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독트린’으로 반전 노린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19 13:00
  • 호수 167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선 D-100] 누가 대권주자를 움직이는가
李, 정성호·위성락 앞세워 실용외교 노선+성장 정책 추구

역사는 증명한다. 1인자를 만드는 데는 참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번 대통령선거만큼 ‘킹메이커’라 불리는 참모의 역할이 중요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대선후보로 뽑힌 이재명과 윤석열은 모두 중앙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제1, 2당의 두 유력 후보가 국회 경험이 전무한 ‘0선’ 인물로 채워진 건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정치 아웃사이더’들을 닳고 닳은 국회의원들과 정당세력을 이끄는 리더로 변모시키는 역할을 참모가 해야 한다.
 
참모가 왜 중요할까.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특히 대선에선 인물이 곧 비전이자 노선이고 정책이다. 대선후보 한 사람에게 이 모든 게 녹아있다. 녹아있어야 한다. 문제는 후보도 사람인지라 모든 게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참모가 바로 그 약점을 채운다. 뛰어난 전략과 구상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도 한다. ‘0선=정치 쇄신, 다선=고인 물’이라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면 0선이란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위기의 순간 쏟아지는 수만 가지 조언과 질책 속에 ‘소음’과 ‘신호’를 구분해 내야 하는 것도 참모의 역할이다. 이렇듯 참모를 보면 대선후보가 보인다. 그리고 대선 캠프의 전략이 보인다.

킹메이커라는 말은 사실 음습하다. 주권자가 정치의 중심이 돼야 하는 시민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흐름을 담아낼 참모를 발굴해 중용하는 것은 대선후보의 몫이다. 이번 대선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자 승부를 가를 핵심 변수다. 대선이 이제 1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권주자들이 ‘누구와 함께하는가’는 의외로 유권자에게 많은 답을 준다. 시사저널이 ‘대선 D-100’을 맞아 참모의 시간을 톺아보는 이유다. 대권주자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참모는 누구일까. 누가 대선후보 이재명과 윤석열을 움직이는가.

ⓒ연합뉴스

참모란 무엇인가. 모(謀)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모는 뭔가. 사전적 의미는 지략, 계략, 계책, 본보기, 도모하다, 모색하다, 묻다, 살피다, 의논하다, 상의하다, 속이다 등 다양하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의 저자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참모 리더십을 ‘보스보다 먼저 생각하고, 리더보다 먼저 내다보고, 상사보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리더십 있는 참모가 리더를 옳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유도한다. 그럼으로써 전체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승리를 일궈내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역대 대통령에게는 모두 이런 리더십을 발휘한 참모들이 있었다. 

참모에도 유형이 있다. 이 수석은 저서에서 참모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경세가(經世家)’와 ‘전략가’다. 경세가는 말 그대로 세상과 시대를 경영하는 사람이다. 전략가는 전체 흐름을 조절·운영하는 사람이다. 경세가의 전형은 조선왕조 500년 기틀을 닦은 정도전이다. 전략가의 대표적 인물은 수많은 전투에서 패했지만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유방을 한 제국의 황제로 만든 장량이다. 

둘째 유형은 책사다. 책사는 일을 도모하기 위한 꾀를 짜내는 사람이다. 이 수석은 “유능한 책사라면 권모술수에만 능해선 안 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풀어나가야 한다. 맺힌 것을 풀어주고, 굽힌 것을 펴주고, 막힌 것을 뚫어줘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유형은 모사꾼이다. 모사꾼은 옳고 그름보다는 유불리만 따진다. 멀리 보지 못하고, 잔꾀에 밝다.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다. 이 수석은 “모사꾼은 참모 중에서 능력과 품격이 떨어지는 하류”라고 했다. 또 “아무리 능력이 탁월한 참모라 할지라도 자신의 안위에 집착하면 모리배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어떤 참모를 곁에 두고 중용하고 있을까. 두 후보의 캠프에는 직함을 가진 사람만 수백 명에 육박할 정도로 참모가 많다. 과연 이들 중 누가 경세가이고 전략가이며, 책사일까. 모사꾼은 없을까. 두 대선후보는 벌써 ‘정치력’을 시험받고 있다. 인사가 만사다. 어떤 참모의 말과 글, 비전과 전략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대선 정국은 크게 출렁거릴 수도 있다. 

