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풍 따라 ‘아름다운 이별’ 선택하는 오너 일가들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3 10:00
  • 호수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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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떠난 박용만…경영권 승계의 빛과 그림자 다시 부각

‘아름다운 이별’, 즉 평화로운 경영권 승계 구도를 택한 오너 일가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계기는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의 ‘독립 선언’이다. 지난 8월 두산인프라코어가 현대중공업에 인수된 이후 박 전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근 마지막 남은 두산경영연구원 회장직까지 내려놓으면서 그룹을 완전히 떠났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박용만, ‘형제 경영’ 가풍 지켰다” 

박 전 회장은 “연초 공언한 대로 그룹의 모든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실무를 떠난 지는 오래됐고, 상징적 존재로 있던 자리까지 모두 떠난다”고 밝혔다. 두산가 4세인 박 전 회장의 두 아들도 두산그룹의 모든 직책을 사임하면서 독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안팎에서 박 전 회장은 ‘가풍을 지켰다’고 평가받는다.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아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이 두산그룹에서 모든 직을 사임하고, 독립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방계가 됐다”며 “형제 경영을 중요시하는 두산그룹 가풍에 따라 2016년 박 전 회장은 자신의 자식이 아닌 조카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총수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창업주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친족과 통합 상태를 유지하거나, 아무런 잡음 없이 계열 분리에 성공한 대기업도 존재한다. SK그룹과 LG그룹이 대표적이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시사저널 박은숙

SK를 창업한 고 최종건 회장은 1973년 11월 48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다. 이어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이후 최종현 회장은 SK에너지 및 SK텔레콤을 일구며 그룹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어 1998년 최종현 회장은 경영권을 아들인 최태원 회장에게 승계한다. 

당시 ‘사촌의 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SK가는 화합을 택했다. 창업자의 장남인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을 비롯해 5명의 사촌형제는 가족회의를 통해 최태원 회장을 차기 총수로 추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최태원 회장이 외환위기(IMF) 속에서 SK를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도 사촌형제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지난 20년 동안 최태원 회장 체제에서 SK는 SK하이닉스를 인수·합병하는 등 더 큰 도약을 이뤄냈다. 아울러 지난해 최태원 회장은 SK 주식 329만 주를 사촌들에게 증여하면서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LG가는 형제의 난과 관련해선 무풍지대다. 유교적 가풍이 강해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LG는 1970년 2대 고 구자경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에 오를 때부터 장자 승계 원칙을 확고히 했다. 

SK가 형제 경영진이 2018년 11월12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 출전한 SK 와이번스를 응원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 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SK그룹 제공

경영권 승계 잡음 없는 SK·LG

1969년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이 별세했을 때 동생이자 동업자인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은 장조카인 구자경 당시 금성사 부사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경영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20여 년 뒤인 1995년 취임한 3세 구본무 회장은 물론 4세 구광모 회장 역시 집안의 ‘장자’라는 이유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이런 가풍으로 LG가는 계열 분리 과정에서도 잡음이 없었다. 선대 회장부터 57년간 동업한 LG그룹과 GS그룹은 2004년 성공적으로 분사했다. 재계에서는 더없이 평화적인 결별이라고 치켜세웠다. LG 경영에 참여했던 친인척들도 차례로 아워홈(2000년), LS그룹(2003년), LG패션(2007년) 등으로 순조롭게 독립했다. 

국내 재벌가 승계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이별만 있었던 건 아니다. 사실 과거를 돌아볼 때 재벌가의 경영권 승계 다툼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었던 경우가 더 많다. 선대의 천문학적인 유산을 놓고 형제간 골육상쟁의 역사가 반복됐다. 

두산그룹 역시 전쟁사가 있다. 두산이 박승직 창업자에 이어 본격적인 기업의 틀을 갖춘 것은 2세 박두병 초대 회장에 이르러서다. 박 초대 회장이 타계한 이후 그의 아들들인 고 박용곤 회장(1남)부터 고 박용오(2남)·박용성(3남)·박용현(4남)·박용만(5남) 회장이 각각 차례로 총수직을 맡아왔다. 6남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은 일찌감치 독립했다. 

2005년 장남인 박용곤 전 회장은 차남인 박용오 전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셋째 박용성 전 회장에게 넘길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박용오 전 회장은 돌연 ‘동생들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은 검찰의 개입까지 불렀다. 박용오 전 회장은 동생들이 경영 과정에서 편법을 벌인 사실을 검찰에 알렸다. 전방위적인 수사가 시작되면서 두산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검찰은 두산이 10여 년간 326억원의 비자금을 횡령했고, 이 돈을 총수 일가가 사용한 것을 밝혀냈다. 

