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 통에 4만원도…도 넘은 골프장 ‘갑질’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15 07:30
  • 호수 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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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따른 특수가 횡포 부추겨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비판 글 등장

골프를 즐기는 일반인들의 최근 화두(話頭)는 국내 골프장에 대한 불만 표출이다. 오죽했으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골프장 민원이 올라갈 정도일까. 골프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눈치를 봐야 했던 과거 1970~80년대와 지금은 전혀 달라졌다. TV 채널마다 골프 프로그램이 연일 나오고, 한때 중장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골프장에는 최근 여성과 젊은 층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골프장 비판과 개선에 대한 청원 2건이 올라와 있다. 11월15일 올라온 ‘골프장 갑질과 횡포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할 때’와 26일 올라온 ‘대중제 골프장에 대한 특혜 폐지’ 등이다.

ⓒ시사저널 박정훈
이 사진은 골프장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는 상관없습니다. ⓒ시사저널 박정훈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52% “코로나 틈탄 업계의 폭리가 문제”

전자는 청원 인원이 1500명을 넘어섰다. 청원인은 구력 17년의 골퍼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정부는 대중제 골프장에 특소세 감면 등 세제 혜택으로 그린피 인하를 꾀하고, 대중화된 골프산업을 육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판단된다”면서 “하지만 현실은 특소세가 없는 대중제 골프장 1조원의 행방이 오너의 배만 불리는 정책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골프장 업주들의 이기적인 행태를 질타했다. 이 청원인은 “그린피는 주중 18만~25만원, 주말 22만~37만원이다. 국밥 한 그릇에 2만원 이상, 가장 저렴한 짜장면은 1만5000원, 막걸리 한 병이 1만5000원이다. 4시간 남짓 타는 카트 비용은 12만원, 외부 음식물은 반입 금지이고, 연단체 운영 중지 등으로 막 나가는 것도 정도가 있다”며 “골프장의 갑질은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사실 골프는 민생 문제도 아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레저스포츠에 왜 사람들은 골프장의 바가지 횡포를 공론화하면서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린피 폭등과 현실과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식음료 값, 그리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코스에 직원 및 캐디의 ‘갑질’ 논란으로 이어지는 서비스 부재 등이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태를 이용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불만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못된 골프장’으로 인한 골퍼의 불만의 목소리가 수시로 터져 나오는 탓에,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그린피를 올리지 않고 코스 관리도 잘하고 식음료 값도 올리지 않는 등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착한 골프장’들까지 도매금으로 욕을 먹고 있다.

인터넷 부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라운드 후기에 불만 가득한 글이 빼곡히 채워지고 있다. 수도권 Y골프장을 찾은 P씨는 “우리는 4명이 플레이를 했다. 캐디가 ‘빨리빨리’ 치라고 하도 볶아대자 한 명이 열받아서 백을 내려 3명이 라운드를 했다. 그럼에도 격하게 빨리 하라고 몰아댔다. 2개 홀을 그냥 건너뛰었다. 팀이 하도 밀려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는 글을 올렸다. 골프장 측에서 캐디에게 빠른 경기 진행을 굉장히 심하게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점 때문에 골퍼가 많이 찾는 이 골프장은 개장 때부터 C급 수준 운용으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용인 B골프장을 다녀온 C씨는 “코스를 개조하면서 잔디보다 흙이 많은 홀도 있었다. 처음에는 명문 소리를 들었으나 수시로 홀을 늘리는 공사를 하면서 코스 잔디는 물론 그린이 누더기 꼴이 됐다”며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골프장이라고 평했다. 충청도 A골프장에서 플레이한 O씨는 “신설 골프장이니만큼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차라리 오픈을 미루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비싼 그린피는 고사하고, 티박스에서 봐도 블라인드 홀(퍼팅 그린이 보이지 않는 홀)이고, 페어웨이는 관리가 엉망이어서 이게 페어웨이인지 러프인지 분간이 안 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11월5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골프장 이용료에서 ‘30% 이상 내려야 한다’가 29.0%, ‘50% 이상 내려야 한다’가 25.2% 등 전체의 54.2%가 ‘가격을 내려야 한다’고 답했고, ‘현재 금액이 적정하다’는 응답은 18.5%에 그쳤다. 골프장 이용료 상승 원인에 대해서는 ‘코로나로 인한 이용객 증가를 틈탄 업계의 폭리’가 52.0%로 압도적이었고, ‘무관심한 정부 당국의 관리 소홀’이 22.7%로 그 뒤를 이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경기도에 위치한 한 골프장 주차장에 골퍼들의 차량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는 상관 없습니다.) ⓒ시사저널 임준선

