월드 내에도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공간이 있어 여러 가지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고, 지난 6월에는 제주 시내에 ‘노형슈퍼마켙’이란 새로운 미디어아트 전시관이 개관했다. 심지어 제주현대미술관에서도 소장품들을 몰입형 콘텐츠로 연출한 전시를 선보였다. 이머시브 아트 전시관들은 하나같이 비싼 입장료를 자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빛의 벙커를 다녀온 사람들이 아르떼뮤지엄을 찾고, 새로운 이머시브 아트 전시가 열리면 또 찾기를 반복한다.

'빛의 벙커'는 가로 100m, 높이 5.5m의 규모로, 공간의 깊이감을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다. ⓒ김지나
'빛의 벙커'는 가로 100m, 높이 5.5m의 규모로, 공간의 깊이감을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다. ⓒ김지나

유휴공간의 창의적 활용…작품 다양성은 아직

아르떼뮤지엄은 올해 8월 여수에 두 번째 전시관을 열었으며 12월 강릉에 세 번째 전시관 오픈을 앞두고 있다. 특히 여수관의 경우 애물단지로 남아 있던 엑스포 전시관을 활용했는데, 광활하기만 하고 아무 특징 없는 공간에 딱 적합한 솔루션이었다. 반면 강릉 아르떼뮤지엄은 경포호 일대의 시유지에 건물을 새로 짓는다는 모양이다. 이머시브 아트가 화제를 일으키며 지역 관광을 활성화하는 효과까지 나타나자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규모는 제주관보다 넓게 계획돼 있다. 처음에는 몰입형 미디어아트란 예술 장르가 거대한 유휴공간의 물리적 특징과 잘 맞아 떨어져 창의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점차 크기 경쟁으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는 이유다. 빛의 벙커도 이머시브 아트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어느새 아르떼뮤지엄의 스케일에 적응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실망스러웠단 감상평이 나오고 있었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콘텐츠의 다양성 문제다. 현재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들의 콘텐츠는 대동소이하다. 고흐, 르누아르, 클림트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색을 화려하게 쓰는 화가의 작품들이 주로 활용된다. 디스트릭트홀딩스와 같이 이머시브 아트에 선제적으로 뛰어든 일부 크리에이터 그룹의 작품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도 보인다. 게다가 아직 이머시브 아트는 내용보다 기술과 자본이 관건인 영역이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이 ‘흥행보증 수표’로서 우후죽순 생겨나기 전에, 그 지역이나 장소만의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함께 기획할 수 있는 여유와 지혜가 발휘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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