이후 박용오 전 회장은 두산가에서 제명됐다. 두산가에서 ‘공동소유 공동경영’ 전통을 깨뜨렸다는 이유로 그를 퇴출시킨 것이다. 떨어져 나온 박용오 전 회장은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그는 2009년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왼쪽),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시사저널 임준선·연합뉴스

재벌가에서 반복된 ‘형제의 난’

삼성그룹, 현대그룹, 한진그룹, 대림그룹, 효성그룹 등에선 최소 한 번 이상 경영권이나 재산을 놓고 분쟁이 있었다. 국내 주요 재벌가 중에서 형제의 난이 일어나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다. 

한때 ‘형제 경영의 모범’이라 불렸던 금호가도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형제가 철천지원수가 됐다. 금호그룹은 형제간 이른바 ‘65세 룰’을 바탕으로 그룹 회장을 결정해 왔다. 박인천 창업주의 장남인 박성용 회장은 65세에 차남인 고 박정구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줬고, 이후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금호가의 균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삼구 전 회장과 넷째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벌였다. 당시 박찬구 회장은 인수를 반대했지만, 박삼구 회장은 인수를 강행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박찬구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폭 늘리며 계열 분리를 추진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이후 박삼구 회장은 ‘형제 경영 원칙을 깼다’며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스스로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1년 박찬구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형제간 갈등은 더 격화됐다. 박찬구 회장은 검찰 수사 배후로 박삼구 전 회장을 지목하며, 배임으로 맞고소하는 등 치열한 소송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 간의 크고 작은 법정 다툼과 이의 신청 등은 30여 건에 달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SDJ 회장(오른쪽)이 2020년 1월22일 새벽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서 열린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발인에 참석한 모습ⓒ시사저널 최준필

롯데그룹도 형제의 난으로 오랫동안 홍역을 치렀다. 고 신격호 명예회장이 생전에 후계 구도를 정리할 시기를 놓치면서 환갑이 된 두 아들이 경영권 다툼을 벌인 것이다. 이전까지는 신동주·신동빈 형제 중 어느 한쪽으로 후계 구도가 쏠리지 않도록 양쪽 지분이 기계적으로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힘의 균형이 깨졌다. 2015년 1월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롯데그룹과 관련된 모든 직위에서 해임됐다. 같은 해 신 명예회장도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신 명예회장은 국내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퇴임하면서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신동주 회장은 해임된 후에도 계속 경영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신동주 회장은 광윤사(고준샤·光潤社) 최대주주 신분으로 일본 롯데홀딩스의 모든 주주총회에 참여해 왔다. 그는 7차례에 걸친 주총에서 직위 회복을 비롯해 동생 신동빈 회장 해임, 원하는 인물의 이사 선임 등을 요구했다.  

해당 오너 일가들에서 다툼이 발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총수가 절대 권한을 행사하는 이른바 ‘황제 경영’으로 상징되는 후진적 지배구조가 원흉이었다고 지적한다. 

“경영권 사유화는 필연적으로 다툼 야기” 

‘경영 승계 역사와 상속세에 관한 연구’ 논문은 “기업을 경영자, 종업원,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합의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것’ 혹은 ‘내 가족의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경영 승계 과정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재벌 총수들의 경영권 분쟁을 ‘형제의 난’이라고 비유하는 것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이다. 형제의 난이라는 표현은 조선시대 왕권 세습을 둘러싸고 ‘왕자들끼리의 싸움’에서 유래됐다. 국내 재벌들에게 기업은 왕조와 비슷해 경영권이 세습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시사저널 최준필

두산 차기 수장은 누구  
형제 경영에서 사촌 경영으로 안착하나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일가가 떠난 두산의 향후 승계 구도가 주목받고 있다. 박정원 회장의 임기도 내년이면 사실상 만료된다. 경영권 승계 시기와 새로운 회장 선임 시기가 머지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과거 3세대 회장단의 임기가 약 4~5년이었던 걸 감안하면, 차기 후계자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박두병 초대회장의 다섯 아들이 각각 차례로 회장직을 맡아왔다. 이 때문에 4세 경영도 마찬가지로 3세대 각 회장들의 장남이 차례로 승계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두산 후계 구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4세 사촌 경영의 첫 승계이기 때문에 3세 형제 경영 승계 방식과 다를 수 있어서다. 

기존에 예상된 순서대로라면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회장이 유력한 회장 후보 중 한 명이다. 1968년생인 박진원 부회장은 두산음료 사원으로 입사해 박용만 전 회장이 만든 두산그룹의 핵심 전략수립 부서 트라이씨(Tri-C)에 3년간 몸담았던 전략통으로 꼽힌다. 

박정원 회장의 동생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1965년생인 박지원 회장은 2001년 두산그룹이 인수한 한국중공업의 민영화에 앞장선 인물 중 하나다. 현재로선 그룹 내 박정원 회장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자 승계의 예상을 깨고 박지원 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성공할 경우, 그다음 경영권 승계 구도는 더욱 예상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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