주중 10만원대 그린피, 이제 20만원 아래는 없어

필자가 최근 한 골프 세미나에서 겪었던 일화다. 주제 발표자로 나온 K씨는 골프장의 그린피 인상에 대해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한동안 중단했던 골프를 최근 다시 시작했는데, 주중에 다녀온 골프장 비용으로 무려 48만원이나 들었다고 했다. 코스나 서비스는 둘째 치더라도 이렇게 비용이 많은 드는 것은 골프장의 ‘무자비한 횡포’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듯 골퍼에게 직접적으로 피부로 와닿는 불만 대상은 가파르게 오른 비용이다. 주중 10만원대 그린피를 받던 골프장들이 이제 20만원 아래는 아예 없을 정도다. 주말에는 3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식사 한 끼에 2만~3만원은 기본이고, 그늘집(골프장 내 간이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마시는 막걸리 한 통에 무려 4만원을 받는 곳도 있을 정도다.

그린피를 비롯해 식음료 값, 카트비, 캐디 팁 등이 오르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바로 ‘부킹난’ 탓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골프투어를 비롯해 야외에서 많이 즐기는 레저·스포츠의 통로가 막히면서 일반인들은 ‘청정 지역’인 골프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특히 해외 길이 막히자 수요가 국내로 몰리면서 ‘부킹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익이 최우선인 골프장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골프장들은 앞다퉈 그린피를 비롯한 가격을 대놓고 올리고 있다. 이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수도권 한 골프장 대표의 말은 그만의 생각일까.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8홀 기준 국내 골프장 수는 535개, 연간 입장객 수는 4670만 명이다. 올해는 50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의 4170만 명보다 19.9%, 비교적 부킹이 수월했던 2018년의 3794만 명과 비교하면 무려 31.8%나 증가했다.

 

비싼 이용요금 문제, 국감 이슈로 등장하고 권익위까지 나서

국내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해 1월20일 직후엔 골프장이 비교적 한산했다. 하지만 방역이 강화되면서 ‘갈 곳을 잃은’ 일반인들은 골프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처음엔 골프장에서도 ‘이러다 말겠지’ 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딴판으로 흘러갔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골프장 상황도 급변했다.

전조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수요와 공급은 경제학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요즘 실감하는 것은 ‘밥상머리 물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의식주는 살고 죽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취미로 즐기는 스포츠와 레저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묘하게도 골프는 최근 들어 ‘비싸면 안 하면 그만’인 범주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골프장 이용요금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그린피 인상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대중제 골프장의 그린피가 회원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경우가 생기자 국민권익위원회까지 나섰다. 권익위가 지난 6월 전체 대중골프장 354개, 회원제 골프장 158개를 지역별로 나눠 평균 그린피를 조사한 결과, 수도권·충청·호남 지역에서 대중골프장과 회원제 골프장의 이용요금 차이가 1000~1만40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국 512개 골프장 중 84%가 식음료 요금을 너무 비싸게 받거나 식당·캐디 등 부대 서비스 이용을 사실상 강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에서 다양한 세제 혜택을 받고 있는 대중제 골프장 가운데 상당수가 그린피를 터무니없이 올려 폭리를 취하면서 골퍼들에게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권익위는 ‘대중골프장 운영의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마련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 강력하게 권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급기야 12월7일, 골프 대중화에 역행하는 골프장 이용료 급등에 대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함께 골프산업 발전방안 공개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렇듯 이용요금을 둘러싸고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일부 골프장은 홈페이지에 게재했던 그린피를 삭제하거나 아예 올리지 않는 꼼수도 부리고 있다.

통제받지 않는 틈바구니 속에 폭주하고 있는 골프장의 횡포에 대해 6년 동안 그린피를 올리지 않고 있는 경남 창원컨트리클럽 송부욱 대표의 다음과 같은 한마디는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골프장) 입장객이 줄어들 게 뻔합니다. 그때가 되면 다시 그린피를 내려야 하는데, 굳이 올릴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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