정성호 주축 7인회, 이재명의 오른쪽을 채우다

언론은 흔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인맥의 양대 축으로 성남시·경기도에서 동고동락한 이른바 ‘성남·경기 라인’과 여의도와의 가교 역할을 해온 국회의원 ‘7인회’를 꼽는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해 보면, 최근 이 후보는 정성호 의원이 좌장 역할을 하는 7인회 등 캠프에 합류한 의원그룹에 좀 더 힘을 싣고 있다.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정 의원을 중심으로 김영진·김병욱·임종성·문진석·이규민·김남국 의원 등 7인회는 원외에 있는 이 후보를 대신해 세 확장을 이끌어왔다.

‘7인회’의 힘은 최근 인사 영입 과정에서 확인됐다. 결정적 장면은 선대위에 합류한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등의 인선에서 엿볼 수 있다. 실용외교위원장을 맡은 위 전 본부장은 ‘실용외교’ 노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환적공정성장전략위원장을 담당할 하 교수는 이 후보의 ‘성장’ 정책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후보의 동토 확보라는 외연 확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두 사람이다. 

정 의원은 두 사람 인선을 위해 이 후보를 상대로 상당한 ‘설득전’을 펼쳤다고 알려진다. 이념보다는 실리를 추구해야 산토끼(중도·무당층)를 잡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당내 경선과 달리 본선에서의 승부는 산토끼 확보전에서 갈린다. 정 의원은 캠프 내에서 실용적인 외교정책과 성장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상징할 인재 영입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고 알려졌다. 

취재에 따르면, 캠프 내에서는 위 전 본부장의 합류에 부정적 기류가 상당했다. 위 전 본부장이 그간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캠프에서 대북정책은 물론 정책 전반에서 상당한 역할을 해온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주축으로 노무현·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 상당수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이 후보는 영입을 결정했다. 정 의원의 논리에 이 후보가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재명 독트린’이 어떤 방향일지 확실한 신호를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천명한 것이기도 하다.

위 전 본부장과 함께 캠프에 합류한 또 한 명의 현실주의파 참모가 있다. 바로 실용외교위에 소속된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이다. 그는 이 후보의 중앙대 법대 선배로 국정원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정보통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에 찾아갈 것을 이 후보에게 조언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알려진다. 

익명을 요청한 캠프 관계자는 “위 전 본부장 영입이 내부적으로 논의될 때 말들이 있었다. 인선이 최종 확정돼 발표됐을 때 우리도 놀랐다. 그만큼 반대 기류가 적잖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는 컸지만 오히려 소수였다. 상당수는 중도층 확장을 위한 인재 영입이라면 지옥에라도 다녀와야 할 판인데, 그 총대를 정 의원이 멨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를 보였다”고 전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후보가 전략적으로 상당히 공을 들인 인사인데, 그 의미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1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매타버스(민생버 스) 출발 국민보고회에서 출발을 앞두고 인사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속 타는 李…‘방향’ 제시가 안 되니 ‘속도’만 강조

이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되고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보다 중용하며 가까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을 해결해 주는 이들이 바로 민주당 의원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7인회 외에 의지하는 핵심 참모로는 ‘이해찬 직계’로 평가받는 조정식·이해식 의원, 캠프 외연 확대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박홍근 의원, 옛 김근태계 민평련의 좌장 격인 우원식 의원 등이 손에 꼽힌다. 

최근 이 후보의 지지율 정체 원인으로는 비대해진 선대위가 자주 지목된다. 취재에 따르면 핵심 원인은 따로 있다. ‘비주류’인 이 후보는 그간 자기 선거를 만기친람하며 이끌었다. 측근은 많았지만 참모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는 그래도 됐다. 대선은 차원이 다른 선거다. 판이 바뀌었는데, 아직 이 후보는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뒤집어 보면 아직 선대위에서 이 후보가 제시한 전략의 큰 방향을 틀고, 수정할 만큼 직언을 하는 참모가 마땅히 없다는 얘기가 된다. ‘비주류 참모그룹’은 이렇게 큰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많지 않다. 이긴 경험은 더욱 적다. ‘컨트롤타워 부재’란 지적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이 후보의 의중을 꿰뚫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권위 있는 인사 영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 후보도 최근 이런 부분에 대한 애로를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선대위 관계자는 “이 후보가 최근 선대위 실무진에 ‘속도’를 부쩍 강조한다. 즉각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다. 후보가 여전히 현안의 디테일 모두를 직접 챙기고 있다는 얘기”라고 전했다. 말 위의 장수는 외롭고 두렵다. 그럼에도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용기를 낼 수 있다. 자꾸 뒤돌아보며 속도를 강조하는 것은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에게 책사를 넘어 전략가 참모가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