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예술과 철학으로 끌어올리다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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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ㅣ임지호 지음ㅣ궁편책 펴냄ㅣ344쪽ㅣ28,000원

오래 전 각자 먹고 싶은 만큼 음식을 푸는 자율식당에서 우연히 우편배달부와 마주 앉아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의 식판에는 평균보다 세 배 이상 음식이 담겼다. 민망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겸연쩍게 답을 했다. 자기는 밥심으로 일 한다고. 그 즈음 도올 김용옥 선생의 교육방송 철학 강의를 듣는데 ‘인간은 머리보다 배가 중요하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먹고 죽은 귀신이 혈색도 좋다’더니 어렵던 철학이 새롭게 다가왔다.

요리책 소개는 10년 전 조용옥의 《밥상을 차리는 작은 지혜-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일러준 100가지 요리법》(나남 출판사) 이후 두 번째다. 요리책 소개를 피했던 이유는 우편배달부처럼 밥심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양념장 한 스푼, 계란 흰자 2개, 청보리 순 가루 세 스푼’은 사치이자 다른 세계 이야기라는 생각 때문이다. 오래도록 변함없을 생각이다. 10년 만에 요리책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를 소개하는 까닭은 이 책이 ‘요리가 어떻게 예술이 되고, 철학이 되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에 등장하는 요리는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다. 이 책에서 처음 본 ‘감자채 튀김’은 실처럼 얇게 감자를 채 썰어 튀기고 공갈빵처럼 속을 훤히 비운 채 동그랗게 말아낸다. 파삭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부서지는 식감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감자채 튀김은 일반적인 튀김온도인 180도 고온이 아니라 140도에서 살짝 튀겨내는 것이 핵심이다. 요리에 따라 끓는 기름의 온도가 달리 적용된다는 것,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전자기기에 노출이 심한 아이들에게 좋은, 바삭한 당근 과자에 토마토 소스를 바를 때는 (소스의) 성분 보존을 위해 (금속 도구가 아닌) 당근을 길게 잘라 숟가락처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노인을 위한 간식은 있다. 노인의 입에는 지난했던 세월이 빚은 쓴맛이 서려있다. 고구마의 달콤함이 이 쓴맛을 달래준다. 위를 거쳐 천천히 장으로 내려간 고구마는 노인의 편안한 소화를 돕는다. ‘고구마 과자’는 이 책에서 유일하게 기름에 튀기지 않는 간식이다. 녹말이 상하는 여름 연근은 버리고 대신 가을에 햇연근이 나오면 원기회복을 돕는 연근 죽과 과자를 만들어도 좋겠다.

책의 시작과 끝이 갖은 식물로 빚는 요리므로 아무렇게나 펼쳐서 나온 172페이지 ‘미나리 장떡, 주스’를 보자. 《약이 되는 산나물 들나물》(농민신문사 출판) 저자 오현식은 ‘미나리 4덕’을 칭송한다. 미나리는 진흙탕에서 때 묻지 않고 자라는 심지(心志), 응달에서 버티는 생명력, 가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강인함, 칼바람과 대결하는 결기(決起)를 가졌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들인 미나리의 이 깊은 ‘근성’이 해독력을 높인다. 임지호의 미나리 장떡은 색깔이 검다. 검은색은 죽음과 용기를 상징한다. 삶의 균형을 잃고 방황할 때 제자리를 찾아주는 떡이다.

마지막 요리는 시간의 여행 속에서 힘겹게 올라갈 독자를 응원하고자 준비한 ‘사다리 도시락’이다. 아홉 칸으로 나뉜 나무 도시락에 담긴 백미밥, 흑미밥, 염소 수육, 능성어 구이, 호박 육전, 두부 조림, 눈개승마 나물, 고추 튀김, 마늘장아찌, 된장과 풋고추가 들어찼는데 사진만 보고도 먹고 싶어 환장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도시락을 먹을 수 없다. 자연요리연구 거장은 직전에 만든 ‘배도시락’을 타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버렸다.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는 1년 전에 나왔고 이미 베스트셀러다. 아직 이 책이 있는지를 모르는 요리 애호가들을 위해 썼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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