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경쟁 최전선이 된 반도체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0 14:00
  • 호수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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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시장 패권은 누가 잡을까

#최근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에 공급망 관련 정보의 제출을 요구했다.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해 자동차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게 그 명분이었다. 미국 상무부가 관보에 밝힌 요구사항에는 각 반도체 회사의 주요 고객사와 고객사별 매출 비중, 주요 반도체 칩 기술 단계는 물론 최다 판매 제품의 생산 소요 기간, 생산시설 확충 계획도 포함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1월9일 재고와 주문, 판매량 등의 정보를 제출했다고 한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인텔이 중국 내 생산시설을 늘리려던 계획이 취소됐다. 인텔은 반도체 공급 부족 심화에 따라 중국 청두 공장에서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생산을 늘리려 했으나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인텔은 결국 다른 방법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한다. 백악관은 아예 반도체 기업의 해외투자 심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AP 연합
2015년 9월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열린 입국식에서 레드카펫을 걷고 있다.ⓒAP 연합

중국 반도체 시장 견제하는 미국 

모두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 작업에 따라 발생한 일들이다. 현재 반도체산업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펼쳐지고 있는 패권경쟁 최전선에 있다. 지난 2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를 포함한 4대 핵심 제품의 공급망을 100일간 조사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미국 반도체산업의 자립을 강조했다. 미국 의회는 올해 1월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켜 반도체 연구·개발과 투자에 정부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사실 반도체는 단순한 전자부품이 아니라 국가안보를 좌우하는 대표적인 전략자산이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기술들인 5G,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슈퍼컴퓨터 등 어느 분야든 반도체 기술력이 필요하다. 휴대전화나 노트북, 냉장고, 자동차 등 필수 소비재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금융, 우주항공과 첨단무기 등에도 핵심 부품으로 쓰인다. 

상대방의 생명줄을 잡을 수 있는 이른바 초크포인트(choke point·전략적 관문)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불만 대상은 반도체의 상호의존적인 글로벌 공급망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생산비중은 불과 12%다. 반도체는 크게 설계와 제조, 그리고 후공정 단계를 거친다. 후공정 단계에는 조립과 테스트, 패키징이 있다. 원천기술이 있는 미국은 주로 설계를 맡고, 제조는 대만과 한국, 후공정은 대만과 중국이 주도한다. 

마이크론의 경우, 미국 본토에 연구·개발 시설을 두고 생산기지는 대만, 싱가포르, 일본에 두는 식이다. 반도체의 70% 이상을 동아시아에서 생산한다. 2019년 기준으로 대만이 20%로 가장 앞서고, 한국 19%, 일본 17%, 중국 16% 순이다. 지금 구조에서는 어느 나라도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후공정까지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완성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올해 6월 발표한 반도체 공급망 재편 보고서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내에 일관생산 체제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본다면 동아시아에 몰려 있는 생산기지는 불안할 수 있다. 대만은 중국 본토와 불과 해상 170km 거리다. 

이미 미국 정부는 반도체 굴기를 꿈꾸는 중국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미국 반도체 기술이 10% 이상 들어간 소재와 부품, 그리고 장비와 제품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미국 기술기업에 대한 합병과 인수, 반도체 생산설비의 수출도 막고 있다. 미국의 제재가 중국에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중국 정부의 당초 목표는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로 높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5년 13%였던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20년 말에도 15.9% 수준에 불과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다고 해서 세계의 반도체 공급망이 미국이 바라는 대로 곧 바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중국이 수입하는 반도체의 55%는 다시 수출품에 부품으로 들어간다. 중국의 반도체 부족은 자칫 미국의 공산품 부족으로 이어진다. 미국이 완벽히 중국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끊을 수는 없다. 

미국 기업의 중국 반도체산업 투자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미국에 있는 기업과 투자자들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반도체산업에 참여한 투자는 58건에 달하며 이는 직전 4년간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세계 반도체 생산물량의 60%를 소비하는 중국 시장을 무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미국도 말이 그렇지 무한정 기업에 보조금을 주거나 동맹국에 압력을 넣어 억지로 미국 내 생산시설을 늘리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계획은 신뢰할 수 있는 해외 공급처를 확보하고, 미국 내 생산시설을 조금 늘리는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패권경쟁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단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늦어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 적어도 당분간 제조 역량에서 중국 기업들이 한국을 추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력을 견제하는 미국의 압력은 부담스럽다. 삼성전자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은 41%,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다. SK하이닉스는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가깝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위한 미국의 조치는 계속될 것이다. 당연히 중국의 반발도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중국과의 관계는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정책에 부응하기도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줄타기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최강자라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시장 주력인 D램에서는 70%, 전원이 끊어져도 데이터를 보관할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인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한국이 필요하다. 물론 메모리에 치우친 구조는 아쉬운 부분이다. 정작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비메모리 시장이기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는 27%,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비메모리는 73%를 차지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우위는 유지하면서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사실상 한국 경제는 이미 성장이 멈춘 상태다. 반도체가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로 지난 2017년부터 수출 증가의 대부분은 반도체 덕분이었다. 반도체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감안한다면 정부의 지원은 아쉬운 측면이 있다. 지난 2015년부터 10년간 중국 정부는 우리 돈으로 약 170조원을 반도체산업에 지원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지원 규모도 우리 돈으로 60조원에 가깝다. 반면, 우리 정부가 2029년까지 차세대 시스템 반도체 연구·개발에 지원하겠다는 자금 규모는 2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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